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Otohara Ruka'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8.10.26 감사
  2. 2018.10.25 축제 전야
  3. 2018.10.23 호기심
  4. 2018.10.18 잃어버리는 건 싫어
  5. 2018.10.14 디지털 월드의 바다
  6. 2018.10.13 하얀몬의 마을
  7. 2018.10.11 돌핀몬
  8. 2018.10.09 타인과 필요성

감사

2018. 10. 26. 17:49 from others/Otohara Ruka





 할 수 있는 건 얼마나 많은데. 루카가 그대로 말을 쏟아내었다. 디지몬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는 건 꾸준히 할 거지만, 그거랑 별개로 일단 디지털 월드라고 했으니까, 컴퓨터에 대해서도 공부해봐야 할 것 같고, 그거랑 별개로 디지몬은 뭐에 제일 가까울까 생각해봤었는데, 디지털 속의 생명체... 인공지능에 흡사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어. 그리고 전에 모오카 누나랑 이야기 해 봤었잖아, 요괴랑 디지몬의 연관성...... 그걸 생각하면 세계 각지의 요괴나 괴수들에 대한 전설도 공부해보고 싶고. 디지몬에 대해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게 너무너무 많은걸. 


...그리고 이 모든 게 어쩌면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힘들고 지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도움이 될 테니까. 같이, 열심히 하자 누나. 

 소년이 활짝 미소지었다.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교 6학년 가을  (0) 2018.10.30
풍등  (0) 2018.10.27
축제 전야  (0) 2018.10.25
호기심  (0) 2018.10.23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2018.10.18
Posted by 별빛_ :

축제 전야

2018. 10. 25. 02:23 from others/Otohara Ruka




 루카는 제 몸의 절반보다 더 큰 곰인형과, 그와 비슷한 크기의 토끼 인형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깜박, 그리고 또 깜박. 내일부터는 축제고, 축제가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어쩐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얼떨떨하다고 해야 할까. 갑작스럽게 쏟아진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쪽이 정확했다. 루카는 어른스럽고 똑똑했으나 아직 8살 먹은 한참 어린 꼬마였고, 꼬마는 이런 일이 힘겨웠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거. 루카는 고개를 돌려 멀찍하게 떨어져서 제 눈치를 보는 크랩몬을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는 모양새가 귀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크랩몬, 뭐 해? 이리 와."

"......가까이 가도 괜찮아? 루카는 화 안 났어?"

"내가 크랩몬한테 화를 왜 내?"


 잘못한 것도 없고, 화나게 될 만한 것도 없고. 마린엔젤몬조차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해서 용서했으니 루카는 정말로 화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소년의 말간 눈동자를 확인한 크랩몬은 기꺼이 루카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강철의 껍질이었지만, 루카는 익숙하다는 듯 다정하게 집게에 뺨을 댔다. 크랩몬은 제 파트너의 그런 친근한 행동에 마냥 행복한 듯 방긋방긋 웃음을 그렸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분위기는 확실히 어수선했다. 루카도 심정이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돌아간다는 기쁨, 묘한 허탈감, 디지털 월드와 이별한다는 아쉬움, 크랩몬과 헤어진다는 슬픔. 

 헤어진다는...... 루카는 발뒤꿈치로 바닥을 살살 긁었다. 어린 아이의 몸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지만, 아이는 다정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을 수 있었다. 한 달 겨우 채울까 말까 한 짧은 여행이었지만, 본디 아이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법. 어린 루카는 영리했고, 그만큼 상냥하게 자라 있었으니까. 


"루카, 슬퍼?"
"응? 그럼, 슬프지. 크랩몬이랑 다시 못 만나는 것도, 되게 슬퍼."

"나도. 루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응. 나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치만 크랩몬이 죽는 건 더 더 더 싫어. 그러니까 여기서 안녕이야. 루카는 딱 잘라 말했다. 크랩몬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지만 루카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루카는 인형을 내려놓았다. 대신 풀죽은 제 파트너의 집게를 품에 안은 아이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는 영리했고, 그 영리함이란 지식의 문장의 주인 중 하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루카는 다 알아. 지금 헤어지면 우리는 아주아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응......"
"시간대가 다르다며? 여기서 한 달이나 있었는데 우리 세계에서 얼마 안 걸렸다는 건, 우리 세계에서 한 달이면 여기서는 몇 년, 몇 십 년, 어쩌면 그 이상일 정도로 오래 흘러가버린다는 거지?"
"아마도......"

