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휴가 가게?"
앉아있던 의자의 뒤쪽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여동생의 물음에 라테스란이 고개를 돌렸다. 하얀 산양 귀가 위아래로 한 번 크게 까딱였다. 소녀의 손에서 팔랑이는 종이는 휴가 신청서였다. 신청자, 라테스란 세르리움. 신청기간, 무려 일 년. 라테스란은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린의 눈초리가 새초롬해졌다. 상회주가 일 년이나 부재라? 물론 계절사 일을 하느라 그는 자주 자리를 비웠고 상회의 주요 업무만 주로 처리하고는 했지만 그 주요 업무의 처리가 늦어졌을 때의 손해는 어마어마했다. 상회주 대리 중 한 명, 흰 머리카락에 레몬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사랑스런 막내, 아델린은 턱을 괴고 제 오라비를 한참을 응시했다. 불만스러운 듯 한껏 좁혀진 미간이 곧 말끔하게 펴졌다. 아델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 년이랬지? 그 정도는 우리가 매꿔볼게."
나랑 튜드 오빠 두 사람 모두의 의견이니까 잘 다녀와! 아델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상큼하기까지 한 납득에 도리어 놀란 쪽은 라테스란이었다. 왕궁계절사의 일은 휴가를 오래 쌓아뒀으니 던지고 올 수 있었다지만 상회는 라테스란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었으니까. 더군다가 1년은 그냥 비울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의아한 색을 띄우는 황금색 시선을 보며 아델이 팔짱을 꼈다. 10년동안 라테스란의 양날개 중 한 명으로 상회를 지탱해 온 여걸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세피로트에 간다며? 물론 일 년 내내 거기 있지야 않겠지만. 오빠는 세피로트 사람들이랑 있을 때 웃잖아."
"너나 튜드랑 있을 때도 웃어. 꽤 자주 웃는데."
"우리랑 있을 때는 당연히 웃지만."
우리는 특별하고. 가족이잖아! 아델의 말에 라테스란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 청년은 천천히 제 얼굴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안 웃던가? 청년은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아델은 찡그려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전쟁에 나가고 그 뒷수습을 하며 제 오라비는 황폐해졌다. 본인이 모르는 기색이었지만 그와 거의 한평생을 함께한 동생들은 누구보다 그를 예민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상냥하고 온화하며 타인을 사랑했지만 스스로에게 퍽 매정해졌다. 자기자신을 챙긴다는 듯 굴고 있지만 그건 몸이 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에 불과했다. 원래도 그런 면모가 없지는 않았다만. 라테스란의 애정의 대상 중 제 자신은 큰 비중이 없었다. 아델과 튜드는 노력했지만 그들은 라테스란에게 있어서 보호받는 역할이었다.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아델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빠는 자주 무표정하게 있어."
"그런가."
"그런데 아이나르 오빠가 찾아오면 웃잖아."
"그야 그렇지."
"가끔 럭 오빠가 와도 웃어."
"만나면 반가우니까."
"한두 번 온 수준이지만, 디코였던가. 그 사람이 찾아왔을 때도 웃었어."
"......"
"얼굴은 모르지만 미라 언니랑 연락 주고받을 때도 그렇고."
"......"
"에센티아가 찾아와도!"
더 할 말 있어?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드는 아델을 보며 라테스란은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청년의 얌전한 대답에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소녀가 청년에게 다가왔다. 큰오빠. 얌전한 목소리로 부르며 아델은 양손으로 라테스란의 뺨을 감쌌다. 청년의 황금색 눈동자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하얀 귀가 허공을 향해 살짝 들어올라가는 모양새를 보며 아델린은 다정하게 말했다.
"푹 쉬고 와, 오빠. 일 년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다녀올게, 아델. 튜드도."
문 너머에 서 있던 회색 머리 청년이 머쓱하게 웃었다. 쑥스러운 양 휘어지는 녹황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라테스란이 천천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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