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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AU

2018. 12. 10. 00:57 from others/Otohara Ruka

나는야 에유팡인.... 뭐든지 주워먹는다네.... (기타침)

센티널버스AU 같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잘 모를수도 있고 해서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관 / 초능력자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음 < 이걸 기반으로~!

*




복도는 색감을 완전히 뽑아낸 것처럼 희거나 회색빛이 돌았다. 마치 실험실같은 이 공간은, 처음 이 복도를 걷는 사람을 짓누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청년은 엷게 미간을 좁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 중간중간에는 문과 창문이 붙어있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안쪽에서는 바깥을 볼 수 없어요." 곁에서 함께 걷던 이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고 시험하는 장소이다보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만들어두는 게 효과적이라는 설명 역시 이어졌다.

 덕분에 이 층으로 넘어오는 보안이 상당히 까다롭지만요. 하지만 방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복도에서 모른다면, 능력자가 폭주하거나 할 때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기 늦어져요. 능력자들을 대하는 일에서는 작은 망설임과 사소한 판단미스가 큰 문제가 되고는 하죠. 늘 그렇듯이. 


 상대의 목소리는 물 흐르듯 유려했고,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청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방은 반쯤 비어있었고 나머지 반쯤은 차 있었다. 물건을 띄우거나, 불을 뿜어내거나, 무언가를 압축하듯 구기고 있는 사람들을 흘리듯 지나치던 청년은 문득 하나의 창문 앞에서 멈춰섰다. 관리번호 1223. 안쪽의 능력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 복도만 걸어도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능력자였음에도 청년이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능력자라고 보기에 상대가 너무나도 이성적으로 보였다. 능력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해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폭력적이 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위험하다고 분류되어 관리대상이었다.) 감정표현이 크고 활발한 그들은 몹시도 외향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는 능력자들의 대체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허나 1223번은 청년이 이제껏 본 그 누구보다도 얌전한 능력자였다. 

 모든 방에는 바깥과 연결되는 창문이 없었기에, 1223번을 비추는 건 환한 형광등 하나였다. 언뜻 보아서는 능력자라기보다는 관리자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소년을 능력자라 확신한 것은 그가 온통 흰 실험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해와 같은 머리카락은 검푸른 빛이었고, 피부는 햇빛이라고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희었다. 책의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얇은 손목에 푸르스름한 핏줄이 비칠 정도였다. 1223번은 밖에 누가 저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한 것처럼 (애초에 내부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고요한 표정으로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속눈썹이 길고 뺨이 뽀얀 그는, 실험실의 한가운데보다는 다락방에 숨어 램프 아래 소리 죽여 웃는 얼굴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소년이었다. 

 그래, 소년. 청년이 걸음을 멈춘 두 번째 이유는 상대가 1223번이 이곳에 있기에는 너무도 앳되었기 때문이었다. 앉아 있어도 키가 길쭉하게 큰 건 보였지만, 실험복에서 빠져나온 몸의 선이나 골격 따위를 보면 성인과 아이의 경계에 선 특유의 형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청년은 가만히 소년을 응시했다. 청년의 시선이 고정되고 발걸음이 멈추자, 함께 걷던 동행자도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갔다. 아아. 상대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토하라 군이네요. 처음 보죠?"

"네. 어려 보이네요."

"실제로도 어려요. 이제 열 여덟이던가, 일곱? 열 아홉은 못 되었을 거에요."

"미성년자입니까?"


 청년이 미간을 확 좁혔다. 동행자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 너무 그러지 말아요. 보호자의 허락과 본인의 허락, 둘 다 받고 이곳에 있는 거니까요. 상대의 너스레에 가까운 말에도 청년의 미간은 여전히 단단히 좁혀져 있었다. 보호자가 이곳에 있는 걸 허락했단 말입니까? 청년의 목소리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짙게 실려 있었다. 동행자 역시도 그 감정을 아예 모르지는 않았기에, 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상냥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오토하라 군의 가문은 이 쪽 실험과 연구에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거든요. 정계 쪽에도 이어져 있고. 그 쪽도 유일한 후계자가 설마 능력자로 각성할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어쩌겠어요. 그 쪽도 체면이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을 거에요."


 그런 이유로? 청년은 얌전히 두꺼운 책을 무릎 위에 얹고 책장을 넘기는 소년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소년의 흰 피부는 이제 창백한 혈색으로도 보였다. 색감이라고는 소년이 가진 머리카락과 들고 있는 책의 표지가 전부일 정도로 하얀 방에서, 소년은 흰색에 먹혀 사라질것처럼 연약해보였다. 청년이 불만족스러운 신음소리를 짧게 흘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책에서 떨어진 소년의 시선은 마치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창문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강렬한 착각이 청년을 사로잡았다. 소년의 눈은 강렬한 파란색이었다. 새파란 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눈이 크게 떠지고, 얼어붙은 것처럼 굳은 청년에게 소년은 천천히 다가왔다. 소년의 손짓 한 번에 허공에 가벼운 파도가 일었고, 소년이 덮은 책의 끝장에서 종이 한 장이 빠져나와 소년의 손에 빨려들듯 흘러들어왔다. 


