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라테스란, 문

2018. 2. 16. 19:25 from Fantasy/Lattelan



 청년은 공방에 처박혀 있었다. 문을 만드는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본디 손재주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뛰어났던데다가, 이미 제집 망가진 현관문 두어 번 손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모양은 평범했다. 다만 견고해 보였다. 문이 될 부분은 기억의 땅에서 공수해 온 목재를 사용하되 제 머리 색을 꼭 닮은 흰칠을 했고, 경첩은 은과 황금을 섞었다. 장식으로 노베르가 선물한 보랏빛 보석을 깎아 박아넣고, 손잡이는 미스릴과 섞어 단단하게 제련한 금. 그리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라테스란이 깨고 나온 보석,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 


 문의 제작은 이토록 순조로웠다. 라테스란은 이미 거의 문의 형태를 완전히 갖춘 자신의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문도 열쇠도 거의 완성되어 있었으니 더 이상 급한 것은 없었다. 리스는 금방 만들기도 했고. 다이아몬드로 깎은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는 열쇠를 품에 넣고 문을 똑똑 두드려보았다. 소리는 명쾌하고 맑은소리가 났다.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라테스란은 문손잡이를 만져보거나 문 표면을 쓸어내리는 등 두어 번의 시험을 더 해보고 문에서 떨어졌다. 


 수호의 문이 된다면 좋겠지만...... 청년은 엷게 웃었다. 어떤 문이 될지는 문을 열어 봐야 아는 법. 문의 이름은 이미 정했다. 그 이름에 걸맞은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라테스란은 바라고 있었다. 청년은 문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리스의 재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장 처음은 블로섬, 그의 뿔을 장식하고 있기도 하는 붉은 꽃. 민트향이 나는 이 엘리프는 흔하고 구하기도 쉬운 약초였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힘을 가졌으면서 얻기도 쉬운 엘리프. 

 그다음은 쥐라. 가장 흔한 외상약의 재료. 상처를 치료하는 들풀. 흔한 만큼 얻기도 쉬운 엘리프였다. 라테스란은 블로섬과 쥐라를 엮어서 둥그런 리스를 만들었다. 볼품없이 보이지 않도록 볼륨을 넣고 중간중간 반짝이는 보석을 끼워 넣어 보기 좋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것 역시 의미했다.  

 그리고 딱 리스의 한 쪽에 딱 한 송이 들어간 게 바로 세헤라자데. 여신의 은혜. 청년이 만들어낸 리스는 세 가지의 엘리프로 완성되어 만들어졌다. 보석은 태양신에게, 꽃은 여신에게. 라테스란은 제 리스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마법사로 각성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 정도. 청년은 길게 숨을 뱉고, 다시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또 뱉었다. 하얀 귀가 위쪽으로 향해 쫑긋 솟았다가 아래로 한껏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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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