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 > Otohara Ruk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기심 (0) | 2018.10.23 |
---|---|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 2018.10.18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돌핀몬 (0) | 2018.10.11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호기심 (0) | 2018.10.23 |
---|---|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 2018.10.18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돌핀몬 (0) | 2018.10.11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어울려?"
"응!"
"잘 어울려?"
"응!! 굉장히 잘 어울려, 루카!"
"정말?"
"응! 엄청!"
크랩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제 뒷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토라가 묶어 준 머리며 핀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거울도 없었다. 물론 루카도 거울이라고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결국 작품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입을 통한 방법 뿐이었다. 루카는 몇 번이고 크랩몬에게 되물었고, 크랩몬은 불편한 기색도 하나 없이 웃으며 루카의 말에 하나하나 답했다. 루카 멋져! 크랩몬의 순진무구한 평가에 루카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희고 말랑한 뺨에 부드러운 혈색이 돌았다. 조금 긴 머리카락을 타인이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의 두 누나들이) 빗어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슈슈로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핀으로 장식해본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루카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예쁘장하니 곱게 생긴 루카가 쉬이 여자아이로 오해받았으니까. 한 쪽 옆 머리를 땋아내리는 것도 루카가 제멋대로 마음에 들어하여 간단하게 장식을 넣은 정도였다. 소년은 제 외형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못난 것보다는 예쁜 게 더 좋았다.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토라 형, 고마워. 루카는 제 등 뒤에 앉아 머리를 장식해 준 소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토라는 저가 만들어낸 작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응, 귀여워! 머리를 만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어! 방긋 웃어주며 말하는 하토라를 보며 루카는 다시 한 번 묶인 머리를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매만졌다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매일매일 힘든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마음이 풀어졌다. 아직 어린 소년은 말랑말랑한 얼굴로 크랩몬의 날카롭지 않은 쪽 집게를 꼬옥 끌어안았다.
하루의 강행군. 하얀몬의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모양을 바꾸지 않은 건 소년의 호의 표시였다. 추위를 버티기 위해 별 수 없이 모자를 꾸욱 눌러쓸때까지도 머리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려 애썼다. 결국 모자를 벗었을 때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잔뜩 울상이 되어 풀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빗도 없지만 손가락으로라도 머리를 빗어내린 뒤 오른쪽 머리카락을 땋아내려 깔끔하게 묶은 루카는 품에 한가득 하얀몬들을 끌어안았다. 품에 한가득이라고 해봐야 아직 작은 루카의 품에는 두세마리 정도가 겨우 들어차는 게 고작이었다. 루카는 품에 하얀몬을 안고, 크랩몬은 제 머리 위에 먹을 것을 담은 그릇을 요령 좋게 올려놓았다. 루카가 도도도 다가간 사람은 당연하게도 하토라였다.
하토라 형은 귀여운 걸 좋아하고, 하얀몬은 귀엽고, 또 그래서 하토라 형은 하얀몬을 엄청 좋아했으니까. 루카의 사고방식은 단순했지만 꽤 논리적이었다. 그러면 하얀몬이 많을수록 좋아하겠지? 그러한 이유로 하얀몬들을 끌어안고 하토라의 앞까지 다가온 루카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토라를 올려다보았다. 하얀몬이 잔뜩 있으니까 좋아해주겠지? 마냥 그런 표정이었다. 우선 품에 안은 하얀몬들을 내려놓은 루카는 하토라에게 머리핀과 슈슈를 반납했다. 하토라 형, 빌려줘서 고마웠어. 다음에도 루카 머리 묶어줄 수 있어? 소년이 조근조근 말을 붙였다.
땅에 내려 준 하얀몬 한 마리가 폴짝 뛰어 루카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또 한 마리가 폴짝 뛰어 품에 파고드는 것을 받아 안으며 루카가 크랩몬을 돌아보았다. 머리 위에 그릇을 얹은 크랩몬은 굉장히 질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루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랩몬, 많이 착해. 루카가 크랩몬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준 뒤 그릇을 들고 하토라를 돌아보았다.
"이거 같이 먹자, 하토라 형."