 소년은 그 종이를 뒤집어 창문에 붙였다. 청년은 이제 그 종이에 무엇이 쓰여져 있는지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서류였다. 소년의 신상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 소년은 청년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오토하라 루카. 18세. 남자. 재해급 능력자. 능력명 대해大海. 

 이쪽이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마치 이쪽을 보는 것처럼 반갑게 웃었다. 재해급이라면 어떤 능력이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니, 실제로 소년의 눈에는 이쪽이 보일지도 몰랐다. 무표정하게 책을 읽고 있던 청년은 마치 공간에 잡하먹힐 것처럼 연약해보였는데, 시선을 마주하고 미소짓는 청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생동감 넘쳤다. 인형이 살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급격한 변화였다. 

 청년은 무심코 창문에 손을 대었다. 창문의 싸늘한 냉기만이 청년에게 현실감을 선물하고 있었다. 소년이 손을 들어 안쪽에서 창문에 손을 대었다. 마치 겹쳐진 것처럼 마주댄 손끝은 차갑기만 했지만, 청년은 이것이 소년이 저에게 건내는 최대의 호의로 가득찬 인사임을 깨달았다. 바다를 닮은 소년은 파도처럼 밀려와 그에게 포말처럼 웃어주고 있었다. 










 ** 


아래로는 썰백업


 기본적으로 능력자와 관리자가 있고... 센티널버스au라면 가이드가 있어야 센티널이 살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까말까 고민중... 그냥 능력자의 서포터(멘탈부터 능력까지) 모조리 관리하는 전담 가이드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고... 능력자는 어떻게 각성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큰 충격이나 신체적 이상을 겪고 각성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좀 불안하다는 설정도 있으면 좋겠다 아주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외향적이라기보다는 음... 활발한...? 감정적인 게 제일 어울릴듯 정신의 무언가로 각성했기때문에 능력도 감정에 크게 영향받고 막 그러면 좋겠다 


 루카는 당연하지만 바다 관련... 대해? 능력명은 그런 거 정도면 좋을 듯 이름은 대해지만 물을 만들고 움직이고 조종하고 그런 능력인데 루카는 머리가 좋아서 물의 구조까지 파고들어갔기 떄문에 그쪽까지 다스릴 수 있는거고... 대해라는 건 바다만큼이나 거대한 물을 지배 하에 둘 수 있기 때문이면 좋겠다 겉으로 보기에 가냘픈 미소년이 사실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자라는 사실... 너무 짜릿하니까(?


 재해급/재앙급(S) - 천재급(A) - 선별급(B) - 능력급(C) - 마술급(D) <여기서는 관리도 받지 않는 정도... 나에게는 네이밍센스같은거 없어... 아무튼 재해급은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 조금... 소수.. 조금... 애초에 능력자 자체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을듯. 급을 정하는 건 능력의 강력함/능력의 유지도/능력의 안정도 세 개로.. 루카는 강력함 안정도 유지도 전부 높아서 SS 판별을 받은 재해급... 유지도나 강력함은 높은데 안정도가 낮아서 관리자 백업이 필수인 사람들은 S 혹은 A (이 케이스가 꽤 많을 듯)


 각성한 건... 14살... 14살이지만 안정도가 워낙 높아서 전담 관리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되는건가? 사실 안 됩니다... 근데 루카가 18살까지 성장하는 4년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듯 안정도도 특출나게 높고 근데 사실 자기자신을 제일 경계하고 자신의 폭주를 신경쓰는 건 루카 본인이어도 좋다 루카에게는 특별히 여러가지 혜택이나 그런게 주어지지만 본인이 거절하고 본인이 조심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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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끝에는

2018. 12. 7. 00:51 from others/Otohara Ruka




 소년은 느릿하게 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목덜미를 덮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은 조금 땋아 반으로 묶어 늘어뜨린데다가 늘 곱게 빗질을 했지만, 조금씩 뻗치는 부분이 있었다. 루카는 제 머리를 완전히 얌전하고 반듯하게 만들기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교실의 앞쪽에서는 한창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늘 성실한 모범생이었던 소년은 오늘따라 유독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의 손은 펜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큰 의미 없이 몇 번 종이를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펜을 잡았다. 푸른 눈동자가 가만히 흰 종이에 닿았다. 

