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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노바

2018. 2. 22. 23:19 from Fantasy/Lattelan



「피가 통한다」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족은, 이 세피로트에서 드래곤뿐이었다. 그 외에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어, 인간. 드워프는 그 테두리에 없었다. 적어도 라테스란에게는 당연했다. 드래곤을 제외하면 다들 조금의 피도 흐르지 않았으니까. 드워프는 대지와 별빛의 힘으로 홀로 태어나 광물을 깨고 나오는 생명체였고, 종족 특성상 그다지 공동체를 이루지 않았다. 지금 라테스란이 어엿한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란 것부터가 성장의 특이성과 천성 문제가 뒤섞여있을 터였다. 

 청년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마음의 문제였다. 커다란 애정과 그를 뒷받쳐주는 존중, 책임. 그리고 상호의 합의만 있으면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라테스란은 드워프로 태어나 인간 부모님에게 거둬졌고, 당나귀 드워프 남동생과 인간 여동생을 가졌다. 드래곤인 에센티아도 인간인 디코도 라테스란에게 있어서는 그냥 가족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외에도 세피로트의 다른 아이들도 하염없이 사랑스러웠다. 상호의 합의가 없었기에 깔끔해졌을 뿐. 


 너는 언제든지 나를 떠나도 돼. 나만 소중해서 놔 줬어. 그 모든 말들이 얼마나 아프고 속상한지 노바는 아마 모르겠지. 차마 그러지 말라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건 노바의 생존방식이었고 20년이 넘는 생활동안 굳어져 온 하나의 삶이었다. 섣부르게 더 말을 건낼 수는 없었다. 노바는 영리했기에 라테스란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다만 그의 방식을 그냥 유지할 뿐. 


"......난 어디 안 가."


 그래서 청년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밖에 없었다.


"난 내가 있는 자리에 계속 있을 테니까. 형이 필요하면 그냥 찾아 와, 노바노바."


 청년의 집에서는 늘 향긋한 꽃이나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다. 소중하게 관리해서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환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 남동생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라테스란이 조금 웃어버렸다. 말로 납득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알고 있기에. 






* 아 선생님 노바가요... ... . . ., . ,.  (눈물로 홍수를 이룸..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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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2일, 노바

2018. 2. 22. 16:26 from Fantasy/Lattelan




"소중한 건 상호작용이 있어야지."


 노바의 말은 격정 한 점 없이 덤덤했으나 라테스란은 그 말에 벼락처럼 슬퍼졌다. 노바와의 대화는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심해를 걷는 기분이었다. 노바는 라테스란의 귀여운 남동생이었으나 우습게도 관계가 깊지는 않았다. 제 감정이나 호의, 애정을 쳐내고 객관적으로 응시하자면 결국 에센티아를 연결고리 삼아 이어진 얼마 되지 않은 사이였으니. 노바는 너무 오래 외로웠고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외로운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외로움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일은 과연 옳은 일인가? 장래 그로 인해 받을 상처를 떠올린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청년은 아직 미숙했기에 그에 대한 가장 올바른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없었다. 

 영영 외롭지 않을 방법은 두 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여서 다른 것에 대한 의식조차 없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여서 외로울 틈이 없던가. 


 노바는 당연하다는 듯 전자를 언급하고 있어서, 청년은 어찌 할 줄 몰라 입을 다물었다. 이어지는 답은 퍽 조심스러웠다.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너를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았어?"


 세피로트의, 오르의 아이들이라면 그럴 리 없다 여겼다. 오르 님도 더더욱 그럴 리 없겠지. 그렇다면 노바가 그리 여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그보다 더 과거일 터. 라테스란이 감히 파고들어도 괜찮은 영역인지 청년은 판단하기 힘들었다. 의문은 몇 더 남아있었으나 괜히 쑤셔서 상처라도 덧날까 저어됐다. 

 제 문에게 경독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를 보며 청년은 슬퍼했다. 너는 결국 너의 일생을 그리 이름 붙였나 싶어 속이 상했다. 귀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바닥을 향해 잔뜩 쳐졌다. 