하얀몬들이 준 쌀밥에 물을 넣고 켄터스몬에게 받았던 마른 육포를 잘게 잘라 넣은 묽은 죽이었지만 추운 날 따뜻한 음식이었기에 그럭저럭 넘어갈 정도의 맛은 되었다. 하토라의 몫을 그에게 건내주며 루카가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하얀몬들도 한 입 줄까? 주변에 어느 새 옹기종기 모인 하얀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며 조근조근 말을 붙이던 루카가 하토라를 올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마냥 호의 가득한 미소였다.
잃어버리는 건 싫어 (0) | 2018.10.18 |
---|---|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 2018.10.14 |
돌핀몬 (0) | 2018.10.11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디지바이스 (0) | 2018.10.08 |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가 퍽 고즈넉했다. 루카는 크랩몬에게 덮어 준 담요를 조금 더 꼼꼼히 고쳐주었다. 최초로 성숙기로 진화한데다가 이곳의 환경은 크랩몬이 견디기에 지나치게 가혹한 곳이어서, 크랩몬은 유독 힘들어하고 있었다. 루카 역시도 그런 제 파트너를 이해했다. 한 발 먼저 잠에 빠져든 디지몬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토닥이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켄터스몬이 이것을 활성시켜준 뒤로 디지바이스는 루카의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삑삑 작은 버튼음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부드럽게 화면이 떠올랐다.
[돌핀몬. 성숙기. 백신종.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수생포유류형 디지몬. 무익한 전투를 좋아하지 않지만, 도전해오는 상대는 용서하지 않는다. 필살기는 입으로 최대 출력의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쉐이킹 펄스.]
성숙기. 백신종. 백신종...... 소년이 버튼을 앞으로 넘겼다.
[크랩몬. 성장기. 데이터종. 넷의 바다에 녹아있는 금속 데이터를 몸에 붙여 비약적으로 전투능력을 향상시킨 갑각류형 디지몬. 필살기는 왼쪽 집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시저즈 엑스큐션.]
크랩몬은 데이터. 돌핀몬은 백신. 틀림없이 형이랑 누나들 디지몬 중에는 바이러스 종도 있었고, 또 프리종도 있었지. 루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왜 분류되는 걸까. 진화하면서 달라지는 것을 보아하면 크게 의미는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중요한 변화일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루카는 그저 느릿하게 크랩몬을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있지, 루카."
"어, 크랩몬... 미안. 깨웠어?"
"아니, 그냥 눈이 떠진 걸!"
크랩몬이 방긋 웃었다. 루카도 마주 웃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둘은 이미 누구보다도 절친한 벗이었다. 수많은 대화를 함께하고도 침묵이 낯설지 않은 관계였으니.
"루카. 내가 돌핀몬으로 진화해서 아쉬워?"
"응? 아니. 아주 예뻤는걸. 그건 왜?"
"루카는 문어를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건..."
원한다기보다는...... 루카가 말끝을 흐렸다. 정확히는 차마 의식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둥실몬은 오징어를 (물론 루카의 눈으로 보기에) 닮았고, 크랩몬은 대게를 (이건 모두의 시선에 똑같았지만) 닮았으니까. 따지자면 돌고래도 물에서 사는 동물이니까 크게 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돌핀몬이라서 좋았어."
아주 아름다운 디지몬이었다. 물론 루카의 디지몬이라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늘빛 몸체에 녹색 눈동자. 삐죽삐죽한 송곳니도 강인해 보여서 좋았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모습이었다. 크랩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내려놓았다. 아직 루카는 너무 작고, 크랩몬은 많이 자라서 루카가 끌어안을 수 있는 건 크랩몬의 날이 없는 오른 쪽 집게 정도였다. 꼬옥 끌어안은 집게를 소중하게 도닥도닥하며 루카가 속삭였다.
여긴 섬이니까, 분명 언젠가는 따뜻한 바다에도 갈 거야. 거기서 다시 한 번 돌핀몬으로 진화해 보자. 분명 즐거울 거야. 돌핀몬은 커다라니까 루카를 태우고도 헤엄칠 수 있겠지? 그럼, 물론이지. 나한테 맡겨, 루카! 바다 속까지 같이 보러 가자. 나를 잡고 있으면 되니까! 응, 그러자.
"돌핀몬 다음으로는 뭐로 진화할까?"