 생각에 빠진 소년은 늘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고등학생이 되어 성장이 끝나고, 얼굴에 앳된 티만을 남기고 성인의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무의식적 습관은 더욱 심화되었다. 펜 닿는 곳에 굳은살이 배인 손가락이 가만히 백지를 쓸어내렸다. 창가 근처에 앉은 소년의 시선은 책상에 박혀 있어서 언뜻 보기에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보였기에, 아무도 소년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았다. 창문을 가리는 커튼 사이로 짬짬히 쏟아지는 햇빛도 소년의 사고를 침범하지는 못했다. 도리어 심해와 같은 머리카락에 내리쏟아 파도처럼 소년의 머리카락을 밝게 만들기만 했다. 


 소년은 가끔 이런 식으로 생각에 잠겼다. 가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조금 자주. 어쩌면 종종. 늘 이런저런 공식과 계획으로 잔뜩 돌아가던 머리가 휴식을 주장할 때. 가끔 찾아오는 두통이 머리를 잠식할 때. 아무도 곁에 없는데 무엇을 할 지 생각해놓지 않았을 때. 악몽을 꾸고 난 직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괴로워져서 숨을 내뱉기 힘들 때. 그럴 때마다 소년은 잠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떠올린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쪽에 가까웠다. 그의 평화는 늘 한 명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숨을 들이마쉬었다가 내쉬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아주 당연하게 소년의 머리를 빼곡하게 채워서 소년을 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만큼 소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었다. 

 늘 당신이 있어서......

 

 루카는 시선을 내깔고 흰 종이에 조금 눌러 쓴 글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좋아하는 이유를 꼽아 보자면 눈 한번 깜박이는 새에도 몇 개나 꼽을 수 있었다. 빛 아래에서 반짝이듯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 흰 피부와 자색 눈동자. 조금 거친 듯 보이지만 늘 저를 보면 상냥하게 풀어지는 표정, 다정한 목소리, 애정이 가득한 시선. 어렸던 자신을 내치지 않았던 그의 다정함과 내면의 성실함. 닿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자신을 배려하여 자신이 인내하는 그 마음가짐까지 어느 하나 좋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가끔은, 그는 자신을 그저 동생으로만 보는 것인데 저 혼자 욕심을 내어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우울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얽히고 곧장 휘어지는 그 자색을 응시하고 있다보면 그 불안함이나 우울함도 한없이 빛바래 희석되어 사라졌다. 보고 있자면, 언젠가 끝마쳐 없었던 것처럼 접혀진다고 해도, 그래도 지금을 믿고 행복해지고 싶어졌으니까. 

 

 당신이 왜 이렇게 좋을까. 소년이 천천히 눈을 감고 짧게 숨을 뱉었다. 저 홀로 시작했던 짝사랑에 응답해준 그에게 늘 감사하고 있었으나 소년은 언제나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좋은 걸까. 당신은 나를 왜 좋아하는 걸까. 소년의 성정상 그는 답을 찾았다. 소년의 마음에 빠듯하게 들어차는 만족스러운 답은 아직까지도 내리지 못한 채였다. 

 가끔은 사랑에 의문을 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까? 허나 소년 그 자체가 곧 그가 느끼는 사랑의 증거였기에, 의문은 곧 헛웃음과 함께 종식되었다.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 어떠한 이름도 붙을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생각 사이에서도 당신만 생각하면 다른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 당신이 내 생각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이를 어찌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루카는 눈을 뜨고 커튼 사이로 조각처럼 언뜻 엿보이는 하늘을 보며 웃었다. 

 아, 당신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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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AU 3

2018. 12. 2. 03:29 from others/Otohara Ruka

전 몰랐지 이게 3편까지 올지... 근데 오더라구요 모든 상황은 저 좋을대로 만들어낸 날조이며 언제든지 다른 상황을 가정해서 썰을 풀 수 있고 저는 하토라의 설정과 썰을 듣고 보고싶은 장면을 작성한 것이며 (횡설수설 변명하기) 로그를 쓰는 것은 정말로 제가 보고싶어서 쓰는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냥... 같이 좋아해주시면 저도 좋고 그런 거니까요 ><);;!!

*






 비가 오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이제 한결 약해져있었지만, 그럼에도 끈기있게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온 공기에 습기가 가득했다. 성체가 되었으나 아직 어린 용은 그러한 환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애초에 비를 좋아하던 용이었으니 성체가 되었다고 해도 개인의 호불호가 변했을 리 없었다. 별 일 없을 거라며 비 오는 날씨 탓에 더 화려한 장미 모양이 된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내리는 무녀를 뒤로 하고, 흰 종이우산을 손에 든 용은 일찌감치 신사 바깥으로 나왔다. 늘 가던 신령의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가벼웠다. 


