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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1.01.18 근성의 이야기 2
  5. 2021.01.18 근성의 이야기 1
  6. 2021.01.15 휴식의 이야기 (+ 칼라무스)
  7. 2021.01.14 대비의 이야기
  8. 2021.01.11 성장의 이야기

근성의 이야기 5

2021. 1. 18. 23:51 from pokemon/Ram

다섯 번째. VS 거북왕 

 

 

 

"그리고 여기서부터 선생님의 포켓몬들이 한 차례 더 강해지네요. 거북왕. 거다이맥스를 하지는 않지만 한 방의 데미지는 라프라스보다도 강력하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메로엣타' 가 물 타입이 아닌 환상의 포켓몬임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 거북왕이 선생님의 에이스다. 다른 아이들도 강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아이의 한 방은 유독 아프고 무겁겠지. 버티기 힘들겠지만...... 소녀는 기꺼이 고개를 들어, 무언으로 아낌없이 어필하고 있는 포켓몬에게 기꺼이 선택을 내려줬다.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부터 스스로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고, 람 역시도 그 짐작대로 굴어주었다. 에이스에게는 에이스를 붙여 주는 게, 예의일테니까. 

 

"믿어요, 엠페르트."

 

  나의 최강. 나의 오랜 벗.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함께할 앞으로의 소울메이트를 앞에 두고 람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제 주인과 꼭 같은 얼굴로 부리를 치켜든 엠페르트도 비슷하게 웃었다.  

 

"할 수 있죠?"

"갸웅."

 

  소녀의 주먹 쥔 손과 엠페르트의 단단한 날개가 짧게 닿았다. 

 

 

 

 

"엠페르트, 전심전력, 언제나 최강이에요! 메탈크로우!"

"파동탄으로 대응하자!"

 

  강력한 강철의 날개가 저를 향해 날아오는 파동탄을 반으로 싹둑 잘랐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지만. 연속해서 날아오는 파동탄의 모습에 엠페르트는 메탈크로우를 한 번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손톱을, 강철같은 날개를 휘둘렀다.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서는 게 겨우일 것이고, 두 방 맞는다면 주인의 승리를 빼앗아 갈 터. 타이밍을 맞춰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 회복을 받는 것도 실력이었다. 맞은 뒤 어리버리 있다가는 그대로 순서를 빼앗겨버릴 터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움직임으로 파동탄을 전부 잘라내 피해낸 엠페르트가 거북왕에게 잠시 거리를 벌렸다. 같은 물 포켓몬이라는 건, 타이밍을 잡는 순간이나 유리한 간격이 유사하다는 의미였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비슷하기 마련이니까. 물 타입 기술로 대부분을 차지한 람과 달리 무지카의 경우에는 좀 더 폭넓은 기술을 사용해서 연륜있는 트레이너임을 증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쿠아제트!"

"아쿠아제트!"

 

  하나의 거대한 지방을 대표하는 시작의 포켓몬이 세 마리 있다. 작고 고아한 시작의 땅의 첫 번째 물 포켓몬. 전설이 잠든 신화의 땅의 첫 번째 물 포켓몬. 그만큼 가능성이 충분하고, 어린 아이들의 곁에서 함께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지방의 연구자들에게 인정받은 포켓몬. 

  소녀가 트레이너의 꿈을 꾸게 만든 첫 번째 물방울이 바위를 부수고 해일이 될만큼 자랐으니, 엠페르트는 결코 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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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의 이야기 4

2021. 1. 18. 21:50 from pokemon/Ram

네 번째. VS 인텔리레온

 

 

 

 

"그리고 세 번째..... 인텔리레온이네요. 이 아이는 처음 보죠? 저도 보는 건 처음인데."

 

  울머기가 이 섬에 산다고는 하는데, 음. 만나 본 적은 없으니까요. 소녀는 잠시 하늘을 보았다가 포켓몬들을 보았다. 길쭉하고 날렵하고 강력한 포켓몬을 다른 포켓몬들은 모여 뭔가 평가하고 있었다. 물 포켓몬도 하늘의 별처럼 많으니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대부분 모르는 것 같았다. 가라르의 포켓몬이기도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팽도리는 어머니에게 받은 신오의 아이들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야생 인텔리레온이 살지 않는 이 섬 출신이니까. 그나마......

"플로젤, 맡길게요."

 

  플로젤이 람의 곁으로 오기 전 살았던 곳에서 울머기도 산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제일 첫 모습과 최종진화형이 많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팽도리와 엠페르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꼭 서식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순서상 플로젤에게 부탁할 생각이었으니까. 세 번째로 지목받은 플로젤이 잠시 코를 찡긋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두 번은 처음이니까, 마지막 두 번은 마지막이니까 버틸 수 있다면 본디 중간이 제일 까다로운 법이었다. 그 자리를 잘 맡아주리라 믿으며, 소녀가 플로젤을 가볍게 몇 번 쓰다듬어주었다. 소녀가 제일 좋아하는 포켓몬은, 아주 예전부터 플로젤이었으니까. 

 

 

 

 

"아쿠아제트!"

"방어로 막아!"

  플로젤의 날카로운 아쿠아제트가 인텔리레온의 방어막에 단단히 가로막혔다. 외형과 달리 묵직한 한 방이 만만찮은 상대였다. 하기야 선생님의 포켓몬 중에 안 그런 아이들이 없지만! 람은 인텔리레온의 인정사정없는 노려맞히기가 플로젤에게 직격하는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슬슬 트레이너의 정신력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벌써부터 무릎을 꿇을 마음은 없었지만! 플로젤에게 손짓하여 카레를 한 입 먹여주며 소녀가 길게 숨을 뱉었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두 방은 버티지를 못하니 무조건 회복을 시켜야만 했다. 그러니 더더욱 배틀이 딜레이되고 있는데도 생글생글 유쾌하게 미소짓는 선생님과 버티고 있는 포켓몬은 여전히 강인하다는 점에서 소녀는 미약한 경외심을 느꼈다.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니, 역시 한 번 쯤은, 상대가 놀아주는 입장이더라도 이겨보고 싶지 않겠는가?

 

"플로젤! 다시 한 번 아쿠아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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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의 이야기 3

2021. 1. 18. 19:01 from pokemon/Ram

세 번째. VS 야도킹

 

 

 

"두 번째 타자는 야도킹이네요. 음... 우리들은 데리고 있지 않지만, 슈가가 데리고 있는 걸 본 적은 있죠?"

 

  포켓몬들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 분홍색이고 누워있고 꼬리먹는 아냐 일어나도 있더라 그래? 암튼 그리고 노랗고 아냐 안 노란 녀석도 있어 보라색 아니던가요? 아냐 안 보라색인데 얘는. 

  포켓몬들은 옹기종기 조그마한 스마트로토무 화면을 응시했다. 얘는 되게 똑똑해보인다. 그러게. 기술도 이것저것 쓰고.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포켓몬들을 말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목소리를 낸 건 당연히 트레이너인 람이었다. 소녀가 가볍게 말했다. 

 

"승부는 골덕에게 맡길게요."