 아이가 샐쭉 웃었다. 크랩몬은 미안한 듯 시선을 피했다. 루카는 그런 파트너를 탓하지 않고, 그 집게에 입을 맞췄다. 상냥한 움직임이었다. 괜찮아, 크랩몬. 루카는 위로에 가깝게 속삭였다. 


"루카는 머리가 좋아."

"응."

"할 수 있는 것도 잔뜩 있구."

"응, 맞아."

"아직 어린 애니까."

"뭐든 할 수 있지."

"응. 그러니까 루카는 커서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수 있게 할 거야."


 컴퓨터도, 과학도, 디지털 월드도, 디지몬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공부 열심히 해서 루카는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닌걸. 루카랑 크랩몬은 파트너니까."

"응."

"이 디지털 월드에 있는 쌍둥이인걸. 크랩몬은, 루카를 오래 기다렸다고 했지?"

"응, 그랬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다시 한 번 크랩몬을 만나러 올 테니까."


 응, 기다릴게. 얼마든지, 아주아주 오래라도 좋으니까, 기다릴게 루카. 응, 기다려줘. 루카 정말로 힘내서 꼭 다시 만나러 올 테니까......

 아이와 디지몬이 서로에게 기댔다. 내일은 축제니까, 재미있게 놀자.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응, 많이. 잔뜩 놀자. 속삭이는 답 역시도 그랬다.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등  (0) 2018.10.27
감사  (0) 2018.10.26
호기심  (0) 2018.10.23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2018.10.18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Posted by 별빛_ :

호기심

2018. 10. 23. 00:24 from others/Otohara Ruka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  (0) 2018.10.26
축제 전야  (0) 2018.10.25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2018.10.18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하얀몬의 마을  (0) 2018.10.13
Posted by 별빛_ :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제 전야  (0) 2018.10.25
호기심  (0) 2018.10.23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하얀몬의 마을  (0) 2018.10.13
돌핀몬  (0) 2018.10.11
Posted by 별빛_ :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기심  (0) 2018.10.23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2018.10.18
하얀몬의 마을  (0) 2018.10.13
돌핀몬  (0) 2018.10.11
타인과 필요성  (0) 2018.10.09
Posted by 별빛_ :

하얀몬의 마을

2018. 10. 13. 01:14 from others/Otohara Ruka



"어울려?"
"응!"
"잘 어울려?"

"응!! 굉장히 잘 어울려, 루카!"

"정말?"
"응! 엄청!"


 크랩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제 뒷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토라가 묶어 준 머리며 핀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거울도 없었다. 물론 루카도 거울이라고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결국 작품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입을 통한 방법 뿐이었다. 루카는 몇 번이고 크랩몬에게 되물었고, 크랩몬은 불편한 기색도 하나 없이 웃으며 루카의 말에 하나하나 답했다. 루카 멋져! 크랩몬의 순진무구한 평가에 루카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희고 말랑한 뺨에 부드러운 혈색이 돌았다. 조금 긴 머리카락을 타인이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의 두 누나들이) 빗어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슈슈로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핀으로 장식해본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루카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예쁘장하니 곱게 생긴 루카가 쉬이 여자아이로 오해받았으니까. 한 쪽 옆 머리를 땋아내리는 것도 루카가 제멋대로 마음에 들어하여 간단하게 장식을 넣은 정도였다. 소년은 제 외형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못난 것보다는 예쁜 게 더 좋았다.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토라 형, 고마워. 루카는 제 등 뒤에 앉아 머리를 장식해 준 소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토라는 저가 만들어낸 작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응, 귀여워! 머리를 만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어! 방긋 웃어주며 말하는 하토라를 보며 루카는 다시 한 번 묶인 머리를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매만졌다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매일매일 힘든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마음이 풀어졌다. 아직 어린 소년은 말랑말랑한 얼굴로 크랩몬의 날카롭지 않은 쪽 집게를 꼬옥 끌어안았다. 


