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2018. 11. 21. 01:54 from others/Otohara Ruka


https://youtu.be/gOVLyLuALGc






 귀에 울리던 환청이 뭔지 이제 알겠다. 

 이건....... 얼음이 깨지는 소리야. 

 내가 서 있던 얼음이 천천히 깨지는 소리. 



 이제는 소년의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소년을 괴롭히던 울림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도리어 물 속에 들어온 듯 몹시도 고요해서, 루카는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울어도 보이지 않을 바다 속에 잠겨서 숨을 뱉고 있는 것 같았다. 폐에 물이 가득 찬 듯 괴로웠다. 호흡 하나하나가 끔찍했다. 네가 죽는 순간 뭔가가 부서졌다. 완전히 깨져서 나는 가라앉았지. 다 깨졌으니까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소년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품에 안고 있는 알만이 소년의 작은 위안이었다. 


 거짓말쟁이.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했잖아. 어떻게 그걸 이렇게 단 한 번에 저버릴 수가 있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소년의 원망은 단편적이고 가냘프게 흩날렸다. 소중한 선배들은 분노해주었고, 디지바이스와 문장에 빛을 새겨넣었고, 그렇게 한 점의 데이터도 상처입지 않고 고래몬은 작은 알이 되어 루카의 품으로 돌아왔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래. 네가 죽었음에도 다시 돌아와 주었다는 일은 기적임을 알았다. 차라리 무사한 그들은 축복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데, 알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이성과 어리석은 감성은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괴로워, 너무 힘들어. 

 나 너무 힘들어......


 나는, 차라리. 루카는 힘겨운 말을 뱉었다. 소년이 고개를 처박고 얼굴을 감췄다. 알 속에서 쿨쿨 자고 있을 너도, 세 객실이나 떨어진 곳에 있을 선배들도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가까스로 꺼내놓은 아이의 날것이었다. 


"나는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도 울어 불그스름하게 짓눌린 눈가를 다시 한 번 닦아내며 루카가 알을 끌어안았다. 알은 소년의 말을 듣는지 아닌지 모르게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파트너를 품에 안고 루카는 숨겨 두었던 말을 한참을 더 쏟아내었다. 


"내가, 나는. 나는...... 내 존재는. 작은 누나한테 결국 난 짐이었고, 상처였고.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는 비겁해서. 모두 힘들게만 하고. 지금도,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난 어리석고 멍청하고 약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애여서. 결국 다시 형이랑 누나들을 힘들게만 만들고. 나는, 나는."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소년이 독을 토해내는 것처럼 말을 뱉었다. 눈물이 떨어져 알을 적셨다. 소맷자락으로 고집스럽게 알을 닦아내며 루카는 끊임없이 울었다. 널 죽게 만든 내가 싫어. 결국 선배들한테 힘든 모습을 보여준 내가 싫어. 안 그래도 다들 힘든 거 아는데, 괜히 내 존재가 마음쓰게 만들어서. 그런 내가, 나는. 너무, 너무, 너무 싫어......


"네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울어도 봐 줘, 용서해 줘. 얼른 다시 태어나서 나를 봐 줘. 같이 있어 줘.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고 강해지겠다고 6년 전에 약속했는데, 하지만 이건 반칙이잖아. 오늘만 울면 앞으로 또 안 울 거야. 내가 울어봤자 뭐 달라지는 게 있다고. 기운만 뺀다는 거 나도 알아. 제대로 웃을 거야. 사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는 다시 돌아올 거고, 나는 다친 곳도 하나도 없고. 사실 6년 전의 이별이랑 뭐가 그렇게 달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여기 있잖아. 그런데, 그러니까. 힘들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 크랩몬?


"그런 거지? 지금 힘들어하는 나는 비겁해. 그렇지?"


 알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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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