 

  골덕에게? 다른 다섯 마리가 모두 골덕을 응시했다. 개구쟁이고 장난꾸러기고 말썽쟁이고. 들어 온 순서로 따지자면 꽤 일찌감치 람의 엔트리에 들어온 골덕이었지만 취급만 따지면 거진 막내 라인이나 다름없는 골덕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방긋 웃었다. 재밌겠다! 알았어요, 주인! 소녀는 제 골덕이 하는 말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기꺼움만은 이해하고 마주 웃었다. 부탁할게요. 

 

 

 

 

"렌토, 불대문자!"
"버텨요, 골덕! 버티고 사념의박치기!"

 

  온몸에 화끈거리는 불대문자를 어떻게든 버텨내며 화염을 뚫고 골덕은 그대로 야도킹에게 강하게 충돌했다. 열기 정도야 다시 주인에게 가 입에 맛있는 것을 넣으면 살 수 있을 만해질 터. 지금 중요한 건 이기는 거다. 골덕은 장난꾸러기고, 개구쟁이고, 아무튼 믿음직스러움과는 거리가 좀 멀지만, 그래도 주인이 원한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평소 무시무시한 엠페르트를 골탕먹일 수도 있고 다정하고 엄한 라프라스의 은근한 꾸중을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자기보다 백 배 쯤 강해보이는 야도킹을 향해서도 얼마든지 돌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강력한 에스퍼 기술로 자신을 묶어오는 야도킹에게서 도망쳐 필드의 주인 가까이 착지한 골덕이 날카롭게 야도킹을 노려보았다. 배틀에서 이기기 위해 현명할 필요는 없었다. 끈질기고 끈질기고, 그리고 주인이 명령한 최선을 해내기만 하면 되었다. 골덕은 그리 믿었다. 캬아아악──!! 사람의 귀에는 날카롭게 찢어지는 울음소리로 들리는 기합을 내지르며, 골덕이 다시 한 번 야도킹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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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의 이야기 2

2021. 1. 18. 18:47 from pokemon/Ram

두 번째. VS 샤미드

 

 

 

"──첫 번째는, 샤미드."

 

  푸르스름한 물갈퀴가 쫑긋 섰다. 이 아카데미에 들어와 졸업을 위해 만나 자신을 위해 진화해 준 사랑스러운 푸른 포켓몬에게 손을 뻗어 그 머리를 정답게 쓰다듬으며, 람이 속삭였다. 

 

"무지카 선생님의 선봉장도 샤미드에요. 이길 수 있죠?"

 

  소녀의 말에 샤미드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위해 강해지겠노라 다짐하며 진화했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듯, 샤미드는 람의 명령 아래에서 싸우는 모든 순간 늘 승리를 확신하며 싸우고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질 것 같아도, 한 방 한 방이 차원이 다른 강함이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싸우면, 람은 반드시 승리를 손에 쥘 테니까. 샤미드는 그를 위해 제 최선을 보태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상대도 우리도 아마 '저수' 특성일 것 같다는 점인데......"

 

  소녀가 잠시 천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물 타입이 종종 가지고 있는 그 특성은, 물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으면서 회복까지 할 수 있는 조금 귀찮은 특성이었다. 물 타입과 물 타입이 싸우기에는 곤란한. 더군다나 샤미드는 물 기술 외에 배우고 있는 공격 기술이 없었으니, 

 

"역시 이 기술을 배워두는 게 좋겠어요."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든 소녀가 다가왔다. 문득, 샤미드의 이마에 노란 색 기술레코드가 닿았다. 

 

 

 

 

"──샤미드, 냉동빔!!"

 

  날카로운 명령에 샤미드의 입에서 푸르스름한 얼음 기술이 쏟아졌다. 상대를 얼리는 차가운 냉동빔이 샤미드에게 똑바로 향했다. 두 마리 샤미드는 똑같은 종인지라 빼닮은 듯 똑같아서, 언뜻 보기에 제 포켓몬을 착각하여 멈칫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두 트레이너만큼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제 포켓몬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렸다. 역시 무지카 선생님과 그 샤미드는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날렵하게 피하더라도 딱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곧장 불러들여서 카레를 입에 넣어 치료해줘야만 했다. 

 

  최대한 맞지 않게 노력하면서 이쪽의 기술을 맞춰야하는데, 봐주면서 한다고는 해도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단 말이죠. 초조하면서도 근질근질하고, 그리고 즐겁다. 소녀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열탕!"

"녹아서 열탕으로 섞어들어요!"

 

  다시 한 번 두 마리 샤미드가 크게 충돌했다. 샤미드 주변에 일렁이는 뜨거운 열탕의 사이로 한 마리 샤미드가 녹아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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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의 이야기 1

2021. 1. 18. 18:30 from pokemon/Ram

첫 번째. 도전

 

 

 

"......무지카 선생님의 포켓몬은 이렇게 여섯 마리에요."

 

  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제 여섯 마리 포켓몬이 화면을 여전히 빤히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다들 느끼는 게 다른지, 심각한 얼굴인 녀석이 있자면 싱글벙글 웃는 녀석도 있었고,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람은 어딜 둬도 부끄럽지 않을 제 포켓몬들을 응시하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선생님은 '시험관' 답게 사용하는 포켓몬과 그 순서, 기술배치까지 아낌없이 공개한 상태였다. 실제로 공격력은 학생인 이 쪽과 차원이 다르고. 도전자의 시선에서 보기에 이 시험은 꾸준히 회복하고 또 회복하며,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 굴하지 않고 덤비는 배짱과 근성을 시험하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배짱과 근성이라면, 람과 포켓몬들이 절대 질 수 없는 분야이기도 했다. 

 

"한 포켓몬 당 한 마리 씩. 그러니까 다들 한 마리씩 승부할거에요."

 

  그 말에 포켓몬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주인을 보는 눈에는 호기심이 절반, 누구는 확신도 조금. 걱정이나 두려움도 어느 정도. 그리고 이 쪽을 향한 신뢰가 확실한 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람은 마주 방긋 웃어주었다. 


"그럼 이제 순서를 말해줄게요. 첫 번째는──."

 




소녀는 낡은 문 앞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데려온 포켓몬은 총 여섯 마리. 부족함 없이 끓인 카레는 가방에 가득 차 있었고, 포켓몬들은 제 허리에 매달려 자신의 의욕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좋아요, 잘 할 수 있죠? 람이 눈썹에 힘을 주고 씩 웃었다. 지금 상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물 타입 트레이너에게, 자신의 근성을 보여줄 차례였다.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무지카 웨스트우드에게 자신이 어떤 꽃으로 피어났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그럼...... 가죠!"

 

문을 열어젖혔다. 호수의 눈동자를 가진 귀부인에게, 바다처럼 빛나는 아직 어린 소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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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잘 봐요!"
"알았어, 알았어!"

 

  뾰로통한 후배, 라무의 대답에 람 역시도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둘 사이에 낀 칼라무스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만. 샤론의 심부름으로 후배들에게 배틀 시범을 보여달라는 말은 칼라무스와 예전에 했던 약속까지 작게 엮여 두 사람의 배틀 시범이 되었다.