 용은 지상에 내려온 뒤 끊임없이 제 사랑의 곁을 맴돌았다. 그에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는 멀게, 허나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는 가깝게. 덕분에 그가 보살피는 마을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조금씩 친해지기까지 했다. 용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고,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사소한 능력도 다양했으니까. 우물물을 깨끗하게 해주거나, 새 물길을 파는 일은 성룡에게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늘은 비가 오니, 그는 오늘도 집에 머물까. 그럼 나는 마을의 작물이 무너진 것이 없을까 비에 산이 쓸려가지는 않을까 마을을 조금만 살펴보고 돌아갈까...... 용은 가벼이 눈을 깜박였다. 높이 올려묶은 머리카락 절반과 달리 길게 늘어뜨린 절반의 머리카락이 허리춤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땋은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며 용은 가벼이 콧노래를 불렀다. 호흡 한 줌마다 습기가 가득 차는 지금 이 상황이 마음 가득 만족스러웠다. 


 멀리서나마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용은 작은 아쉬움을 삼켰다. 그래도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되겠지. 용은 느리게 마음을 단념하며 몸을 돌렸다. 그 집 있는 방향이라도 보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리고 몸을 돌린 순간 마주한 시선에 그대로 얼어버린 용이 무심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한가득 자색이 들어찼다. 놀란 눈의 하토라와 시선이 마주친 루카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너무 놀라 뿔이 튀어나오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며 숨을 들이삼켰다.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기척을 짚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비가 온다고 들떠 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제 등 뒤에 하토라가 설 때까지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며 용은 옷자락으로 제 얼굴을 조금 감췄다. 안 봐도 지금의 저가 꼴사나운 모양새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얼굴색부터 관리하기 힘들었다. 


 우산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고즈넉했다. 처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사랑의 모습에 루카는, 겉으로 티내지 않았으나 몹시도 긴장했다. 귓가가 불긋했고 뺨은 보기에 사랑스러울 정도로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가 빗소리보다도 커서 상대의 귀에 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작게 입을 달싹였다가 천천히 닫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차마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쩔쩔매다가, 용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구나."


 비 오는 날은 좋아하느냐? 초면의 상대에게 던지기에는 그다지 좋은 질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을 앞에 두고 긴장한 어린 용이 건낼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대신 용은 곱게 웃었다. 처음 제 사랑에게 말을 붙여 본 기쁨이 걷잡을 수 없이 용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희고 고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긴 머리카락이 용이 웃으며 어깨를 살짝 들썩이는 움직임에 맞춰 작게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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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AU 2

2018. 12. 1. 02:58 from others/Otohara Ruka




"괜찮으셔요, 왕자님?"
"그래, 심려치 않아도 괜찮다."


 어린 용은 엷게 웃었다. 마냥 상냥한 모양새였으나, 용의 주변을 맴돌던 시종들의 낯은 그 모양새를 볼수록 가라앉았다. 발갛게 열이 올라 앓아 누운 상태로 괜찮다 말해봐야 걱정만 살 뿐이었다. 그 역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왕자는 손짓으로 시종들을 모조리 물려버렸다. 곁에 앉아서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어 봐야 속만 상할 뿐이었다. 소리없이 바깥으로 헤엄쳐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곧 방에는 그 홀로 남았다. 용왕의 아들, 작고 어린 용은 비단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머리가 뜨거웠고,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팠다. 

 다른 자들은 어린 용이 호기심으로 뭍에 나갔다가 돌아와 그대로 앓아 침상에 누워버린 탓에, 땅의 병을 옮아 온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다른 이유를 병의 이유로 짚고 있었다. 한 번 몸을 뒤척이며 어린 용은 길게 한 번 숨을 뱉었다. 


 여의주로 세상을 돌려보던 중 첫눈에 반한 자를 찾아 바다의 용은 땅을 밟았다. 잠시 땅의 지리를 몰라 헤매기는 했지만, 다행히 마음씨 좋은─정확히는 어린 용이 땅에 내려앉아 생기는 온갖 사건사고를 질색하는─강한 무녀가 용을 주워 그 자에게까지 안내해주었다. 인간 나이로 고작 다섯, 많이 봐야 여덟 살 먹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 아이였기에 용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저 속절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무녀의 옷자락 뒤에 숨어 발갛게 뺨을 붉히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만나서, 대화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말을 나누고 어린 용은 그대로 바다로 돌아왔다. 땅에서 더 할 일도 없었을 뿐더러 만나는 것 하나만 원하고 땅에 와서 바라는 바를 이루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무녀와 그리 약속하기도 하였으니까. 그리고 용궁에 되돌아온 용은 그대로 쓰러져 열이 올랐다. 흰 뺨에 얼룩덜룩한 열점이 생기고 체온이 들끓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 몸이 아팠다. 어린 왕자가 돌아와 짧게 안심한 용궁은 그대로 뒤집어졌다. 