"어디에 있더라도 노바노바의 곁에 있어 줄 가족은 없을까?"


 에시라던가, 나도 있는데. 그 말까지는 덧붙이지 못하고 청년은 물끄러미 노바를 응시했다. 






(*아! 오너님. .. . . .. 우리 노바에게 무슨 일이 으흐흑 노바야 꽃길만 걷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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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1일, 앙수즈

2018. 2. 22. 00:35 from Fantasy/Lattelan




"......리스는 네가 준 세헤라자데 꽃을 쓸 거에요. 너보다야 모자라지만 열쇠도...... 만들어 뒀어요."


 라테스란이 귀를 가볍게 살랑였다. 세헤라자데. 미라에게 저 쪽 세계의 기념일이라고 말을 들었던 해빙의 달 14일에 소정의 감사를 담아 하나씩 선물했던 꽃이었다. 라테스란이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꽃이기도 했다.

 저번에 대화했을 때를 기억하기로는 분명 리스의 재료로 로렐라이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노란 로렐라이에, 분홍빛 세헤라자데. 로렐라이의 꽃술이 푸른 색인것까지 연상해본다면 두 꽃의 조합은 꽤 잘 어울리는 리스가 될 터였다.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은 라테스란의 특기지 앙수즈의 특기가 아니기는 했지만, 열심히 만들었다면 분명 그럴듯한 무언가가 나왔겠지 싶었다. 보고 싶다. 청년은 약간의 기대를 담아 귀를 몇 번 더 움직이다가 곧 얌전히 내렸다. 앙수즈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가 마법사로 각성한다면 재촉하지 않더라도 제 눈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미래를 기대하며 인내하는 일은 라테스란의 특기였다. 괜히 보채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청년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만둘 순 없으니까요. 네게 할 말은 있어야지. 돌아갔을 때, 어디를 다녀왔다, 고."

"......그거, 엄청 기대되네."


 돌아온다고, 말해주는구나. 청년은 그 대답에서 미약한 놀라움과 동시에 잔잔한 파도처럼 옅은 감동을 느꼈고, 그게 조금 쑥스러워 숨기려 했다. 대답이 조금 늦었으나 크게 티는 나지 않았기를 소망했다. 귀가 톡톡 튀듯 가볍게 두어 번 움직였다. 

 어떤 풍경을 보고 왔는지, 꼭 말해 줘. 덧붙여 말하는 청년의 눈에는 옅은 기대가 쌓였다. 앙수즈는 어떤 식으로든 말하기에 익숙했고, 화술이 능숙했기에 그 말을 들으며 차곡차곡 심상을 쌓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사람이 쉬이 상상할 수 있게 말해주니까. 라테스란도 상인으로 일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는 산처럼 많았지만 천성적으로 청년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선호했다. 여러가지 풍경들을 내심 떠올려 본 라테스란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을 간단하게 입에 담았다. 


"네 문은 어떤 곳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


 물론 그는 아직 각성하지 않은 마법사였지만, 예상 쯤은 할 수 있었다. 라테스란도 제 문을 열기 전까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한참을 생각하고는 했다. 실제로 문을 열어 본 결과 당연히 그곳이리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장소가 등장했으니 짐작한 게 부질없기야 하지만, 이 역시도 각성하지 않은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제일 흔한 문은 성역의 문이라지만, 이번에 각성한 마법사들은 수호의 문이 많았으니 그 역시도 가능성이 있었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앙수즈를 생각한다면 방랑의 문일 확률도 낮지는 않았다. 어떤 곳인지는 진실로 금요일 저녁에 각성해 보아야 알겠지만...... 라테스란은 옅은 의문을 담아 앙수즈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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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1일, 개화1

2018. 2. 21. 17:18 from Fantasy/Lattelan



 청년은 제 문 앞에 무릎 꿇었다. 네 권의 마법서를 순서대로 늘어놓은 청년은 마지막 한 권을 한 쪽 무릎 위에 올려두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청년이 황금빛 시선으로 한참을 더 문을 응시한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태양이 뜬 시간, 태양의 사랑을 받는 마법사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신에게 기도했다. 