"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막 공룡 같은 거로 진화한다거나?"
"어쩌면 그럴지도!"
그래도 멋있으니까 괜찮아. 응, 괜찮아! 크랩몬이 깔깔 웃는 모양새에 루카도 즐거운 듯 미소지었다.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 2018.10.14 |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디지바이스 (0) | 2018.10.08 |
첫 번째 진화의 밤 (0) | 2018.10.03 |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내가 뭔가 건드렸나 봐. 오토하라 루카는 어렵잖게 이상을 눈치챘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비할 바 없이 눈치가 빨랐다. 또한 영리했다. 이상을 깨달은 순간 느껴진 당황과 어색함과 미안함, 약간의 멋쩍음을 아래로 내려버리고 소년은 침착한 이성을 가장 앞으로 꺼내와 당장의 순간을 채웠다. 차분하게 구는 요령은 소년의 특기였다. 어떤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일까. 루카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을 벗어난 뒤에는 다시 이것을 꺼내와 천천히 곱씹으며 다른 감정을 느낄 지 모르겠지만 당장 소년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소녀에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돌 던져지지 않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저 깜박깜박, 눈만 여러 번 깜박일 뿐이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가만히 상대를 응시했다. 동그란 눈동자와 작은 체구, 추위로 조금 얼어있는 동그란 뺨은 소년보다는 아이라는 묘사가 어울리는 어린 소년임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작은 머리통 속에는 꽤 많은 생각이 복작복작 제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과하는 게 제일 좋을까? 그치만 루카는 뭘 잘못했지? 잘 모르겠어. 모오카 누나한테 질문한 게 실수였을까?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 사과할 수 없는걸. 그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고 큰 누나가 그랬잖아. 그치만 모오카 누나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사과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음... 글쎄. 그걸 사과받는 상대는 납득해 줄까? 그야 모르지. 루카는 그다지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근데 그건 루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별 수 없는 거지. 노력이나 해 보는 거지, 뭐. 역시 그런 걸까? 많이 화나면 혹시 싸우게 될까? 모오카 누나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응,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루카 싸우는 거 싫어. 맞아, 싫어.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도 싫고. 애초에 누군가가 화내는 것도 무섭고, 번거롭고, 불편하고......
알아, 알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제대로 잘 말해야지.
루카의 머리가 침묵을 깨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벼운 고개짓. 수긍이었다.
"응. 맞아. 남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다 알 수도 없는걸."
루카랑 히오리 누나랑 아즈사 누나... 둘 다 루카의 친누나들인데. 둘을 정말로 좋아하고 정말로 사이도 좋지만, 루카는 누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는 몰라. 누나들이 어떤 맛 케이크를 좋아하고 고민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지만, 뭘 고민하는지는 모르니까.
소년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변성기가 오기에 턱없이 먼 중성적인 목소리는 조근조근하게 제 의견을 피력했다. 모오카에게 떨어지지 않은 눈은 고스란히 상대를 담고 있었다. 루카는 대화하는 내내 상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모오카 누나를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어. 잘못했어."
소년은 순순히 사과했다. 본디도 둥글었던 눈매가 조금 더 아래로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그것이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정말로 소녀에게 미안했다. 안 그래도 그들이 처한 환경은 가혹했다. 이 이상 누군가에게 감정적인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정확하게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어도, 소년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누나는 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사는 거야? 싫은 게 생기는 게 싫어서?
저가 뱉었던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루카는 조금 웃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옅고 조금은 다정한 색의 미소였다. 소년은 머리가 좋았고, 참을성 역시도 좋았다. 의문을 가지면 반드시 풀고 싶어하는 집념 역시 존재했다. 소년의 천성이 선하지 않았다면 꽤 많은 갈등을 빚어냈으리라. 의문의 해소를 위해 상대를 굳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는 껄끄러움이 더 무거웠다. 또한 루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여행이 곧 끝이 나든, 혹은 조금 더 길어지든......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장갑 속의 손을 꼬물거리다가 입가를 살짝 가렸다. 소년은 말을 덧붙일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내뱉었다. 하지만, 모오카 누나.
"우리는 우리끼리 모험... 조난에 가까운 모험을 하고 있잖아."