 바다에서 가장 솜씨 좋은 의원을 모시겠다며 주변인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영특한 어린 용은 사실 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첫사랑에 빠져 버렸다. 만나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겠으나, 찰나의 가슴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육지에 나와 사랑을 마주한 용은 그대로 마음을 빼앗겼다. 


 어째서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가치가 없었다. 왜 사랑에 빠졌느냐는 물음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 있을까. 어린 용은 상대를 마주한 순간 자신이 세상에 발을 딛고 태어나 숨을 뱉는 이유가 상대임을 확신했거늘. 그로 인해 늘 물빛이던 세상이 화려하게 색을 입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를 울렸다. 사랑이 용의 몸에 가득 차올라 그를 새롭게 만들었다. 수많은 생명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용을 조금 더 자비롭게 만들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곁에 있고 싶고, 조금 더 닿고 싶었다. 그의 옆에 서기에 걸맞은 모습이 되고 싶었다. 

 그 작은 바람. 상대가 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사랑해준다면 가슴 저미게 기쁘겠지만 어찌 사랑이 상대에게 제 욕심을 강요하는 감정이 될까. 사랑이라는 작은 불씨는 용의 안에 피어올라 그를 온통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저 눈길 한 줌, 시선 한 뼘 더 받고 싶다는 욕심만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상대를 존중하여 오롯하게 상대의 행복을 바라게 만들었다. 저를 사랑하게 만들고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가 행복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랑에 앓아 누운 용은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용은 본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며 아주 느리게 성장하지만,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급격하게 자라는 경우가 있었다. 어린 용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온몸을 찢어놓는 듯한 통증과 열이 소년의 이성을 얼룩지게 만들었음에도 그 감정 한 점 퇴색되지 않고 빛나서 소년의 시야를 열어 주었다. 소년은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고, 깨어날 때마다 그의 곁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어느 때에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의원이었고, 어느 때에는 걱정 어린 얼굴로 제 손을 붙잡은 누이였고, 또 어느 때에는...... 그렇게 몇 번이고 통증과 열에 혼절하였다가 깨어난 어느 날. 용은 제 몸의 통증이 날씨 개이듯 깨끗하게 가신 것을 깨달았다. 뜨인 눈이 명쾌하고 호흡이 달았다. 


 뻗은 손은 이전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희고 번듯한 성체의 손이 용의 시야에 들어찼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눈높이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어느 틈에 갈아입혀진 옷의 품조차 큼지막했다. 제 얼굴을 두어 번 짚어보다가 여의주로 제 모습을 보고 청년은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둥그스름한 얼굴과 커다란 눈. 자그마한 손발을 가지고 있던 어린 소년은 오간데 없고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에 길쭉하고 잘 생긴 청년만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의태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다시 용의 현현으로 돌아가도 크기가 엄청나게 자라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조차 어렵지 않았다. 


 사랑의 곁에 있기에 가장 걸맞다 생각되는 모습으로 자라 버린 용은 가만 눈을 깜박이며 저를 응시했다. 어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으나 결국 마음이 이끄는 곳은 하나였기에 결론 역시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용은 옷차림을 갖추고 방문을 열었다. 아직 성인식도 치루지 않았으나 급격히 자라버린 젊은 용이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였으니까. 




 * 


 이 뒤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명언을 실천하고 다시 뭍으로 올라가 바라네 신사에서 신세지며 가끔 날씨도 조종하고 하토라 곁에 기웃거리면서 열심히 먹을 것도 가져다 나르고 아무튼 열심히 짝사랑하지 않을까요 ><)9 저는... 동양풍 사랑하는 사람... 요괴AU... 너무 맛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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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AU

2018. 11. 29. 22:13 from others/Otohara Ruka




 무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일주일 전부터 동쪽 하늘이 심상치않다 직감하였던 무녀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꼴에 낮게 혀를 찼다. 이제 동쪽 바다는 영력 없는 이가 보아도 이상할 정도로 하늘이 시커멓고 마른 번개가 쳤다. 천둥 울음 소리와 거친 파도 덕분에 뱃일하는 사람들도 바다 근처에 얼씬도 못 하는 모양새였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녀는 바다가 왜 저리 심상치 않은지 이유도 알고 있었다. 요괴며 작은 신선이며 너나할것없이 수군거리는 게 귀에 생생하게 잘도 들렸다. 동해 바다 막내 아드님이 사라지셨다더라.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작은 용이라더라. 재능있고 총명하신 분이신지라 다음 대 용왕이 되실 귀한 몸이시라더라. 