 " 태양신께 영광을. 드넓은 하늘은 당신의 손에 의한 기적. 

   태양이 찬란한 순간, 당신의 영광과 힘이 충만한 시간 아래에.

   낮에는 그 말씀을 전하고, 

   밤에는 그 은혜를 꿈꾸리. " 


 목소리는 잔잔했고, 흔들림 하나 없었다. 그의 문은 인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 각오가 없는 자는 발을 디딜 수 없는 장소. 평생 견디기로 결심한 마법사는 자신의 문에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 


 " 일컬음도 선명함도 없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음에도,

   따뜻한 빛은 널리 온 땅에, 한없이 저 너머에 닿아, 

   하늘 저 끝에서 올라, 하늘 저 끝까지 이르니. " 


 마기. 태양신 샤흐리아르의 총애를 받는 마법사. 태양이 떠 있는 시간, 불사와 만독불침의 몸을 얻어 지상최강의 전사가 되는 자. 신을 경애하는 인간은 두 갈래의 길 중 이쪽을 선택했다. 한 명의 전사이자 신관. 청년은 운명을 맹신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은혜를 믿었다. 


 " 나의 마음은 나를 안쪽부터 달구어, 

   애타게 그리는 만큼 불타오르리. 

   나의 끝은 이곳에.

   나의 운명은 이곳에.

   내 생명의 덧없음을 이곳에. "


 기도와 함께 마법은 발동됐다. 씨가 깨어나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났다. 바람과 물과 대지와 불꽃의 힘으로 태양신께 선사받은 호접란이 꽃피어 문의 곁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오드가 주변에 퍼졌다. 하얀 머리카락과 귀가 바람에 맞춰 살랑였다. 


 " 남겨진 유일한 것을 가지고서 

   당신이 나아가는 곳을 지킵니다. "


 눈을 뜨고, 청년은 그제야 엷게 웃었다. 


 " 절망이 지나간 후에는 희망이 기다릴지니. "


 저는 만족합니다. 마법사는 호접란의 꽃 사이에 파묻혀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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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0일, 앙수즈, 각오

2018. 2. 20. 23:09 from Fantasy/Lattelan




"......실망시키면 각오해야 할 거에요?"


 뺨을 기대며 슬쩍 웃어버리는 앙수즈의 말에 라테스란이 작게 어깨를 움츠렸다. 앙수즈에게 뻗었던 손을 거둬 제 입가를 살짝 가렸다. 진짜로 겁을 먹었다기보다는, 능청을 부리며 모르는 척하는 쪽에 가까웠다. 봄볕처럼 다정하던 얼굴에 살짝 고민하는 기색이 어렸다. 하얀 귀가 허공에 가볍게 까딱거리고, 황금빛 뿔에 장식한 꽃들이 이리저리 찰랑거렸다. 라테스란의 눈이 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가 대각선을 그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으음. 라테스란은 최근 자신의 행동범위를 곰곰이 떠올렸다. 위험천만한 짓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재앙의 꽃줄기에 혼자 덤빈다거나. 하지만 모두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오염도도 나름 조심했고. 저주는 안 걸렸고...... 일상생활도 그럭저럭 영위했고. 앙수즈의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던 청년은 곧 다시 시선을 맞추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심할게."


 앙수즈를 실망시켜서 어떤 후환이 돌아올지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껄끄럼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늘 웃고 있어 주었으면 했다. 세피로트의 아이들은 모두 그랬다. 재앙의 꽃이 피어난 뒤로 다들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더더욱. 한 번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두 번 잃을까 겁을 먹었다. 라테스란도 그랬다. 부모님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세 번은 싫었다. 청년은 내심 한 번 더 각오를 다졌다. 오래 살기로 여러 번 약속했으니 정말로 그래야 했다.

