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다이바의 바다에 자리잡고 앉은 루카는 꼼꼼하게 디지바이스를 살폈다. 크랩몬은 바다 속에 반쯤 잠긴 채로 둥실둥실 떠서 루카의 주변을 맴도는 중이었다. 소년이 보고 있는 것은 디지바이스의 도감 정보였다. 특히 이번에 진화하게 되면서 자신의 파트너의 정보가 세 개체로 늘었으니까. 백 번도 넘게 읽었던 크랩몬과 돌핀몬의 데이터를 넘기고 새롭게 입력된 고래몬의 데이터에서 차마 눈을 떼지 못하며, 소년이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내렸다.
고래몬. 완전체. 수서형. 백신종. 넷의 심해에 서식하는 거체 디지몬. 그 거대함은 디지털 월드 최대 클래스. 그 거대함으로, 통상의 컴퓨터로는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데이터량을 가지고 있다. 필살기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타이들 웨이브]. 거대한 몸으로 적을 짓누르는 [기간토 프레스].
"그리고 분사구에서 물을 뿜는 제트 에로우랑 입에 적을 끼우는 쿠치 데 하사무 코우게키......?"
"제트 에로우는 종종 쓰지만, 뒤에 꺼는 안 써~. 쓰는 고래몬도 있겟지만!"
"그래?"
진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잘 아네, 크랩몬. 음, 본능 같은 거니까? 그래? 그나저나 이제 물 쓸 수 있네. 돌핀몬 때는 못 썼는데. 그러게! 다행이지! 불이 나도 끌 수 있다! 응. 멋있다.
"그나저나 루카, 돌아가지 않을 거야? 슈이치네 집은 안 간다고 했으니까, 시부야의 집으로 돌아가야지."
"거기 우리 집 아닌데......"
"루카가 집을 그 쪽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거기가 집이야."
하토라 형, 미안..... 루카는 내적 사과를 건내며 크랩몬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최초로 완전체의 진화에 도달한 크랩몬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제 파트너의 기쁨에 루카 역시도 은근하게 기분이 들뜬 상태였다. 마린데블몬의 일은 여전히 모래처럼 껄끄러웠지만, 정 많은 성격은 잠시 덮고 칼 같은 이성으로 몇 번이고 제단해보면 마린데블몬은 이곳에서 소멸하는 게 나았었다. 소년은 감정의 주장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신이 나 보여, 크랩몬."
"그야, 크게 진화했는걸! 마린데블몬으로 진화하지도 않았고."
"그건 나도 좋지만. 어렸을 때 했던 말인데 아직 기억하네?"
"응. 나도 크게 진화하고 싶었는 걸."
이제 완전체로 진화하면, 바다를 통해서 루카랑 같이 어디까지도 갈 수 있어. 내가 헤엄칠 수 있으니까. 내가 루카를 어디든지 데려다줄게! 우리 같이 있으면, 분명 갈 수 있어.
소년의 눈이 둥글게 떠졌다. 차마 곧장 부드럽게 휘어지지 못하고 침묵하는 루카를 응시하며, 배시시 미소지은 크랩몬이 작게 몸을 부벼왔다. 루카, 정말 좋아해. 정말 좋아. 정답게 애교를 피워 오는 크랩몬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어주며, 루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 언어를 뱉으려다가 차마 완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물어진 입 안에서는 이상한 말만 새어나왔다.
"......크랩몬 바보. 리얼 월드에서는 어디든지 못 가. 비자나 여권 없이 타국으로 가면 엄청난 불법이란 말이야."
"엇, 정말?! 그게 뭐야."
"정말...... 바보야."
하지만 고마워....... 나도 크랩몬이 너무 좋아. 소년이 정답게 속삭였다. 크랩몬이 기쁘게 웃었다. 머리 위에 닿았다 떨어지는 작은 온기가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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