 아무튼 용만큼 손이 많이 가는 족속도 드물었다. 자존심 높고 고고한 주제에 사고는 규모가 컸다. 무녀는 번거롭다며 혀를 몇 번이고 찼지만 그럼에도 별 수 없이 움직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바다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호전될 것 같지 않았으니까. 바다가 혼란하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튀어나와 활개칠 성격 고약한 요괴들이나 악령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손을 쓰는 게 나았다. 무녀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사흘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못 찾는 게 이상할 정도로 어린 용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분명 마을에 발을 딛기 직전까지만 해도 완벽하게 감춰져있던 기척이었다. 아직 백 살도 먹지 않아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용이라고 했건만. 확실히 잠재능력 하나만큼은 봐줄만했다. 무녀는 사뿐사뿐 걸어 어린 용의 앞에 섰다. 

 당연히 곱게 자랐을 용은 어느 골목길 담벼락 밑에 들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화려한 옷자락 끝은 조금 때가 묻어 지저분해져 있었지만 그럭저럭 체면 차릴 정도로는 깨끗했다. 무녀는 티내지 않았지만 어린 용의 모습에 조금 감탄했다. 성인이 되지 못한 어린 용은 의태에 서툴러 비늘이 그대로 보이거나 지느러미를 드러내거나 뿔을 숨기지 못하고는 했다. 이제 겨우 쉰 살 가까이 된 어리디 어린 용이니 몸의 반신이 의태하지 못한 용의 모습일것이라 예상했건만, 예상 외로 어린 용은 완벽한 어린 인간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적게 보면 다섯에서 많게 보면 여덟이나 되었을까. 가출한 지 거의 이주가 되었는데도 필사적으로 저를 찾고 있을 신하들에게서 몸을 숨기고 저를 잡아먹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요괴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능력은 확실히 있었다. 재능있는 용이었다. 무녀가 부러 슬쩍 기척을 흘리자마자 용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희고 푸른 시선 사이로 가느다란 푸른 동공이 얇게 저며들었다. 뾰족하게 경계를 세우는 어린 용을 앞에 두고 무녀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말해야 순순히 이 용을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 잠시 고민이었다.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 자로구나. 나를 찾으러 왔느냐?"


 어라. 무녀가 눈을 둥글게 떴다. 어린 용이 먼저 말을 붙여올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녀는 느리게 고개를 한 번 기울기는 했지만, 순순히 답했다. 


"맞아. 더 이상 바다가 소란스러워지면 지상도 이리저리 번거로우니까."

"내가 지금 많은 생명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건 안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아네? 무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알면 돌아가야지. 이어서도 생각했지만 눈앞의 용은 무녀의 반토막이나 올까 싶을 만큼 작은 인간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말이 바깥으로 튀어나가지는 않았다. 도리어 용의 입에서 상식적인 말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한참 어린 모양새라 목소리조차도 앳되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른스러운 말투와 어린아이 목소리의 갭이 뚝뚝 떨어졌지만. 


"나도 내가 나온 목적만 달성한다면 바다로 돌아갈 생각이니 너무 심려치 말아라."

"목표가 뭔데?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한데."

"나를 도와 줄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라면."


 무녀가 턱짓으로 재촉했고, 어린 용은 고민했다. 입가를 가리고 곰곰 생각에 잠긴 용이었지만, 대답은 금방 나왔다. 용이 들고 있던 반짝이는 작은 구슬─여의주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푸르스름한 번개가 번쩍이는 구슬은 사뿐히 날아 무녀의 눈높이까지 올라왔다. 용의 푸른 눈과 꼭 닮은 여의주는 영기를 머금고 번개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드물게 강한 인간아, 네 말을 믿어 보마. 나는 만나고 싶은 이가 있어 뭍에 올라왔다."

"정인?"
"그, 그런 건 아니다."


 새하얀 용의 뺨에 불그스름한 핏기가 돌았다. 아니긴... 무녀는 용의 감정이 눈에 선했다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어린 용은 제 수줍음에 못이겨 이것저것 말을 터트렸다. 홍시마냥 점점 익어가는 뺨은 용을 마치 인간 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정말 아니다. 나는 그저, 용궁에서 마을을 구경하다가 본 이가 어여뻐서. 그저, 그래. 한 번 대화를 해 보고 싶어서......"

"그래그래, 한눈에 반했다고."

"그러니까 그런 건 아니라니까!"