  정진정명 서로가 어떤 카드를 낼 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신나게 격돌하는 배틀과 달리, 이번에 보여줘야 할 것은 시범이다보니 처음부터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포켓몬을 쓸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까 상의까지 했다. 최대한 많은 기술을 보여주고, 최대한 시범이 될 수 있는 배틀을 보여주자. 람과 칼라무스가 타협한 결과 사용할 포켓몬은 한 마리. 운동장에 나란히 선 소녀들이 몬스터볼을 손에 쥐었다. 

 

"골덕!"
"루리나."

 

  필드에 두 마리의 포켓몬이 섰다. 한 쪽은 푸른 몸체의 골덕이고, 다른 한 쪽은 어둡게 빛나는 킬가르도. 순수한 물 타입과 강철, 고스트 복합 타입이니 상성 차이는 없었다. 

 

"지금은...... 대련이지만...... 내보내자마자 배틀 명령을 하는 경우도, 많아......"

"물론 그건 트레이너마다 다르지만요. 스스로 배틀을 해 보고 성향을 정하면 될 거에요."

"앞으로 특수기랑, 물리기랑, 방어기...... ......여러가지 기술을 섞어서 쓸 거야."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파악해보고, 어떤 결과도 이끌어내는지 눈으로 확인해보세요."

 

  두 트레이너가 지켜보고 있는 어린 후배들에게 짧게 설명하고 서로를 응시했다. 준비됐나요? 응. 분홍빛과 푸른빛 시선이 짧게 교차했다. 그리고 제 포켓몬들을 응시하며 외쳤다. 

 

"칼춤!"
"파도타기에요!"

 

  킬가르도의 칼날이 번쩍임과 동시에 골덕이 푸르스름한 파도를 불러냈다. 빙글빙글 돌며 칼춤을 추는 킬가르도의 눈빛이 점점 매서워졌다. 골덕의 발밑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점점 거대해졌다. 끝내 넓게 펼쳐진 골덕의 파도가 킬가르도를 휩쓸어버리기 전에, 느릿하게 타이밍을 읽던 칼라무스가 외쳤다.

 

"루리나, 베어가르기!"

"다이빙으로 휩쓸어요, 골덕!"

 

  칼춤으로 강력해진 베어가르기가 파도를 싹둑 잘라버렸다. 급소를 향해 찔러오는 베어가르기를 아슬아슬 피하며, 양쪽으로 나뉘어지는 물길 중 하나를 몸에 두르고 골덕이 날렵하게 다이빙으로 기술을 회피했다. 기실 다이빙도 공격기술이기는 하지만... 필드가 물이 있는 필드가 아니면 쓰기 까다로우니 이렇게 쓰는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겠죠. 두 사람이 타협했던 내용 중 하나였다. 상대에게 뚜렷한 데미지를 넣지 않은 상태로 매섭게 대치하는 두 포켓몬을 응시하며 람과 칼라무스는 또 시선을 교환했다. 어깨에 조금 힘을 빼고, 다시 후배들을 쳐다봤다는 뜻이었다. 

 

"방금 쓴 파도타기도 다이빙도 보다시피 물 타입 기술이에요. '비전머신' 이라는 기술머신으로 대부분 배우는 기술인데, 실제로 공격기술 말고도 여러 물가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죠."

"루리나의 칼춤은... 공격 기술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변화기야... 다음에 쓴 베어가르기를 강하게 만든 거지."

 

  변화기를 잘 쓰면... 여러 기술의 위력을 더 올리거나 내릴 수 있어서... 재미있어. 특히 킬가르도는... 심리전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어서. ...재밌지. 

  음~ 그 뿐만 아니라 폼체인지까지 하는 킬가르도에 비해 골덕은 꽤 심심해보일 수 있지만... 폭넓은 기술을 배울 수 있어요. 물 타입 뿐만 아니라 에스퍼, 노말, 격투, 얼음, 땅에 고스트, 악타입까지 두루두루 배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물론 우리 애는 대부분 물이지만! 이라는 단어는 속으로 삼킨 채 람이 눈앞의 칼라무스를 마주보았다. 그럼 이제 또 배틀을 이어가볼까요? 눈으로 묻는 소녀의 물음에 칼라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하자. 분홍빛 눈이 의미를 담아 빛났다. 

 

 

 

 

공미포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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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대비의 이야기

2021. 1. 14. 02:18 from pokemon/Ram

youtu.be/I7G31t9TluE?t=523

 

 

 

 

 

  소녀는 태어나서, 자신이 가진 쪽의 입장에 서서 아닌 쪽을 보게 될 순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일견 그녀의 삶은 보잘것 없는 투쟁으로 가득하고, 각자의 불행이 있는 삶에서 소녀는 자신의 불행을 소화시키기에도 힘겨웠기에. 타인을 배려하기에 소녀의 삶에 찾아오는 타인은 드물었고, 혜성처럼 그녀의 삶의 대변혁을 이뤄낸 사람은 훌쩍 큰 어른인지라 소녀가 무언가 신경을 써 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리어 한없이 많은 관심과 배려를 받는 입장이었지. 그 틈바구니에서 어린 소녀는 제 자신을 인간답게 가꾸는 데에 제 모든 심력을 모조리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멀고 먼 땅, 아카데미까지 왔다. 2년이나 시간을 투자하여 조금씩 배우고, 또 배우고. 끝내 졸업을 목전에 두고 나서야 겨우 주변을 둘러 볼 여유 따위를 가지게 된 람은, 그러니까. 이제 겨우 소중한 무언가가 조금씩 늘어나고 마음의 가시를 부드럽게 바꿀 수 있던 람은. 지금 이 상황에 쩡하고 완전히 얼어버렸다. 아, 대단히 말을 실수했다는 직감이 섬광처럼 등 뒤를 스쳐지나갔다. 제 말이...... 눈 앞의 사람을 상처입힌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소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생에서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난제를 앞에 두고 람은 마른 침을 삼켰다. 진심 여부와 무관계하게 사람은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다.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제 말은 모두 기만이 될 수 있고 지금 제 자신의 입에서 나올 모든 단어가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소리가 될 수 있다. 소녀는 제 안 무언가가 일렁이는 기분을 느끼며 격렬하게 갈등했다. 샤론이 화를 낼까? 사실 지금도 우리는 싸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괜한 참견을 말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덮어버리면...... 그렇다면......

  바다의 눈이 숲의 눈을 응시했다. 자신을 보지 않고 바닥 어드메를 응시하고 있는 숲의 눈을. 

 

"......샤론에 대해서..... 나한테 설명해 줄 의무는 전혀 없어요. 말해주지 않아도 좋아요."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게 즐겁지 않은 과거나 실수의 흔적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다. 누군가를 자세히 모르더라도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 과거를 상세히 안다는 것이 모든 증거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은 얼마든지 있고, 그걸 부러 캐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기만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샤론이 해내는 모든 배틀을 화면 너머로 보았다. 포켓몬 배틀로 직접 부딪혀 보기까지 했으니 알고 있다. 샤론의 진심.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상대로 서 주었는지, 얼마나 상세하게 이 감정을 받아내주었는지. 그 열정도 마음도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샤론은 선생님으로서, 노력해줬다. 정말 많이 노력해줬다. 람 역시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손가락질 할 마음은 없었다. 누군가 샤론을 손가락질한다면 그 손가락을 대신 분질러버릴 마음도 충분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부터 내 입이라도 분질러야 할 지 모르겠다. 람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끝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가 거절당할 게 무서워서 계속 지금처럼 있는다면 나아갈 수도 없어요."