 하루의 강행군. 하얀몬의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모양을 바꾸지 않은 건 소년의 호의 표시였다. 추위를 버티기 위해 별 수 없이 모자를 꾸욱 눌러쓸때까지도 머리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려 애썼다. 결국 모자를 벗었을 때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잔뜩 울상이 되어 풀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빗도 없지만 손가락으로라도 머리를 빗어내린 뒤 오른쪽 머리카락을 땋아내려 깔끔하게 묶은 루카는 품에 한가득 하얀몬들을 끌어안았다. 품에 한가득이라고 해봐야 아직 작은 루카의 품에는 두세마리 정도가 겨우 들어차는 게 고작이었다. 루카는 품에 하얀몬을 안고, 크랩몬은 제 머리 위에 먹을 것을 담은 그릇을 요령 좋게 올려놓았다. 루카가 도도도 다가간 사람은 당연하게도 하토라였다. 


 하토라 형은 귀여운 걸 좋아하고, 하얀몬은 귀엽고, 또 그래서 하토라 형은 하얀몬을 엄청 좋아했으니까. 루카의 사고방식은 단순했지만 꽤 논리적이었다. 그러면 하얀몬이 많을수록 좋아하겠지? 그러한 이유로 하얀몬들을 끌어안고 하토라의 앞까지 다가온 루카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토라를 올려다보았다. 하얀몬이 잔뜩 있으니까 좋아해주겠지? 마냥 그런 표정이었다. 우선 품에 안은 하얀몬들을 내려놓은 루카는 하토라에게 머리핀과 슈슈를 반납했다. 하토라 형, 빌려줘서 고마웠어. 다음에도 루카 머리 묶어줄 수 있어? 소년이 조근조근 말을 붙였다. 

 땅에 내려 준 하얀몬 한 마리가 폴짝 뛰어 루카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또 한 마리가 폴짝 뛰어 품에 파고드는 것을 받아 안으며 루카가 크랩몬을 돌아보았다. 머리 위에 그릇을 얹은 크랩몬은 굉장히 질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루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랩몬, 많이 착해. 루카가 크랩몬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준 뒤 그릇을 들고 하토라를 돌아보았다. 


"이거 같이 먹자, 하토라 형."


 하얀몬들이 준 쌀밥에 물을 넣고 켄터스몬에게 받았던 마른 육포를 잘게 잘라 넣은 묽은 죽이었지만 추운 날 따뜻한 음식이었기에 그럭저럭 넘어갈 정도의 맛은 되었다. 하토라의 몫을 그에게 건내주며 루카가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하얀몬들도 한 입 줄까? 주변에 어느 새 옹기종기 모인 하얀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며 조근조근 말을 붙이던 루카가 하토라를 올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마냥 호의 가득한 미소였다.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2018.10.18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돌핀몬  (0) 2018.10.11
타인과 필요성  (0) 2018.10.09
디지바이스  (0) 2018.10.08
Posted by 별빛_ :

돌핀몬

2018. 10. 11. 01:20 from others/Otohara Ruka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가 퍽 고즈넉했다. 루카는 크랩몬에게 덮어 준 담요를 조금 더 꼼꼼히 고쳐주었다. 최초로 성숙기로 진화한데다가 이곳의 환경은 크랩몬이 견디기에 지나치게 가혹한 곳이어서, 크랩몬은 유독 힘들어하고 있었다. 루카 역시도 그런 제 파트너를 이해했다. 한 발 먼저 잠에 빠져든 디지몬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토닥이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켄터스몬이 이것을 활성시켜준 뒤로 디지바이스는 루카의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삑삑 작은 버튼음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부드럽게 화면이 떠올랐다. 


[돌핀몬. 성숙기. 백신종.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수생포유류형 디지몬. 무익한 전투를 좋아하지 않지만, 도전해오는 상대는 용서하지 않는다. 필살기는 입으로 최대 출력의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쉐이킹 펄스.]


 성숙기. 백신종. 백신종...... 소년이 버튼을 앞으로 넘겼다. 


[크랩몬. 성장기. 데이터종. 넷의 바다에 녹아있는 금속 데이터를 몸에 붙여 비약적으로 전투능력을 향상시킨 갑각류형 디지몬. 필살기는 왼쪽 집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시저즈 엑스큐션.]