 그의 여동생인 에센티아는 천년일족의 드래곤. 라테스란은 고작 그 반 토막을 사는 드워프지만 인간인 앙수즈보다는 훨씬 오래 살겠지. 이번 일이 끝나면, 그는 또 자유롭게 흘러다니다가 늘 그렇듯 가끔 제 마음 내킬때만 종종 찾아와주겠지만, 청년은 이제까지처럼 그에 만족하고 있었다. 잠시 여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라테스란은 있어야 하는 곳에서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렇기에 꽃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쳤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테스란은 자신의 위치에서 늘 제 일을 하다가, 그가 찾아왔을 때 다녀왔느냐고 말해줄 테니까. 혹시 오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그가 또 다른, 맘 편히 안주할 장소를 찾았다면 그 역시도 분명 좋은 일일 터이니. 


 하얀 귀가 다시 하늘을 향해 까딱였다. 어쩐지 조금 유쾌한 기분이 된 청년은 조금 웃어버리며 그대로 한 손을 앙수즈의 머리 위에 올리고 잔뜩 그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뭐에요?! 상대에게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라테스란은 그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웃었다. 마냥 즐거운 미소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상이 무뚝뚝하고 날카로웠지만, 웃을 때만은 놀라우리만치 인상이 순해졌다. 눈꼬리가 잔뜩 휘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서 귀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짙은 피부 위에 생기 있는 혈색이 퍼졌다. 머리가 엉망이 된 앙수즈를 한 번 응시한 청년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세피로트에 꽃이 피겠네. 그러고 보니 파란 꽃에 관해 얘기했었지? 내 문 근처에도 피워줄 수 있는지 용담이나 블루벨을 담당한 친구들한테 물어볼게."


 문 앞에서 씨앗을 피워야 하는데, 네 몫의 문은 다 만들었어? 청년이 물었다. 









(* 오너님 멘답... 멘답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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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0일, 앙수즈, 꽃

2018. 2. 20. 14:21 from Fantasy/Lattelan




 청년이 부드럽게 귀를 까딱였다. 하얀 귀는 청년의 감정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세피로트의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자주 웃게 되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무표정하고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청년이었다. 알게모르게 전쟁을 겪으면서 훨씬 황폐해진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다만 어렸을 적부터 귀만큼은 솔직하게 움직였다. 버릇처럼, 지금도 그랬다. 기분 좋다는 양 살랑살랑 흔들리는 하얀 귀가 허공을 부드럽게 수놓았다.


"그렇구나. 길잡이덩쿨, 그게 네 꽃이었구나?"


 그러고보면 그랬다. 앙수즈는 인간, 화인. 꽃에서 피어난 생명. 다른 인간 친구들을 보면서도 한 번쯤은 그들이 무슨 꽃에서 태어났을지 호기심을 가진 적 있었다. 물론 드워프들을 보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꽃도 보석도 좋아했으니까.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청초한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라테스란은 한가득 피어난 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꽃집을 종종 방문하여 집을 장식하는 것도 그였다. 

 푸른 꽃잎을 가진 꽃들은 그가 아는 종류만으로도 여러 개 있었다. 가장 먼저 물망초, 그 다음으로 수국, 수련, 용담, 블루벨, 페리윙클, 꽃잎 푸른 장미, 네모필라, 클레마티스, 에린지움, 옥시페탈럼, 그리고 길잡이덩쿨. 


 라테스란은 자신이 아는 길잡이덩쿨 꽃을 생각해보았다. 꽃잎은 여섯 갈래로 갈라지고,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나는 꽃. 무슨...... 습성 때문에 이름이 길잡이덩쿨이었는데. 청년이 무심코 미간을 좁혔다.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보았으나 거기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꽃집을 한창 문턱 닳도록 드나들던 때에 이리저리 주워들으며 알고 있는 정도인지라 잘 아는 꽃은 아니었다. 