 

  현상유지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신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겁이 나서 도망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람도 이 아카데미에서 발전을 노리고 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에서 도망친 거기도 하니까. 힘들면 쉬고, 괴로우면 앉을 수도 있다. 손이 뿌리쳐질까 두려운 공포가 얼마나 거대한지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발을 질질 끌어도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 그곳에 발목은 묶여 있으니까. 영영 도망치더라도 스스로는 알고 있을 테니까. 

 

"한심한 모습을 또 보여주면 안 되나요? 여러 번 패배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은 한심한 걸까요? 거절당했으면서 매달리는 모습은 꼴사나운 걸까요?"

 

  풀 타입과 전기 타입 체육관에 백 번 패배하더라도 꿋꿋하게 물 타입 포켓몬으로만 도전하는 모습은 한심할까? 바보같은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터다. 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패배해서 슬퍼할 때에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
  거절당했을 때 꿋꿋하게 조금만 좋아해달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꼴사납고 못나빠질수도 있지만, 거절이 두려워 승낙인지 거절인지 묻지조차 않는다면 관계가 변하지도 않겠지. 기다리고만 있는다면 고여버린다. 그리고 작은 호수는 언젠가 말라버리겠지. 그 안에 살던 작은 생명들조차 죽어버릴 것이다. 

 

"......물론 이 사람 곁에 내가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나도 알아요."

 

  저 역시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여기 왔으니까. 자격을 만들고 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난 이제 자격이 없더라도 매달릴거에요. 나를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관계는 끝이라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그럼 사랑하게 만들어보이겠다고 말할 거라고요. 거절당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보고, 느끼고, 키워서. 자랐으니까."

 

  계기도 이유도 이제는 상관 없었다. 손을 뻗어 주워 준 건 당신이고 잡은 건 나. 그 순간 관계는 맺어졌으니 한 쪽이 놓는다고 해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자신이 한참 못난 것 같고, 상대는 누구보다도 고결해보이더라도. 자신이 구질구질하고 꼴사납고 세상에서 제일 못나서 정이 다 떨어지더라도, 그래도 끝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라도 다시 자신을 잡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적발의 소녀는 밀빛 소녀에게 물었다.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지카 선생님과 샤론 사이에 각별한 건 없나요? 내가 입학하기 전부터 샤론은 무지카 선생님과 같이 있었잖아요. 분명 몇 년도 넘게 같이 있었던 거겠죠. 그 모든 시간이 이미 각별해요. 샤론에게 선생님이 특별해지기까지의 시간이 무지카 선생님께는 아무 의미 없었을까요? 정말로?"

 

  짧게 뱉었다.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제멋대로인지라,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은데도, 소녀는 끝내 똑바로 상대를 보며 이기적인 말을 눈앞의 사람에게 건냈다. 

 

"......샤론은 이미 어리광부리고 싶은 누군가가 있잖아요. 수많은 사람들 중 막연히 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가서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자격을 달라고 말해봐요. 시작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잖아요."

 

  뺨을 맞아도 할 말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람. 소녀가 긴장한 손을 한 번 쥐었다 펴며 소리없이 심호흡했다. 하고 싶은 말은 했으니, 상대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오더라도 감수할 각오 역시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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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성장의 이야기

2021. 1. 11. 01:59 from pokemon/Ram

 

 

  도전에 사용할 수 있는 포켓몬은 네 마리 이상. 소녀는 그 규칙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려보았다. 소녀가 데리고 있는 포켓몬은 여섯 마리. 다들 레벨은 비슷했으나...... 소녀는 제 발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된 깁스가 진한 존재감을 풍겼다. 진통제를 꼬박꼬박 먹지 않으면 은은하게 통증도 올라왔다. 발 뿐만 아니라 온몸이 욱신거렸다. 틀림없이 여기저기 멍투성이겠지. 더 걱정시키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니, 무리는 금물이었다.

  라프라스는 거다이 개체이니 만큼 반드시 나가야하니, 라프라스 위에 앉아서 승부를 겨루지는 못하고. 그렇다면...... 소녀는 차례차레 책상 위에 몬스터볼을 올려놓았다. 선봉장으로 라프라스, 마지막은 샤미드. 그 중간에서 단단하게 버텨 줄 포켓몬은 엠페르트. 세 마리는 망설임 없이 결정하니 다른 세 마리는 고민이 남았다. 골덕, 플로젤, 빈티나. 어느 쪽이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제 사랑스러운 포켓몬들. 전부 내보내도 별 문제는 없었으나......

 

  소녀가 개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물 포켓몬 골덕. 특별한 신통력을 사용하는 포켓몬. 에스퍼 타입은 아니지만 에스퍼 기술도 배울 수 있는 게 여럿 있었다. 빈티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람을 받쳐 줄 수 없었고, 플로젤은 람보다 작아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목발을 짚고 싸우다가는 흥분해서 넘어질 게 뻔했으니, 소녀의 선택지는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이번에 싸울 수 없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골덕."

 

  이번엔 내가 전력으로 싸울 수 있게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래요? 소녀의 속삭임에 몬스터볼 속의 골덕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구쟁이 골덕은 고라파덕 시절부터 제 트레이너를 가장 좋아했으니까. 여섯 마리 모두 걱정 어린 눈으로 제 트레이너를 보고 있었으니,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역할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한 마리.

 

"......?"

 

  플로젤이 강하게 제 몬스터볼을 흔들었다. 제 친구가 이번에 트레이너의 곁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으니, 배틀 필드에 설 수 없는 친구와 같이 저도 이번에는 소녀의 뒤에 서 있고 싶었다. 싸운다면 골덕과 같이 싸우고 싶으니까. 그리고 심술을 섞어 말하자면, 골덕 하나에게만 제 트레이너의 전부를 맡기는 건 불안하지 않은가. 골덕, 플로젤. 두 마리가 자의와 타의를 섞어 배틀에서 나가기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네 마리 제한을 채우기 위해 남은 건 한 마리. 마지막으로 빈티나가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들어올린 소녀가 잠시 제 포켓몬과 시선을 나눴다. 괜찮겠나요? 수줍은 빈티나를 위한 부드러운 걱정을 빈티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빈티나를 포함하여 네 개의 몬스터볼을 허리에 묶은 벨트에 단단히 찼다.

  남은 두 마리의 몬스터볼은 소중하게 끌어안았다가, 둘 모두를 꺼냈다. 플로젤, 날 조금 잡아줘요. 골덕, 염동력으로 나를 살짝만 띄워 줄래요?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플로젤이 람의 손을 잡고 골덕의 이마가 신비하게 빛났다. 그럴듯하게 서는 시늉을 할 수 있게 된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약속시간이었다. 