 크랩몬은 데이터. 돌핀몬은 백신. 틀림없이 형이랑 누나들 디지몬 중에는 바이러스 종도 있었고, 또 프리종도 있었지. 루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왜 분류되는 걸까. 진화하면서 달라지는 것을 보아하면 크게 의미는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중요한 변화일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루카는 그저 느릿하게 크랩몬을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있지, 루카."

"어, 크랩몬... 미안. 깨웠어?"

"아니, 그냥 눈이 떠진 걸!"


 크랩몬이 방긋 웃었다. 루카도 마주 웃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둘은 이미 누구보다도 절친한 벗이었다. 수많은 대화를 함께하고도 침묵이 낯설지 않은 관계였으니. 


"루카. 내가 돌핀몬으로 진화해서 아쉬워?"
"응? 아니. 아주 예뻤는걸. 그건 왜?"

"루카는 문어를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건..."


 원한다기보다는...... 루카가 말끝을 흐렸다. 정확히는 차마 의식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둥실몬은 오징어를 (물론 루카의 눈으로 보기에) 닮았고, 크랩몬은 대게를 (이건 모두의 시선에 똑같았지만) 닮았으니까. 따지자면 돌고래도 물에서 사는 동물이니까 크게 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돌핀몬이라서 좋았어."


 아주 아름다운 디지몬이었다. 물론 루카의 디지몬이라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늘빛 몸체에 녹색 눈동자. 삐죽삐죽한 송곳니도 강인해 보여서 좋았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모습이었다. 크랩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내려놓았다. 아직 루카는 너무 작고, 크랩몬은 많이 자라서 루카가 끌어안을 수 있는 건 크랩몬의 날이 없는 오른 쪽 집게 정도였다. 꼬옥 끌어안은 집게를 소중하게 도닥도닥하며 루카가 속삭였다. 

 여긴 섬이니까, 분명 언젠가는 따뜻한 바다에도 갈 거야. 거기서 다시 한 번 돌핀몬으로 진화해 보자. 분명 즐거울 거야. 돌핀몬은 커다라니까 루카를 태우고도 헤엄칠 수 있겠지? 그럼, 물론이지. 나한테 맡겨, 루카! 바다 속까지 같이 보러 가자. 나를 잡고 있으면 되니까! 응, 그러자. 


"돌핀몬 다음으로는 뭐로 진화할까?"
"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막 공룡 같은 거로 진화한다거나?"
"어쩌면 그럴지도!"


 그래도 멋있으니까 괜찮아. 응, 괜찮아! 크랩몬이 깔깔 웃는 모양새에 루카도 즐거운 듯 미소지었다.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하얀몬의 마을  (0) 2018.10.13
타인과 필요성  (0) 2018.10.09
디지바이스  (0) 2018.10.08
첫 번째 진화의 밤  (0) 2018.10.03
Posted by 별빛_ :

타인과 필요성

2018. 10. 9. 02:01 from others/Otohara Ruka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내가 뭔가 건드렸나 봐. 오토하라 루카는 어렵잖게 이상을 눈치챘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비할 바 없이 눈치가 빨랐다. 또한 영리했다. 이상을 깨달은 순간 느껴진 당황과 어색함과 미안함, 약간의 멋쩍음을 아래로 내려버리고 소년은 침착한 이성을 가장 앞으로 꺼내와 당장의 순간을 채웠다. 차분하게 구는 요령은 소년의 특기였다. 어떤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일까. 루카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을 벗어난 뒤에는 다시 이것을 꺼내와 천천히 곱씹으며 다른 감정을 느낄 지 모르겠지만 당장 소년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소녀에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돌 던져지지 않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저 깜박깜박, 눈만 여러 번 깜박일 뿐이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가만히 상대를 응시했다. 동그란 눈동자와 작은 체구, 추위로 조금 얼어있는 동그란 뺨은 소년보다는 아이라는 묘사가 어울리는 어린 소년임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작은 머리통 속에는 꽤 많은 생각이 복작복작 제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과하는 게 제일 좋을까? 그치만 루카는 뭘 잘못했지? 잘 모르겠어. 모오카 누나한테 질문한 게 실수였을까?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 사과할 수 없는걸. 그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고 큰 누나가 그랬잖아. 그치만 모오카 누나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사과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음... 글쎄. 그걸 사과받는 상대는 납득해 줄까? 그야 모르지. 루카는 그다지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근데 그건 루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별 수 없는 거지. 노력이나 해 보는 거지, 뭐. 역시 그런 걸까? 많이 화나면 혹시 싸우게 될까? 모오카 누나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응,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루카 싸우는 거 싫어. 맞아, 싫어.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도 싫고. 애초에 누군가가 화내는 것도 무섭고, 번거롭고, 불편하고...... 