 여의주에서 짜릿하게 번개가 튀어올랐지만, 주인의 수줍음을 반영한 것인지 정전기에 비슷한 수준의 전력이었다. 그래그래, 알았어. 무녀가 두 손을 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치렁치렁한 비단 소매를 제대로 정돈하고 옷에 묻은 흙먼지까지 털어낸 어린 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녀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골이 난 모양새였으나,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어려서 그런가, 이제껏 무녀가 보아온 그 어떤 용보다 제일 상식적인 용이었다. 무녀는 용을 덥석 안아들었다. 내내 낯선 인간의 다리로 걸어야만 했던 용은 지쳐 있던 것인지, 무녀의 손길을 딱히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만나고 싶다는 존재는 어떻게 생겼는데?"

"심해를 닮은 짙은 흑빛 머리카락에, 제비꽃보다 고운 자색 눈동자를 하고 있다. 피부는 희고, 키는 크고. 눈매가 날카롭다."

"음~. 뭐 아주 흔하진 않아도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사내의 외형을 하고 있다. 이 근처에 사는 것으로 보았는데."

"어."


 어...... 무녀는 잠시 제 품에 안겨 눈을 둥글게 뜬 용을 응시했다. 어...... 그리고 잠시 허공을 보았다. 네가 말하는 게 누군지 어쩐지 나 좀 알 것 같다. 용을 품에 끼고 무녀는 터벅터벅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더냐? 아무것도 모르는 용은 기쁘게 웃기만 했다.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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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

2018. 11. 23. 02:45 from others/Otohara Ruka



한 걸음 나아가려는 순간 내딛은 길이 부서져버려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락까지 떨어지지 않게

빛나는 알을 끌어안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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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2018. 11. 21. 01:54 from others/Otohara Ruka


https://youtu.be/gOVLyLuALGc






 귀에 울리던 환청이 뭔지 이제 알겠다. 

 이건....... 얼음이 깨지는 소리야. 

 내가 서 있던 얼음이 천천히 깨지는 소리. 



 이제는 소년의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소년을 괴롭히던 울림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도리어 물 속에 들어온 듯 몹시도 고요해서, 루카는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울어도 보이지 않을 바다 속에 잠겨서 숨을 뱉고 있는 것 같았다. 폐에 물이 가득 찬 듯 괴로웠다. 호흡 하나하나가 끔찍했다. 네가 죽는 순간 뭔가가 부서졌다. 완전히 깨져서 나는 가라앉았지. 다 깨졌으니까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소년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품에 안고 있는 알만이 소년의 작은 위안이었다. 


 거짓말쟁이.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했잖아. 어떻게 그걸 이렇게 단 한 번에 저버릴 수가 있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소년의 원망은 단편적이고 가냘프게 흩날렸다. 소중한 선배들은 분노해주었고, 디지바이스와 문장에 빛을 새겨넣었고, 그렇게 한 점의 데이터도 상처입지 않고 고래몬은 작은 알이 되어 루카의 품으로 돌아왔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래. 네가 죽었음에도 다시 돌아와 주었다는 일은 기적임을 알았다. 차라리 무사한 그들은 축복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데, 알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이성과 어리석은 감성은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괴로워, 너무 힘들어. 

 나 너무 힘들어......


 나는, 차라리. 루카는 힘겨운 말을 뱉었다. 소년이 고개를 처박고 얼굴을 감췄다. 알 속에서 쿨쿨 자고 있을 너도, 세 객실이나 떨어진 곳에 있을 선배들도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가까스로 꺼내놓은 아이의 날것이었다. 


"나는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도 울어 불그스름하게 짓눌린 눈가를 다시 한 번 닦아내며 루카가 알을 끌어안았다. 알은 소년의 말을 듣는지 아닌지 모르게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파트너를 품에 안고 루카는 숨겨 두었던 말을 한참을 더 쏟아내었다. 


"내가, 나는. 나는...... 내 존재는. 작은 누나한테 결국 난 짐이었고, 상처였고.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는 비겁해서. 모두 힘들게만 하고. 지금도,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난 어리석고 멍청하고 약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애여서. 결국 다시 형이랑 누나들을 힘들게만 만들고. 나는, 나는."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소년이 독을 토해내는 것처럼 말을 뱉었다. 눈물이 떨어져 알을 적셨다. 소맷자락으로 고집스럽게 알을 닦아내며 루카는 끊임없이 울었다. 널 죽게 만든 내가 싫어. 결국 선배들한테 힘든 모습을 보여준 내가 싫어. 안 그래도 다들 힘든 거 아는데, 괜히 내 존재가 마음쓰게 만들어서. 그런 내가, 나는. 너무, 너무, 너무 싫어......