 

 

 

* * *    youtu.be/zWUTOxzkwmY    * * *

 

 

 

  어둡지만 인기척이 느껴진다. 숨길 수 없는 긴장감도. 소녀는 몇 번이고 짧게 숨을 뱉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손을 잡아주는 플로젤과 지탱해주는 골덕이 없었으면 발밑도 똑바로 보지 못하다가 홀랑 넘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흰 자작나무 문을 거쳐 좁은 길을 따라가니 그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울창한 숲 한 가운데에서 다정하게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었다. 거대한 배틀 필드가 있었다. 그리고 심판의 위치에서 눈인사로 가볍게 인사해주는 사람도. 람은 양 손을 감싸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부드러운 녹색 시선이 일렁이는 푸른 시선을 상냥하게 응시했다. 

 

"어서 와요, 람."

"왔어요, 샤론."

"다리는 괜찮나요?"
"괜찮아요."
"봐 주지는 않을 거에요."
"그럼요."

 

  긴 바람이 불었다. 잔파도 휩쓸리듯 잎사귀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람은 제 가슴에 달려있을 심장이 귀로 올라와 두근두근 달음박질이라도 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긴장해 본 건 태어나 19년 인생에서 거의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를 처음 만나 그 손을 잡기로 정했을 때도 딱 이만큼 긴장했었는데. 방금 나눈 대화는 아무런 사심 없이 담은 간단한 대화인데 소녀는 왜 이렇게 떨고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녀가 젖은 손을 몇 번 쥐락펴락한 뒤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바다 색 눈동자가 격랑을 맞은 듯 흔들리면서도, 폭풍우 속 등대처럼 빛만큼은 뚜렷했다. 

 

"준비가 되셨다면 제 맞은 편에 서서 몬스터볼을 들어주세요."

 

  샤론의 손에 들려있는 타이머볼을 한 번 보고, 람도 제 몬스터볼을 쥐었다. 길게 숨을 뱉으니 플로젤이 다시 단단히 람의 반대쪽 손을 맞잡았다. 골덕의 에스퍼 기운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소녀의 몸에 맴돌았다. 소중히 키웠고, 시합에 참가하지 않는 두 마리 포켓몬의 마음을 느끼며, 소녀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똑바로 제 앞의 동갑내기 선생님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다.

 

"......역시 뭐든 한 번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이길 수 없겠죠! 도전하러 왔어요, 샤론!"
"좋아요. 당신과 포켓몬의 요동치는 마음의 파동이, 그 유대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제가 「심판」 하겠습니다!"

 

 

 

 

  배틀 직전, 람은 샤론의 등 뒤에 서 있는 라티오스와 잠깐 시선이 맞았다. 라티오스는 고요한 눈으로 그녀를 보다가, 숲이 울릴 정도로 길게 포효했다. 배틀을 시작합니다! 심판으로서 자리에 서 준 포말하우트가 외치는 목소리와 포켓몬의 울음소리는 거의 동시에 울려서, 시작을 개시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나 트레이너로서 본능으로 느끼고 있었다. 모자를 멀리 집어던지고 두근거리는 긴장도 모조리 열졍으로 돌려버리며 소녀가 눈을 치켜떴다. 제일 먼저 나올 상대는 아마도 현재. 그렇다면 이쪽도 제일 튼튼하고 제일 딱딱한 상대가 나서줘야했다. 이미 선봉장은 정해뒀으니! 소녀의 팔에 차고 있는 다이맥스 밴드가 신비한 빛으로 반짝였다. 오래 호연에 살았고 그 다음으로 관동에서 살던 소녀에게는 사실 꽤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제 포켓몬이 최선을 다한 모습임을 알기에. 소녀는 제 머리통보다도 커다랗게 변한 몬스터볼을 쥐고,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제 몸이 붕 뜰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한 라프라스가 소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나자마자!"

"라프라스! 이 꽉 깨물고 버텨요!"

 

  거다이맥스는 뛰어난 힘이지만, 장점이 있는만큼 단점도 있다. 덩치가 거대한만큼 대부분의 공격을 피할 수 없고, 상대의 공격은 빠르고 날카롭다. 람의 명령에 거다이라프라스가 순간적으로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공격은 등장과 동시에 눈 깜짝할 찰나였다. ──쾅! 창파나이트의 무시무시한 일격은 폭격이라도 날아오는 것처럼 묵직한 소리가 났다. 버텼는가? 버텼다면 다음에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소녀의 시선이 필드를 빠르게 훑었다. 거대해진만큼 위력이 강하고, 그렇기에 맞고 버티고 제대로 맞추는 게 중요했다. 트레이너가 명령하는 타이밍과 그걸 듣고 실현하는 포켓몬의 순발력, 호흡 모두가 맞아야 했다. 상대는 작은 만큼 피하기도 쉽고 맞추기도 쉬우니까.

 

"현재, 인파이트!"
"다이월로 버텨요! 그리고 곧장 다이스트림!!"

  강력한 다이월을 강력한 인파이트로 두들기는 소리는 어쩐지 우산 위에 우박이 떨어지는 것과 유사했다. 체감상으로 우박보다는 운석에 가깝기는 했지만. 방어막을 쳐 인파이트를 버틴 뒤, 머리로 창파나이트를 길게 튕겨낸 거다이라프라스가 그대로 강력한 다이스트림을 쏟아부었다. 거대한 만큼 스케일도 달라서, 마치 폭포가 몰아치는 소리가 났다. 그걸 샤론의 명령을 받아 파로 만든 검으로 어떻게든 갈라내서 충격을 감소시키는 창파나이트는 무시무시했지만. 

  허나 이 역시 데미지가 아예 제로는 아닐 터. 소녀는 라프라스를 한 번 올려다보고, 눈앞의 샤론을 보았다. 팔을 걷어붙이고 전심전력으로 싸워주는 상대를. 그리고 소리쳤다. 

 

"다이어택!!"

"브레이브버드!!"

 

  두 포켓몬의 전력을 쏟은 공격이 동시에 충돌했다. 충격파가 불어오는 것을 버티며 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모래먼지 자욱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필드를 파악한 차분한 남성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창파나이트, 시합 불가능!"

"무한! 원수갚기!"

"노래해요, 라프라스! 버텨요!"

 

  거다이선율이 펼쳐지며 무지개빛 베일이 숲 가운데 필드에 내려앉는 것과, 타격귀의 무시무시한 원수갚기가 라프라스를 후려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라프라스가 긴 울음소리를 흘렸다. 소녀는 거대한 라프라스를 한 번 올려다보고, 혀를 차며 필드를 보았다. 어느 정도 회복은 했지만 벌써 두 마리 째. 만나자마자와 브레이브버드를 버틴 것도 거다이맥스한 라프라스나 할 수 있는 짓이었다. 라프라스는 슬슬 무리다. 람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렇다면 동귀어진이라도 하는 게 다음 포켓몬을 위한 방도일 터. 소녀는 방어 명령도 회복 명령도 포기하고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제 파트너가 해내 줄 것을 믿으며!

