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혹시 싸움이라도 했어요?"
"아뇨."
"그럼 차에 치여서 굴렀나요?"
"......비슷해요."
성실한 의사 선생님은 그 이후로도 이것저것을 물어왔지만, 루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허공을 노려보는 눈이 마냥 고집스러워서, 결국 먼저 꺾인 쪽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한숨을 깊게 내쉬는 선생님을 보며 루카는 그제야 가슴까지 올려놓았던 옷을 천천히 덮었다. 얼굴과 팔다리에도 작게 까지고 멍든 상처가 있었지만 사실 제일 심각한 건 몸통 쪽이었다. 가슴과 배. 크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모양새는 보기만 해도 아플 정도였다. 운동을 계속해와서 소년치고는 단단한 몸뚱아리는 원래 운동하다 넘어져 생긴 상처와 더불어 퍽 얼룩덜룩했다.
"보다시피 멍이며 타박상이 좀 심하고... 갈비뼈에 금이 안 간 게 기적이네요. 하마터면 속이 크게 다칠 뻔 했어요. 멍 상태만 봐도 알겠지만... 아마 한동안 좀 숨쉴때마다 아플 수 있고요. 속이 쓰릴 수도 있어요. 근육도 좀 놀란 상태고, 인대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죠."
"그렇군요."
"통증이 좀 있을 거고... 다 낫는 데에 좀 오래 걸리겠지만 지금 방학이던가요? 그냥 푹 쉰다는 느낌으로 집에 있어요."
"......네."
"멍 빠지는 약이랑, 연고 받아가시고. 안정을 취하세요. 사흘 뒤에 또 한 번 오시고요."
"네."
그럼... 루카는 짧은 목례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착실하게 약국으로 들어가 약도 받고, 얼굴이며 팔다리며 까지고 멍든 곳에 치덕치덕 약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통증을 즐기는 습관 따위는 없었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돌핀몬과 가까이 붙어있었고, 돌핀몬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둘이 할 수 있던 건 서로에게 충격이 없기를 바라며 함께 구르는 수준이었다. 돌핀몬이 감쌌기에 루카보다 돌핀몬의 부상이 훨씬 컸지만, 그쪽은 기도 한 번에 깨끗하게 회복되었기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허나 인간의 몸뚱아리는 한번에 치료되지 못해서 문제지. 루카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여전히 쓰린 통증이 올라오는 가슴께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안고 구른 충격에 돌핀몬의 무게, 공격의 여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14살의 몸은 아직도 좀 약한 모양이었다.
"루카, 괜찮아? 거 봐. 안 괜찮지?"
"조용히 해, 크랩몬. 지하철 안이잖아."
"루카 거짓말쟁이. 아프잖아! 의사 선생님이 안정 취하라는 거, 나 다 들었어."
"쉿... 지금 안정 취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무리는 안 할 거야."
"루카..."
"크랩몬이 나를 지켜 줄 거잖아?"
다음에는 이런 일도 없게 할게. 그 때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무리했던 거야. 주변 시선을 신경쓰느라 작지만 느리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말에 크랩몬의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얌전해진 크랩몬을 쓰다듬으며 루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멀리서 어렴풋하게 푸른 색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지하철 안, 루카는 바다에서 활동하고 있을 디지몬들을 캡쳐하기 위해 도쿄에서 제일 가까운 바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돌핀몬의 특기 분야는 누가 뭐래도 바다였으니까. 크랩몬도 마찬가지고. 오키나와의 바다라면 인적이 많은 곳과 드문 곳을 전부 꿰고 있었고, 도쿄도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살던 곳이었다. 디지몬이 있는 곳이라면 안개가 낀다고 했었지. 안개가 있고 사람이 없는 곳...... 바다에서 돌핀몬을 타고 다니면 그럭저럭 찾을 수 있으려나. 루카가 눈을 굴렸다. 그리고 그런 제 파트너를 상세히 살피고 있던 크랩몬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카, 그래도 다친 거.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야 하지 않아?"
"절대 안 돼. 말하면 화낼거야."
"루카......"
"안 돼."
루카의 눈꼬리가 뾰족해졌다. 단칼에 잘리는 거절에 크랩몬의 눈매도 조금 매서워졌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소년이 고개들어 현재 있는 역을 확인했다. 내려도 괜찮겠다. 여기도 해안가랑 이어져. 판단이 끝나고, 지하철이 멈추고, 그대로 지하철을 빠져나온 소년의 걸음이 급해졌다. 날쌔게 달리지 않는 이유는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은 지 고작 1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터벅터벅터벅 자박자박자박. 바다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온 소년은 인적이 적은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없이 품에 안고 있던 크랩몬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고, 그대로 던져버렸다.
풍덩, 하고 물소리가 들리고, 디지바이스는 동시에 빛나고, 수면 위로 얼굴을 들이민 건 검푸른 게가 아니라 바다와 꼭 같은 빛깔의 돌고래였다. 녹색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는 돌고래. 그리고 꾹꾹 참았던 말도 펑 하니 터졌다.
"루카는 바보야─! 솔직하게 얘기하고 아프니까 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해─!"
"싫어─! 큰 상처도 아니야! 크랩몬이야말로 바보야! 그런 말 해봤자 짐밖에 더 돼?!"
