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2018. 10. 27. 01:27 from others/Otohara Ruka




 루카, 루카. 풍등에 소원을 써서 날리는 거야! 응! 파트너의 말에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이는 제 옷에 사실 반쯤 파묻힌 상태였다. 반이라기에는 조금 덜, 삼분지 일 정도. 아이는 또래에 비해서도 한 뼘은 작을 정도로 작고 마른 아이였고, 제일 작은 옷도 사실 루카한테는 품이 좀 넉넉했다. 원래 강시 옷이 소매가 길쭉하다는 점까지 덧붙여져 루카는 손을 가리고도 한 뼘도 더 넘게 길게 늘어지는 옷을 입고 나풀나풀 잘도 돌아다녔다. 바짓자락은 끈을 묶어서 단단히 고정한 탓에 흘러내리지 않았으니 소맷자락이 좀 긴 정도는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는 걷고 뛰는 데에는 무한한 재능이 있었으니 걸을 수 있다면 손이야 뭐, 잠시 불편해도 괜찮았다. 

 

 소매를 어깨까지 걷은 아이는 펜을 잡고 풍등을 한참 응시했다. 슬렁슬렁 다시 내려온 옷은 어느 새 팔꿈치 언저리를 덮고 있었다. 뭐라고 쓰지. 아이는 고민했다. 기본적으로 뭐든지 제 손으로 해내는 데에 보람을 찾는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은 많았으나 그걸 딱히 소원까지 빌 정도는 아니었다. 참으로 챙겨주기 까다로운 아이였다. 크랩몬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는 루카가 할 일이니까 소원이 아니고. 잘 뛰게 해주세요, 이것도 루카가 노력하면 되는 거니까 소원 아니고. 음... 음...... 루카도 고민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아이가 착한 아이였던 보상으로 받는 선물이었으니 기쁘게 받을 수 있었으나 이는 다른 문제였으니까. 

 뭐라고 쓸까, 크랩몬? 내일 아침으로는 따끈따끈한 국물을 먹고 싶어요, 라고 쓸까? 아이가 바라는 것이야 퍽 사소했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 근데 나는 고기가 먹고 싶은데! 어, 정말? 그러면...... 고기가 들어간 국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쓰면 되겠다. 그러면 될 것 같아, 루카! 


 쏙 빼닮은 두 파트너는 풍등에 내일 아침 메뉴를 부탁하는 글을 쓰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이제 날리러 가자. 그러자! 한창 불을 붙여 풍등을 띄우고 있는 디지몬들에게 달려가는 발걸음은 명쾌했다. 어느 새 다 흘러내려 손등을 덮고 길게 늘어진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루카가 활짝 웃었다. 저기, 거기 디지몬 친구야~! 우리 풍등도 같이 날려주라! 불 붙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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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