 

"전력으로 다이스트림!"

"갈라버려요, 무한! 태권당수!!"

 

  강력한 물 공격과 바다도 가르는 태권당수가 충돌한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의 강력한 다이스트림을 가르고 타격귀는 제 트레이너의 지시대로 라프라스를 후려쳤으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공격하던 거다이라프라스가 온 힘을 다해 후려치는 다이어택까지는 견디지 못했다. 거대한 충격파로 날아갈 뻔한 것을 잡아준 것은 골덕이었다. 공격의 충격도 충격이었으나 거다이라프라스의 패배와 동시에 거대화가 터져서 사라진 여파가 컸다. ──라프라스, 타격귀, 시합 불가능! 몬스터볼로 돌아온 라프라스를 소중히 끌어안았다가 다시 허리에 매달며 람은 두 번째 포켓몬을 꺼내들었다. 시합 전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순서를 많이 고민했고, 또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서야 할 아이는 이 아이였다. 

 

"나와요, 미로슈! 당신이 강해졌다는 걸...... 보여줘요!"

"바인, 지지 말아요! 마하펀치!"

"파도타기로 피해요!"

 

  빈티나가 긴장했다는게 트레이너인 람에게까지 여실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당연히. 성격적으로도 포켓몬 개체적으로도 빈티나는 배틀에 익숙한 포켓몬이 아니었다. 싸울 기회를 많이 줬던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샤론이 내보낸 포켓몬은 상성적으로도 불리한 버섯모. 하지만 빈티나가 아닌 미로슈는 앞으로 배틀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어떻게든 불러낸 엷은 파도로 마하펀치를 피하기 위해 허공을 유영하던 빈티나였으나, 끝내 번개처럼 날아오는 마하펀치에 후려맞아 멀찍히 날아가는 모습에 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야생에서도 크게 싸워보진 않았을 아이니, 순간적인 요령이 부족할 것은 이미 예상했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팠다. 한 대라도 더 맞으면 빈티나는 일어서지 못하리라. 

  소녀가 심판으로 서 있는 포말하우트에게 눈짓하고 빈티나에게 회복약을 던졌다. 회복제한은 두 번. 이걸로 한 번 사용하는 것은 뼈아플지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빈티나가 쓰러지면 안 됐다. 라프라스 정도로 일해주리라 과욕을 부리지 않으니, 이 한 마리. 버섯모만큼은 이겨야 했다. 저에게 주어진 회복약으로 가까스로 상처를 회복한 빈티나가 람을 응시했다. 조금은 겁을 먹고, 통증에 괴로운 눈. 하지만......

 

"이겨요, 미로슈! 할 수 있어요!"

"좋아요, 한 번 보여주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당신이 있으니 싸우겠노라 결심한 눈! 아직 나약한 빈티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포켓몬에게 믿음을 싣고 소녀가 명령했다. 

 

"몸통박치기!"

"스카이업퍼!!"

 

  높이 떠밀듯 공격해오는 매서운 격투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를 악물고 빈티나 역시 몸을 날려 제 최고의 공격을 넣어냈다. 이런 일 대 일 시합은 어쩐지 저도 격투 타입이어야 할 것 같네요! 배우고 있는 격투 기술은 아무것도 없지만! 람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외치며 한 번 매섭게 웃었다. 반대편에서 샤론도 비슷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빈티나로 이런 배짱 싸움을 하게 될 줄은 몰랐건만. 정말이지 모를 일만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걸 잘 하는 포켓몬은 지금도 열렬하게 몬스터볼 밖을 응시하고 있을 엠페르트겠지만, 지금은 잘한다 못한다를 따질 때는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몸통박치기!"
"다시 한 번 스카이업퍼!"

 

  체력과...... 배짱싸움이에요! 다시 한 번, 이길 때까지, 몸통박치기! 서로 공격과 회피를 모두 포기한 공격이 묵직하게 충돌했다. 쾅, ...쾅!, ......쾅!! 두개도스의 박치기 싸움마냥 몇 번이고 부딪히는 사이, 트레이너들의 눈매는 점점 매서워졌다. 제 포켓몬들이 약해지고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끊어지지 않음을 똑똑히 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먼저 쓰러진 쪽은 좀 더 작은 쪽이었다. 

 

"빈티나, 시합 불가능!"

 

  그리고 뒤이어 큰 쪽도.

 

"버섯모, 시합 불가능!"

 

  고마워요 미로슈. 고생 많았어요. 제 몬스터볼로 돌아온 빈티나에게 람이 작게 속삭였다.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빈티나는 아주 잘 해 줬다. 남은 포켓몬은 세 마리, 이쪽은 두 마리. 기대 이상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잘 풀어왔지만...... 소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크게 호흡했다. 람이 남겨둔 포켓몬들도 오래 갈고 닦은 아이들이지만, 샤론이 지금부터 꺼내들 아이들도 그와 꼭 같을테니까.

  하지만 긴장되는 만큼 즐겁다. 무서운 만큼 재밌다. 떨리는 만큼......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물 포켓몬들과 샤론의 포켓몬을 상대하는 일에, 가슴 떨릴 만큼 설레고 있었다. 

 

"엠페르트!"

"코제트!"

 

  몬스터볼에서 뛰쳐나와 필드에 나서는 순간 두 형체가 곧바로 얽혀들었다. 엠페르트의 메탈크로우와 루카리오의 코멧펀치가 날카롭게 충돌했다. 강철타입 기술 특유의 금속음이 허공을 채우고, 눈으로 둘의 움직임을 쫒던 트레이너가 매섭게 외쳤다. 


"파동탄!"
"아쿠아제트로 피해요!"

 

  온몸을 물로 감싼 엠페르트가 날렵하게 허공을 갈랐다. 푸르스름한 파동탄이 폭탄처럼 매섭게 그 뒤를 추적했으나 물 쪽이 조금 더 날렵했다. 가장 긴 시간 소녀와 함께했던 엠페르트는 어제 제 주인을 제대로 못 지켰다는 분노에 잔뜩 화가 나서, 도리어 아주 냉정해져 있었으니까. 바로 그런 점에서 엠페르트는 주인과 꼭 닮아있었다. 차분하게 아쿠아제트로 파동탄을 회피해낸 엠페르트의 경로를 확인하며 일순 소녀가 웃었다.

 

"거기서 멈추고 바다회오리!!"

 

  한 바퀴 빙글 돌아 아쿠아제트를 풀어낸 엠페르트가 곧장 거대한 바다회오리를 불러내 그 안에 루카리오를 단단히 가뒀다. 푸르스름한 바다 속 루카리오의 붉은 눈이 당황한 듯 허공을 헤맸다. 샤론이 소리높여 외쳤다. 

 

"코제트, 진정하고 코멧펀치로 바다회오리를 깨는거에요!"

"그 전에 끝내는 거에요, 엠페르트! 하이드로펌프!!"

 

  루카리오의 코멧펀치가 바다회오리를 터트리는 동시에 엠페르트의 강력한 하이드로펌프가 루카리오를 먼 곳으로 처박았다. 일어나지 못하는 루카리오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가 승패를 갈랐다. 