"네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울어도 봐 줘, 용서해 줘. 얼른 다시 태어나서 나를 봐 줘. 같이 있어 줘.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고 강해지겠다고 6년 전에 약속했는데, 하지만 이건 반칙이잖아. 오늘만 울면 앞으로 또 안 울 거야. 내가 울어봤자 뭐 달라지는 게 있다고. 기운만 뺀다는 거 나도 알아. 제대로 웃을 거야. 사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는 다시 돌아올 거고, 나는 다친 곳도 하나도 없고. 사실 6년 전의 이별이랑 뭐가 그렇게 달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여기 있잖아. 그런데, 그러니까. 힘들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 크랩몬?


"그런 거지? 지금 힘들어하는 나는 비겁해. 그렇지?"


 알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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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2018. 11. 18. 22:52 from others/Otohara Ruka





 크고 둥그런 녹빛 눈이 제 파트너를 샅샅히 살폈다. 디지털 세계로 넘어온 뒤로 크랩몬은 내내 루카를 신경쓰고 있었다. 어딘지 이상한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디가 이상한지 꼬집어낼 수가 없었다. 인간과 디지몬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시간의 공백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루카는 지금 분명 이상했다. 크랩몬의 녹색 눈동자가 슬프게 가라앉았다. 상냥하고 다정한 성정의 소년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 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마린엔젤몬의 죽음도, 황폐해진 디지털 월드도 모두 소년에게는 상처일 터였다. 

 본래라면, 그러니까...... 상황이 조금만 더 평화로웠다면 소년은 그것을 천천히 치유하고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인했다. 부러지지 않는 정신력과 견고한 마음은 소년을 강하게 만들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힘든 일만 겹쳐서 일어나고 그것을 치료할 시간과 조건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홀로 나앉은 소년은 제 상처 하나 핥지 못하고 주변만 살피고 있었다. 


"루카, 뺨이 조금 붉은 것 같은데......"
"그래? 음...... 괜찮은데."


 크랩몬의 속삭임에 루카가 제 이마에 손등을 얹었다가 때며 웃었다. 미소는 언제나와 같이 평온했지만 크랩몬은 마음 한구석을 선득하게 만드는 불안을 차마 떨치지 못했다. 소년은 시선을 돌려 황폐한 디지털 월드를 멍하니 둘러보았다. 그 시선이 일견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크랩몬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영리한 소년은 모든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크랩몬이 돌핀몬이나 고래몬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강철의 껍질을 가진 크랩몬은 루카의 체온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계산. 이마에 손등이 닿은 순간 알았다. 약하게 열이 나고 있었다. 하기야 여기 온 직후부터 계속 머리가 아팠으니. 얇은 옷차림과 추운 날씨 탓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모든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두통은 뇌를 갉아먹는 것처럼 조금씩 이어졌다. 젤리로 허기를 채우고 진통제를 씹어 삼키는 것은 거의 몇 시간 간격. 소년의 몸은 슬슬 한계에 다가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신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건 예전부터 그랬고, 먹지 못하기 시작한 건 아사쿠사에 도착한 뒤부터 그랬었다. 둘 다 익숙했기에 충분히 다스리면서 조금씩 호전시킬 수 있었다. 허나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이 있었는데, 첫째로 소년의 눈앞에서 죽어버린 마린엔젤몬. 마음을 주었던 좋아하는 벗의 죽음이었고 또 하나는 이 황폐해진 디지털 월드의 모습이었다. 이곳을 사랑했던 마음, 이곳의 디지몬들이 소중했던 마음이 전부 찢겨 내려앉았다. 그 동안 할 수 있던 일이 없었다는 무력감, 숨이 막히는 슬픔, 괴로움, 안타까움...... 애정이 칼날이 되어 폐부를 찔렀다. 결정적으로 소년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것도 소년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소년은 휴식을 취할 때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이 존재했으니 당연히 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가장 어린 소년을 누구나 신경써 준다는 말은, 소년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었으니. 소년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소년을 찌르고 있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마음과 힘든 건 저 하나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크랩몬이나 하토라에게 의지하지도 않았으니 소년의 정신은 슬슬 한계였다. 

 피곤해...... 머리가 아파. 그림처럼 고운 얼굴로 소년은 옅게 피로를 드러냈다가 감췄다. 내색하지 않는 법. 루카가 6년 사이에 가장 완벽하게 익혀 온 것은 바로 그것이었으니. 


"크랩몬, 조금만 더 둘러보고 돌아가자. 저 쪽은...... 우리가 축제 때 놀았던 곳 같은데. 저기만 보고 갈까?"

"응......."


 크랩몬의 집게발을 붙잡으며 소년이 미소지었다. 늘 그렇듯 평온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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