 화인의 인생은 꽃말로 나타났다. 그의 막내 여동생이 인간인지라 그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알았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꽃에 대해 공부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꽃말부터 학습했다. 길잡이덩쿨의 꽃말이 분명, 분명......


"지식의 언어, 였던가? 너랑 잘 어울리네."


 청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거짓 한 줌 없는 진심이었다. 이름도 꽃도 그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의미였다. 엷지만 부드럽게 웃고 있던 얼굴은 앙수즈의 말이 이어질 때 조금 흐려졌다가, 다시 견고해졌다. 고운 색 황금빛 눈동자가 가만히 앙수즈를 응시했다. 보석을 조각한 마냥 빛 받아 반짝이는 눈을 한 번, 시선을 떨궈 바닥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올렸다. 잔잔한 황금이 느릿하게 곡선을 그렸다.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기뻤다. 이 세피로트의 아이들 중 몇은 제 몫숨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마냥 움직였다. 앙수즈가 그러지 않아줘서 안심했다. 그는 본디 그랬으나 이 모든 사건을 겪고도 변함없이 그래주어 고마웠다. 


 전쟁터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한 차례 싸움이 끝나고 막사에 돌아와 망자들의 시신을 정돈하면 그 머리맡에서 한참을 눈물 흘리며 괴로워했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눈물만 떨구며 그들과 이별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악몽이었다. 함께 전장에 섰던 럭이나 에센티아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어 주었기에 여전히 지금의 모습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눈물은 말라버린 듯 나오지 않았다. 오르 님이 떠나던 순간까지도. 하지만 그게 슬프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가득 차버린 댐에 구멍이 나면 순식간에 망가지리라는 것도 알았다. 


"넌 약하지 않아, 앙수즈."


 왜 그리 생각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으나, 그는 현명하고 영리하며, 매력적이고, 운용할 수 있는 마력도 많았다. 더군다나 곧 마법사로 각성하겠지. 약하다고 스스로 폄하할 수준이 아님은 자명했다. 그는 종종 자신을 낮잡아보는 것처럼 말했다. 청년은 그 점에 의아함과 속상함을 동시에 느끼고는 했다. 

 라테스란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한 쪽 손이 한참 망설이듯 느릿하게 들려져서 천천히 앙수즈의 한 쪽 뺨에 닿았다. 체온은 분명 따뜻했다. 라테스란이 조금 웃었다. 


"울리지 않겠다고 해줘서 고마워."


 타인에게 말을 건낼 때에는 늘 고민스러웠다. 어떤 말을 해야 상처입히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제대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었는지는 불분명했다. 10년 동안 앙수즈와 알고 지내며 그에게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침묵은 가장 좋은 휴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 큰 변화는 없었다. 이사와 대화하며 부득이하게 알게 된 사실들은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입에 담지 않으며, 청년이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깔끔하게 묶은 꽁지머리와 남겨둔 옆머리카락이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나도 노력할테니까?"


 저가 죽더라도 딱히 앙수즈가 우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사고로 먼저 죽어버리면 그것도 못 할 짓이겠지. 일찍 안 죽겠노라 약속도 했고. 슬픔은 한 번에 강하게 밀려올수록 버티기 힘든 법이었으니. 청년은 그리 생각하며 다시 웃었다. 볕 들이쬐듯 마냥 다정한 미소였다. 

 

 




(*오너님 괜찮으니 그냥 멘답해주세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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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휴가 가게?"


 앉아있던 의자의 뒤쪽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여동생의 물음에 라테스란이 고개를 돌렸다. 하얀 산양 귀가 위아래로 한 번 크게 까딱였다. 소녀의 손에서 팔랑이는 종이는 휴가 신청서였다. 신청자, 라테스란 세르리움. 신청기간, 무려 일 년. 라테스란은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린의 눈초리가 새초롬해졌다. 상회주가 일 년이나 부재라? 물론 계절사 일을 하느라 그는 자주 자리를 비웠고 상회의 주요 업무만 주로 처리하고는 했지만 그 주요 업무의 처리가 늦어졌을 때의 손해는 어마어마했다. 상회주 대리 중 한 명, 흰 머리카락에 레몬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사랑스런 막내, 아델린은 턱을 괴고 제 오라비를 한참을 응시했다. 불만스러운 듯 한껏 좁혀진 미간이 곧 말끔하게 펴졌다. 아델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 년이랬지? 그 정도는 우리가 매꿔볼게."