 알아, 알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제대로 잘 말해야지. 


 루카의 머리가 침묵을 깨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벼운 고개짓. 수긍이었다. 


"응. 맞아. 남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다 알 수도 없는걸."


 루카랑 히오리 누나랑 아즈사 누나... 둘 다 루카의 친누나들인데. 둘을 정말로 좋아하고 정말로 사이도 좋지만, 루카는 누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는 몰라. 누나들이 어떤 맛 케이크를 좋아하고 고민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지만, 뭘 고민하는지는 모르니까. 

 소년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변성기가 오기에 턱없이 먼 중성적인 목소리는 조근조근하게 제 의견을 피력했다. 모오카에게 떨어지지 않은 눈은 고스란히 상대를 담고 있었다. 루카는 대화하는 내내 상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모오카 누나를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어. 잘못했어."


 소년은 순순히 사과했다. 본디도 둥글었던 눈매가 조금 더 아래로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그것이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정말로 소녀에게 미안했다. 안 그래도 그들이 처한 환경은 가혹했다. 이 이상 누군가에게 감정적인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정확하게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어도, 소년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누나는 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사는 거야? 싫은 게 생기는 게 싫어서?


 저가 뱉었던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루카는 조금 웃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옅고 조금은 다정한 색의 미소였다. 소년은 머리가 좋았고, 참을성 역시도 좋았다. 의문을 가지면 반드시 풀고 싶어하는 집념 역시 존재했다. 소년의 천성이 선하지 않았다면 꽤 많은 갈등을 빚어냈으리라. 의문의 해소를 위해 상대를 굳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는 껄끄러움이 더 무거웠다. 또한 루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여행이 곧 끝이 나든, 혹은 조금 더 길어지든......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장갑 속의 손을 꼬물거리다가 입가를 살짝 가렸다. 소년은 말을 덧붙일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내뱉었다. 하지만, 모오카 누나.


"우리는 우리끼리 모험... 조난에 가까운 모험을 하고 있잖아."


 켄터스몬의 만남으로 한결 분위기가 가벼워졌지만, 집에 돌아가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모르는 세계에 끌려왔다는 기본 전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함께하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동지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겪더라도 감정적으로 완전한 남이 될 수는 없는 사이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루카의 주관이었지만.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분명 없지만... 그리고 전부 알 수도 없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부를 알아가면서 살아가는걸. 매일매일... 우리는 하루의 전부를 함께 보내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게 있어. 사람은... 어디를 알게 되는가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거 아닐까? 


 소년이 천천히 말했다. 저가 말하면서도 약간 어려운 듯, 미간을 좁히고는 있었지만 차분한 의견 제시였다. 소년은 어쩌면 조금 풀이 죽은 것처럼, 혹은 약간 겁을 먹은 것 같거나 무언가 시무룩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말하는 데에는 망설임 한 조각 없었다. 


"내가 모오카 누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건,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는데. 그게 싫었다면 미안해. 루카가 궁금했던 부분이 모오카 누나는 알려주기 싫은 부분인거지?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할게."


 소년은 그리 말하고 잠시 고민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한참을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다가 천천히 마지막 끝맺음을 찍었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까 앞으로 더 조심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우는 거 아닐까? 그래서 알고 싶어 하는 거야. 전부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지만... 그래도. 모오카 누나에 대한 것도 그래. 그제야 소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돌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모오카를 보는 시선이 처음과 변한 바 없이 말갛게 빛났다. 



 



'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2018.10.14
하얀몬의 마을  (0) 2018.10.13
돌핀몬  (0) 2018.10.11
디지바이스  (0) 2018.10.08
첫 번째 진화의 밤  (0) 2018.10.03
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