 

"루카리오, 시합 불가능!"

 

  이제 남은 포켓몬은 두 마리. 숫자 자체는 같다지만...... 람은 긴장으로 굳어지는 뺨을 슬슬 매만졌다. 몇 번이나 돌려봤던 영상에서 여기까지 왔던 동기들도 여럿 있었다. 덕분에 어떻게 싸울지 내내 생각할 수 있었으나, 이 앞은 이기기 위한 심상을 똑바로 짜지 못하고 왔다. 그만큼 강한 상대였다. 몇 번이고 보고 또 봐도, 어떻게 이길지 궁리해도, 마지막 상상 속의 샤론과 그 포켓몬들이 고개를 처들고 있다가 우아하게 승자의 인사를 건내고는 했다. 샤론의 강력한 포켓몬들. 여기서부터는 정말 자신의 순발력과 트레이너로서의 센스... 그리고 포켓몬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엠페르트는 여전히 필드에 서 있었다. 데미지는 적게 받았고, 무엇보다 지금 투기가 넘친다. 람이 꺼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카드였다. 그리고 람이 누구보다 믿고 있는 상대이기도 했다. 은은한 긴장과 그 이상으로 필드를 휩쓰는 흥분을 느끼며 샤론도 웃었다. 

 

"다른 포켓몬보다 표정이 좋네요. 이 아이가 지금의 람이 내보내는 최고겠죠? 예전에 포켓잡으로 건내드릴 때에는 작은 팽도리였는데. 많이 컸네요."
"그게 티가 나나요? ......뭐, 그렇죠. 샤론 덕분에 함께 졸업할 수 있게 되었네요."

"후후... 멋지게 성장했는걸요. 그럼 저도 그에 걸맞는 상대를 해야겠죠."

 

  상냥하게 웃던 샤론이 다시 눈에 투기를 담고 볼을 들어올렸다. 다음 순서로 샤론의 볼에서 튀어나온 포켓몬은 차분해보이는 엘레이드였다. 론도. 샤론의... 에이스. 소녀와 엠페르트가 엘레이드의 칼날같은 분위기에 미처 긴장하기도 전에, 샤론의 손목에 찬 메가뱅글도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이지만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제 앞의 트레이너가 자신의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음을. 단 한 번만이라도 판단을 잘못한다면 곧장 쓰러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하얀 얼굴에 푸르스름한 긴장이 역력하게 어렸다. 

 

"지금부터는 결정타입니다, 론도! 메가진화!"

"엠페르트! 우리 역시도 전력이에요!"

 

  긴 칼날 같은 팔과 망토처럼 늘어지는 차림새. 그야말로 고대 기사에 어울리는 모습의 메가엘레이드는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소녀가 이제껏 싸워본 그 누구보다도 강함이 자명했다. 허나 메가진화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황제처럼 뻔뻔하게 고개를 쳐든 엠페르트도 어디 가서 질 녀석이 아니니까. 엠페르트는 지금 람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포켓몬이고, 그 이상으로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자신의 첫 번째 파트너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엠페르트가 가장 강하리라 믿었다.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를 해 줄 것을 믿었다. 

 

"사이코커터!"

"메탈크로우로 받아쳐요!"

 

  쏟아지는 보랏빛 칼날을 강철같은 날개가 차분하게 쳐냈다. 그 사이 샤론의 선뜩한 명령이 날카롭게 이어졌다. 품으로 파고들어요. 야습! 쏟아지는 사이코커터 사이로 메가엘레이드가 능숙하게 제 몸을 숨기고 그림자처럼 접근했다. 찔러오는 야습을 피하지는 못할 터. 소녀는 잠시 명령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바다를 닮은 눈동자가 심해처럼 잠시 참잠했다. 이기기 위해서, 좀 더 배짱을 부릴 필요가 있었다. 제 포켓몬을 믿고, 조금 더 대담하게. 절벽에 몰아치는 파도처럼, 거센 물살처럼. 

  야습을 맞을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서, 소녀는 그제야 제 포켓몬에게 명령했다.

 

"버텨요! 바다회오리!"

"똑같은 수는 통하지 않아요! 론도, 인파이트!"

"바다회오리의 물까지 모두 흡수해서 아쿠아제트로 흘러넘겨요!"

"피하게 두지 말아요! 사이코커터!"

 

  노도같은 트레이너의 명령이 쏟아지고, 그 짧은 틈새에 이어지는 명령을 포켓몬들은 충실히 따랐다. 야습이 배에 박히는 순간 충격을 견뎌내고 넓게 퍼진 파도같은 바다회오리를, 메가엘레이드는 능숙하게 강력한 인파이트 한 방으로 박살냈다. 어차피 걸릴 거라고 예측하여 펼친 기술은 아니었으니 아쉽지도 않았다. 엠페르트가 아닌 바다회오리를 노리며 중심축이 빗겨간 사이 밀접하게 붙어있던 엠페르트가 뛰어올라 아쿠아제트로 거리를 벌렸다. 메탈크로우를 배우고 있었으나 접근전에서 유리한 건 당연히 격투 타입인 상대편었으니 이쪽은 최소한 중거리전으로 거리를 벌려야했다. 

  샤론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매섭게 뒤를 쫒아 거리를 잡을 수 있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사이코커터를 보며 람은 숨을 한 번 뱉고, 아주 짧은 찰나 망설였다가, 끝내 외쳤다. 

 

"엠페르트, 어느 정도 맞는 걸 감수하고 그대로 돌아요! 피하지 말고, 그대로 아쿠아제트로 돌격해요!"
"대담한 수네요! 하지만 견딜 수 있을까요? 론도, 옵니다! 정면으로! 인파이트!"

 

  허공을 유영하던 엠페르트의 아쿠아제트가, 그대로 메가엘레이드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그리고 그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동선 끝에서 기다리던 메가엘레이드도 거침없이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연기가 뿌옇게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필드에서, 람은 그저 포켓몬이 버텨냈을 것임을 믿고 외쳤다. 여기서 쓰러지면 끝이었다. 그걸 둘 모두 알고 있으니, 람은 엠페르트가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제발...! 버텨요, 엠페르트! 하이드로펌프!!"

 

  그리고 트레이너의 목소리에 포켓몬이 답했다. 푸르스름한 물의 선이 곧게 상대에게 뻗었다. 위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멀리 처박히기까지 할 정도로 강력한 하이드로펌프였다. 정진정명 정면으로 들어갔으나, 그걸 맞고도 상대는 일어났다. 어떻게든 버텨내는 메가엘레이드의 모습에 람은 잠시 헛웃음을 지었다.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데미지는 충분히 입혔다. 람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메가엘레이드를 노려보다가, 끝내 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엠페르트를 다정한 눈으로 보았다. ──엠페르트, 시합 불가능!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굉장한 하이드로펌프네요. '급류' 군요?"
"맞아요. 노린 거였는데 그걸 버티다니. 너무 굉장한 거 아니에요, 샤론?"