 나랑 튜드 오빠 두 사람 모두의 의견이니까 잘 다녀와! 아델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상큼하기까지 한 납득에 도리어 놀란 쪽은 라테스란이었다. 왕궁계절사의 일은 휴가를 오래 쌓아뒀으니 던지고 올 수 있었다지만 상회는 라테스란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었으니까. 더군다가 1년은 그냥 비울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의아한 색을 띄우는 황금색 시선을 보며 아델이 팔짱을 꼈다. 10년동안 라테스란의 양날개 중 한 명으로 상회를 지탱해 온 여걸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세피로트에 간다며? 물론 일 년 내내 거기 있지야 않겠지만. 오빠는 세피로트 사람들이랑 있을 때 웃잖아."

"너나 튜드랑 있을 때도 웃어. 꽤 자주 웃는데."

"우리랑 있을 때는 당연히 웃지만."


 우리는 특별하고. 가족이잖아! 아델의 말에 라테스란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 청년은 천천히 제 얼굴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안 웃던가? 청년은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아델은 찡그려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전쟁에 나가고 그 뒷수습을 하며 제 오라비는 황폐해졌다. 본인이 모르는 기색이었지만 그와 거의 한평생을 함께한 동생들은 누구보다 그를 예민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상냥하고 온화하며 타인을 사랑했지만 스스로에게 퍽 매정해졌다. 자기자신을 챙긴다는 듯 굴고 있지만 그건 몸이 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에 불과했다. 원래도 그런 면모가 없지는 않았다만. 라테스란의 애정의 대상 중 제 자신은 큰 비중이 없었다. 아델과 튜드는 노력했지만 그들은 라테스란에게 있어서 보호받는 역할이었다.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아델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빠는 자주 무표정하게 있어."

"그런가."

"그런데 아이나르 오빠가 찾아오면 웃잖아."

"그야 그렇지."

"가끔 럭 오빠가 와도 웃어."

"만나면 반가우니까."

"한두 번 온 수준이지만, 디코였던가. 그 사람이 찾아왔을 때도 웃었어."

"......"

"얼굴은 모르지만 미라 언니랑 연락 주고받을 때도 그렇고."

"......"
"에센티아가 찾아와도!"


 더 할 말 있어?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드는 아델을 보며 라테스란은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청년의 얌전한 대답에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소녀가 청년에게 다가왔다. 큰오빠. 얌전한 목소리로 부르며 아델은 양손으로 라테스란의 뺨을 감쌌다. 청년의 황금색 눈동자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하얀 귀가 허공을 향해 살짝 들어올라가는 모양새를 보며 아델린은 다정하게 말했다. 


"푹 쉬고 와, 오빠. 일 년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다녀올게, 아델. 튜드도."


 문 너머에 서 있던 회색 머리 청년이 머쓱하게 웃었다. 쑥스러운 양 휘어지는 녹황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라테스란이 천천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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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2018. 2. 17. 01:01 from Fantasy/Lattelan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라테스란은 제 머리에 손을 얹어 보았다가, 그제야 자신이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하지는 않은 자각이었다. 청년은 가만히 재앙의 꽃을 응시했다. 마법사가 되어 축하한다며 화관을 던지던 오르의 모습을 기억했다. 벅차오르는 감동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던 사랑스러운 모습도. 대견스럽다고 축하해주는 모습도. 그 모든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오르 님,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스승님. 부드럽게 닿아 살짝살짝 쓰다듬어주는 손이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졸랐을 텐데. 꽃부름 의식,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 그 모든 말을 오르 님께 고스란히 돌려드리고 싶었다. 