켄터스몬의 만남으로 한결 분위기가 가벼워졌지만, 집에 돌아가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모르는 세계에 끌려왔다는 기본 전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함께하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동지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겪더라도 감정적으로 완전한 남이 될 수는 없는 사이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루카의 주관이었지만.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분명 없지만... 그리고 전부 알 수도 없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부를 알아가면서 살아가는걸. 매일매일... 우리는 하루의 전부를 함께 보내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게 있어. 사람은... 어디를 알게 되는가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거 아닐까?
소년이 천천히 말했다. 저가 말하면서도 약간 어려운 듯, 미간을 좁히고는 있었지만 차분한 의견 제시였다. 소년은 어쩌면 조금 풀이 죽은 것처럼, 혹은 약간 겁을 먹은 것 같거나 무언가 시무룩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말하는 데에는 망설임 한 조각 없었다.
"내가 모오카 누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건,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는데. 그게 싫었다면 미안해. 루카가 궁금했던 부분이 모오카 누나는 알려주기 싫은 부분인거지?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할게."
소년은 그리 말하고 잠시 고민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한참을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다가 천천히 마지막 끝맺음을 찍었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까 앞으로 더 조심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우는 거 아닐까? 그래서 알고 싶어 하는 거야. 전부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지만... 그래도. 모오카 누나에 대한 것도 그래. 그제야 소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돌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모오카를 보는 시선이 처음과 변한 바 없이 말갛게 빛났다.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 2018.10.14 |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돌핀몬 (0) | 2018.10.11 |
디지바이스 (0) | 2018.10.08 |
첫 번째 진화의 밤 (0) | 2018.10.03 |
크랩몬. 데이터종. 성장기. 넷의 바다 속에 녹아 있는 금속 데이터를 몸에 붙여 비약적으로 전투 능력을 향상시킨 갑각류형 디지몬. 필살기는 날카로운 왼쪽 집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시저스 엑스큐전].
루카는 막 디지바이스에 떠오른 크랩몬의 설명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넷의 바다. 이건 뭘까? 금속 데이터. 이건 또 뭘까. 그렇다면 크랩몬의 몸은 껍질이라기보다는 강철에 가까운 걸까? 물론 단단하기는 했지만... 잘 깨지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렇지만 정말로 강철일까? 넷의 바다란 건 뭘까. 크랩몬은 바다에는 가 보지도 못했는데. 둥실몬이 진화하면서 크랩몬이 되는 그 사이에 대체 뭐가 있었길래 이런 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 걸까? 루카는 차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갑각류형 디지몬. 이러한 분류가 디지몬 사이에서도 있는 거구나. 필살기의 경우에는 이미 크랩몬의 설명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었으니 넘어가도 좋았다. 루카는 네모반듯한 제 디지바이스를 잠시 매만졌다.
"루카, 무슨 생각해?"
"그냥."
크랩몬이 저에게 살짝 몸을 기대는 것을 루카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천천히 크랩몬을 토닥이며 루카는 제 디지바이스를 눈에 담았다. 디지바이스. 하늘에서 떨어진 그 별. 소년은 그 위에 덤덤하게 적혀진 디지몬에 대한 설명을 두어 번 더 읽었다. 다른 디지몬들의 설명을 읽어도 의아한 점이 생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월드는 여전히 의문이 많은 세계였다.
이런 걸 알고 싶어 하니까 이 문장이 온 걸까. 그치만 누구나 궁금해 할 텐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문장을 목에 걸고 소년은 크랩몬의 단단한 집게발 한 쪽에 머리를 기댔다. 크랩몬은 루카가 이리 기대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차마 쓰다듬어주지 못해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크랩몬을 저가 대신 토닥여주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오늘은 다시 떠나야 하니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밥 먹으러 가자, 크랩몬. 루카가 작게 속삭이자 크랩몬이 활짝 웃었다. 응, 루카! 마냥 좋다는 목소리였다.