 

  엠페르트의 특성. 급류, 자신의 체력이 ⅓ 이하일 때는 물 타입 기술의 위력이 1.5배 오른다. 마지막이라는 오기에 급류 특성까지 더해진 하이드로펌프를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일어내는 메가엘레이드의 굉장함에 람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래도 엠페르트는 승리 바로 앞까지 자신을 보내주었다. 그렇다면 트레이너로서, 힘겨운 명령을 해던 자신은 이겼노라고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남은 포켓몬은 고작 이 아이뿐이지만...... 마지막 순서로 둘 만큼 이 아이를 믿는다. 그리고, 배틀을 할 때는 반드시 이기겠노라고 생각하며 싸워야 하니까. 람은 고개를 처들고 엠페르트와 꼭 같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마지막 포켓몬을 내보냈다. 

 

"마지막은 당신밖에 없죠! 샤미드!"

"론도! 파동탄!"
"엠페르트가 노력해준 걸 보았겠죠, 샤미드! 파도타기로...... 모조리 쓸어버려요!"

 

  이 아카데미에서 받은 두 번째 파트너. 트레이너를 위해 물 타입으로 진화해주었던 아이가 필드에 섰다. 트레이너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물 포켓몬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던 아이가 이를 세우고 파도를 불렀다. 정말 좋아하는 라프라스도, 귀여워하는 빈티나도, 가끔은 무섭지만 든든한 엠페르트도 트레이너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해 싸우는 것을 볼 속에서 똑똑히 보았다. 매일 장난을 치지만 다정한 골덕도, 마찬가지로 늘 골덕과 투닥거리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플로젤도 주인의 뒤에서 자신을 믿고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신뢰를 등에 업고 마지막 포켓몬이 된 샤미드는 절대 질 수 없었다.

  작은 체구에서 터져나왔노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높고 공격적인 울음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렸다. 저에게 날아오는 파동탄을 모조리 버텨내며 불러낸 강력한 파도타기가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던 메가엘레이드를 휩쓸었다. ──엘레이드, 시합 불가능!

 

"......그럼 저도 마지막 포켓몬이네요."
"그렇네요!"

 

  그 사이 람이 샤미드를 불러 마지막 치료약을 썼다. 엠페르트가 버텨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끼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자, 이제 우리 모두 만전이에요, 샤미드. 할 수 있죠? 신뢰를 담은 트레이너의 그 말에 샤미드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전설의 이름을 가진 포켓몬이어도, 그래도 이길 수 있었다. 저는 바로 이 말을 듣기 위해서, 이 말의 신뢰를 위해서 이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를 다짐했으니까. 

 

"라티오스!"
"샤미드!"

 

  샤론의 등 뒤에 서 있던 라티오스가 드디어 필드에 섰다. 이제껏 내내 고요한 눈으로 두 사람의 시합을 보고 있던 무한포켓몬이, 내내 자질을 시험하고 있던 특별한 포켓몬이! 고집쟁이 샤미드는, 배짱 좋게 전설의 포켓몬을 앞에 두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눈은 라티오스의 움직임을 놓칠까 내내 날카로웠다. 주인이 저들을 무릎에 올리고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두꺼운 책을 넘기고 라티오스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던 밤을 기억했다. 상냥한 포켓몬,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영리하고, 다정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을 따른다는 포켓몬......

  그렇다면 너는 이미 내 주인의 것이야. 에스퍼 타입을 포기한 샤미드는 기꺼이 예지했다. 너는 우리 막내보다도 새 막내라고!

 

"용의 파동!"
"하이드로펌프!"

 

  두 가지 강력한 기술이 다시 한 번 충돌했다. 샤미드는 그 직후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람의 옛 지시에 따랐다. 둘 사이의 보잘 것 없는 약속이었다. 람은 물처럼 녹는 샤미드를 정말 좋아했으니까. 샤미드는 녹을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녹아서 방심을 노리도록 해요. 배틀도, 싸움도. 알았죠?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했던 말이지만 샤미드는 여전히 그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완전히 녹아버린 샤미드가 빠르게 라티오스의 바로 아래로 이동했다. 그 존재를 눈치채기 전에, 호수처럼 고요하게.

 

"라티오스! 샤론! 이게 지금 우리들의...... 전력!"

 

  파도타기!! 그림자 속에 녹아 숨어있던 샤미드가 곧장 튀어나와 푸른 파도를 불렀다. 숲을 모조리 휩쓸 정도로, 대지를 감싸고 배틀의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필드를 모조리 가라앉힐 정도로 강력하게. 바다는 하늘 위에 오를 수 없으나, 구름을 찌를 듯 높이 치솟는 파도가 결국 송곳니를 드러내도록.

  그리하여 끝내, 하늘을 나는 무한포켓몬을 땅으로 떨어트리도록. 

 

 

 

"하아...... 하아......"

"후우......"

 

  소녀가 긴장을 담아 라티오스를 노려보았다. 끝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렇다기에는 시합종료의 목소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짧게 기절한 듯 샤미드의 발밑에서 움직임이 없던 라티오스는 곧 움찔 몸을 떨더니, 곧 샤미드를 떨쳐내고 천천히 다시 몸을 일으켜 날아올랐다. 2차전인가요.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가늘어지려는 찰나, 라티오스는 샤미드에게서 고개를 돌려 람을 보았다. 그리고 투기 없이 부드럽게 날아 소녀의 머리 위에 섰다. 배틀의 긴장감은 문득 날아가버린 뒤였다.

 

 .....? 소녀가 의문을 담아 라티오스를 응시하고, 샤론을 보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헌데 눈앞의 무시무시한 트레이너였던 소녀는 어느 틈엔가 다시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넓은 숲처럼 잔잔하게. 

 

"라티오스, 시합 불가능. 따라서 승자, 람 님입니다."

"......?"
"라티오스를 쓰러트려 기절시킨 순간부터 라티오스의 시험은 끝났어요, 람."

 

  .......승자 람 님. 람 님이 누구더라...... 난가? 소녀의 머리가 무디게 돌아갔다. 그리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트레이너보다 포켓몬들의 반응이 더 빨랐다.

  골덕이 람을 지탱하던 염동력을 지우고 그 몸을 한껏 끌어안고, 플로젤이 질쏘냐 마찬가지로 주인을 끌어안았다. 필드에 서 있던 샤미드가 곧장 달려와 소녀의 가슴팍에 제 머리를 부볐다. 세 마리의 어택에 쓰러진 소녀가 비명과 감사를 동시에 외쳤다. 억, 아파요. 아파요! 골덕, 플로젤, 으윽. 샤미드. 나야말로 고마워요. 너무 기쁜데 조금만 진정, 꺄악! 세 마리 포켓몬의 뺨을 핥아오는 혓바닥이며 묵직한 몸무게며 저를 쓰다듬어달라 어필해오는 머리통을 이기지 못하고 깔려 어쩔 줄 모르는 아카데미생 트레이너를 보며, 심판이자 심판자로서 서 있던 두 명의 트레이너가 잠시 마주보고 웃었다. 

 

  라티오스가 조용히 람의 모자를 주워 와 왕관처럼 소녀의 머리위에 씌워줄 때까지. 

 

 

 

 

 

공미포 1029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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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