 껍질 깨지는 것처럼, 씨앗이 벗겨지는 것처럼 무너지는 육체를 보았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재앙의 꽃이 사방으로 뻗치는 모양새를 똑똑히 보았다. 변이, 변질. 몬스터로의 변화. 



 저 마법사가 되었어요, 오르 님.


 그는 마기. 태양의 축복을 받은 최고의 전사. 디안시가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났을 때 몸에 차오른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힘을 내지른 첫 번째 대상이 당신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청년은 우울하게 재앙의 꽃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꿈틀대는 저것에 오르 님의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모욕이 아닐까. 라테스란은 어두운 안색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지도 않아서인지, 기억은 뚜렷하게 몸에 새겨져 있었다. 싸웠다. 태양의 계시를 받고 몸에 힘이 흘러넘쳤다. 이리저리 뻗어오는 가지들을 자르고, 쳐내고, 뜯어내고. 오염이 퍼지지 않게 뛰며 적을 죽일 기세로 움직였다. 적은 몬스터. 눈앞의 괴물을 사살하기 위해서. ......그리 생각하며 싸웠다.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앙의 꽃이 퍼진다면 죽을 사람이 너무도 많았고, 이곳에는 아직 각성하지 않은 벗들이 몇이나 남아 있었다.

 새로 각성한 마법사는 총 열넷. 정령이 둘. 두 정령이 제 신의 가호를 땅에 뿌리고, 가호를 받은 네 명의 마기와 세 명의 워록이 싸우고, 세 명의 매지션과 두 명의 오라클이 벽을 치고 시야를 막았다. 그 사이 두 명의 소서러가 뛰어가 오르 님의 손을 붙잡고 정화하기 위해 노력했지. 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라테스란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애썼다. 그 이상의 좋은 방법은, 없었다. 


 아직은 꽃봉오리인 재앙의 꽃이 가지를 뻗고 오르 님의 방랑의 문을 넘어 세상에 뻗어 나가는 순간 그건 혈룡이나 카나쿠스보다 무시무시한 대재앙이 되겠지. 



 오르 님, 저는 당신의 손에서 생명을 받았는데.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얹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멍하니 꽃을 응시했다. 죽음의 순간 사선을 넘던 라테스란을 붙잡아 준 따뜻한 손을 기억했다. 언제나 상냥하게 보살펴주던 목소리도. 부드러운 몸짓도, 언제나 다정하던 모습도. 이미 독립한 데다가 한 명의 어엿한 마법사로 각성한 청년이었으나 오르는 라테스란의 스승이었고 또한 또다른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소중하고 소중해서 평생을 귀하게만 여기고 싶은. 경애하는 스승님. 


 지금도 재앙의 꽃을 억누르기 위해 갓 각성한 마법사들도 전원 힘을 쓰고 있었다. 라테스란은 바닥을 한 번, 재앙의 꽃을 한 번 본 뒤 깊이 숨을 뱉었다. 오르 님, 오르 님. 


 당신의 몸에서 재앙이 싹터 피어난 순간 당신은 죽은 건가요? 

 당신은 재앙의 모판이 되어 사라졌나요?

 저건...... 당신인가요? 그 안에 이성과 자아를 가지고 존재하나요?

 그렇다면 그 모습으로라도 계속 살아가고 싶나요?

 존재만으로도 재앙이 되어버린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르 님, 스승님. 


 우리의 어머니.



 저는요, 오르 님...... 라테스란이 눈을 감았다. 흔들리지 않는 이성과 견고한 정신력. 타인에게 주는 상냥함...... 라테스란을 이루고 있던 감정들이 잘게 경련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황금뿔의 마기는 권위의 궤도를 걸어갈 자. 괴로워도 겉으로 티 내어서는 안 되고 슬프더라도 울 수는 없었다. 

 안녕히. 청년은 마음속으로 고별을 보냈다. 어떠한 길을 선택하더라도 당신은 죽었다고. 청년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인식했다.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러웠던, 그리고 참으로 비참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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