"몰라, 그런 거! 이번엔 조금 아파서 무리하면 안 되는 정도로 끝난다지만 다음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 조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바보라고 하지 마! 크랩몬이 더 바보야!"
"아프면서!"
"별로 안 아프거든?!"
캬우웅 크릉크릉. 한 디지몬과 한 소년이 유치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물을 끼얹고 다투고 싸우고 숨을 몰아쉬고. 결국 먼저 뻗은 쪽은 루카였다. 디지몬의 체력을 내가 어떻게 이겨. 완전히 나가떨어져 모래사장에 드러누워버린 루카의 곁에 돌핀몬이 슬금슬금 기어 다가왔다. 잔뜩 분노하던 녹색 눈동자는 이제 썰물처럼 화가 빠지고 걱정만 남아 있었다.
"그치만 루카, 난 진심이야. 모두에게가 아니면 몇 명에게만이라도... 안 될까?"
"싫어......"
"루카......"
"싫어, 돌핀몬."
누구에게 말을 하겠어. 파란 눈동자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루카가 의지하는 대상은 몇 있었다. 하나는 바다. 지금 여기서 쏟아냈으니 이미 절반은 가벼워진 셈이었다. 나머지는 본인 스스로가 감당할 몫이었지. 다른 한 명은 큰 누나. 한창 결혼 준비중인 큰 누나한테 디지몬에 대한 걸 설명하고 이 얘기를 하라고? 그래서 내가 다쳤고 앞으로도 다칠 수 있다고? 이게 무슨 짓이야. 누나한테 몹쓸 짓 한다 진짜. 작은 누나는...... 루카는 큰 누나에 이어 떠오른 얼굴에 그대로 우울한 낯을 감추지 못했다. 돌핀몬에게 얼굴을 묻으며 루카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려 애썼다.
누나들은 안 돼. 또 그러면...... 또 '누나'한테 그런 눈을 받으면...... 소년은 애써 기억을 감추려 애썼다. 떠올리지 마, 떠올리지 마. 돌핀몬에게 이마를 문지르며 루카는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그런 파트너를 보고, 돌핀몬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래 보지 못한 파트너는 너무 자라 있어서, 가끔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있었다.
"하토라는? 호타루라던가. 집에서 묵을 정도로 친한 거 아니야?"
"형들?"
"응."
"......안 돼."
잠시 고민하던 루카가 곧 고개를 저었다. 루카는 이미 겉으로 보기에 충분할 정도로 다쳤다. 얼룩덜룩한 얼굴 꼴이며 팔이며 대놓고 다친 티가 나는데 그 와중에 내상도 입었다는 말을 하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짐이 되겠다는 자기판단이 루카 안에 강하게 세워져 있었다. 디지몬은 디지털 월드가 아니라 이곳에서 죽으면 소멸한다. 그런 무거운 무게가 바로 옆에 있는데, 짐을 더해주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는 분명 루카는 몸을 사릴 거고, 그런 루카를 돌핀몬은 지켜줄 터. 시간이 지나면 뼈는 붙고 더 단단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고보면 어제 하토라 형네 집에 묵는 게 아니었는데. 생각이 짧았어... 자다가 앓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뒤척이다가 조금만 배가 보여도 바로 들켰을 텐데. 알고 있으려나. 동도 트기 전에 일어나서 나왔는데. 모르겠지? 루카의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의지 되고 싶어서 자라고 싶었던 건데. 여전히 어려서 한심해...... 6년 전이랑 변한 게 없네. 소년이 이마를 때고 돌핀몬을 응시했다.
"많이 아프다고는 말하지 말고. 금방 나을 거라고 말할 거야."
"그치만,"
"틀린 말 하나도 아니다?"
"아프잖아."
"응. 아프다고는 할 거야."
그 정도는 괜찮지? 루카의 말에 돌핀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고집불통이야. 마지막의 못마땅함이 슬쩍 새어나왔지만, 루카는 웃기만 했다.
"자, 저기 안개 낀다. 디지몬처럼 보이는데? 이제 일해야지, 돌핀몬."
"루카는 못됐어! 나쁜 아이로 컸어!"
"이제 산타 믿는 나이에서 졸업해버렸거든."
쉘몬. 성숙기. 연체형 디지몬. 데이터종. 필살기는 고압력 액체를 발사하는 하이드로 프레셔. 천천히 해안가로 다가오는 쉘몬을 보며 루카가 돌핀몬을 돌아보았다. 가자, 돌핀몬. 일단 해안가 바깥 바다로 유인한 다음에 필살기를 써서 기절기키는 거야. 돌핀몬의 등에 올라타며 외치는 말에 파트너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루카!
*
공미포 3267자
루카의 부상은 겉보기에만 좀 아파보이고 (멍이 많이 들어서) 내상도 종종 속이 쓰리고 아파서 가끔 인상쓰는 정도로... 엄청 심각하진 않지만 걱정받을까봐 숨기는 정도입니다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고... 6 ^^)9 지금 크게 다치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서... 저는 우방 총괄계 프사랑 헤더만 보면 겁에 질리는 사람... 얘들아 제발 건강하고 행복하자 사랑해얘들아
이 이후에 쉘몬을 캡쳐하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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