(공미포 776)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 2018.10.14 |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돌핀몬 (0) | 2018.10.11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첫 번째 진화의 밤 (0) | 2018.10.03 |
디지털 월드의 바다 (0) | 2018.10.14 |
---|---|
하얀몬의 마을 (0) | 2018.10.13 |
돌핀몬 (0) | 2018.10.11 |
타인과 필요성 (0) | 2018.10.09 |
디지바이스 (0) | 2018.10.08 |
목적은 상대에게서 날아오는 공격의 방어~, 와아. 심플하고 간단해서 좋네요~. 파에노아는 지팡이를 단단히 잡았다. 그는 태양의 마법사. 대지의 마력을 타고 태어난 자. 파에노아의 특기 마법은 바로 그 쪽 계열이었다. 물론 상대가 좀 지나치게 강한 것 같기는 하지만요~. 파에노아는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기며 저 너머의 로텐을 보고 방긋 웃었다. 사람의 몸은 간단히 상처입힐 수 있을 정도의 회오리와 청빛의 얼음. 척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파에노아는 손을 뻗었다. 저와 같이 달의 수호자에 맞서는 사람들을 한 번 바라본 파에노아는 그대로 지팡이를 땅에 찧었다. 자아, 우리 오늘도 잘 부탁해요! 가장 처음으로...... 다시 일할 시간이랍니다! The Shield! (공미포 290자)
플라네타 가문의 핏줄은 대대로 태양 마법을 타고 태어났다. 태양의 마법이 전담하는 계열은 불꽃, 빛, 그리고 대지. 파에노아는 그 중에서 대지의 마법을 타고 내려왔지만 가문이 주로 잘 하는 마법은 빛과 불꽃에 쏠려 있었다. 전투나 교란 마법을 주로 사용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빛으로 펼쳐지는 환각이라던가~. 가문의 조상님들은 대지 마법을 전담으로 하는 후손에게 배려가 없었어요, 배려가~. 파에노아는 농담처럼 줄줄 읊으며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대지 마법으로 방어막을 펼쳐내는 것은 자신 있었다. 파에노아는 다시 한 번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덩어리를 돌덩어리로 막아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변을 살피는 눈은 매서웠다. (공미포 267)
전투에 자신이 있느냐~ 고 묻는다면, 사실 자신 있었다. 플라네타의 특기 마법은 전투와 교란이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파에노아도 당연히 전투 마법을 배웠다. 정확히는 마법으로 싸우는 법을 배웠다. 아니, 21세기에 무슨 마법으로 전투인가요~.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파에노아는 그럭저럭 착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그는 지금 와서 뭐든 배워두면 도움이 된다는 옛날이 맞았음을 새삼 실감했다. 이런 식으로 쓰게 될줄은 몰랐지만요~. 이쪽으로 날아오는 회오리를 바위로 상쇄하며 파에노아는 헤실헤실 웃었다. 목표는 방어전이니까 공격에 최대한 힘을 빼고, 다치지 않는 걸 목표로 해 볼까요~. 그는 새로 지팡이를 잡았다. 얼음을 튕겨내어 회오리를 상쇄하자구요, 미러~! (공미포 286)
상대의 눈동자가 일렁이는 모습을 파에노아는 물끄러미 응시했다. 로텐~ 자고 있나요~? 그렇다면 전생같은 거에 홀랑 삼켜지지 말고 퍼득 일어나요~. 애들 다칠라~. 파에노아는 지팡이로 바닥을 콩콩 쳤다. 그림자마냥 어두운 물방울들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러, 실드. 그 다음은...... 파에노아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자아, 부탁해요. 샌드~! 상대의 물방울을 모두 모래로 바꾸어버리자고요~. 모래를 맞는 건 별로지만, 날카로운 물방울에 맞아서 다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죠? 파에노아의 목소리는 언제나 농담처럼 명랑하기만 했다. 황금색 눈동자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며 차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공미포 279)
로텐이랑 한 약속은 아니지만, 뷰리가드랑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도 있거든요~. 로텐도 같이 놀면 좋을텐데요~. 로텐은 비록 재미없는 개그를 치지만 그것도 로텐의 장점 중 하나라고 보고 있는데요~. 파에노아는 그림자마냥 새까만 물방울을 이리저리 피하며 온갖 말들을 종알거리고 있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힘든 만큼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는 것도 목적이었으니까. 얌전히 굴수록 상대에게 이 쪽이 적이라는 인식을 줄 것 같았으니까. 로텐~. 들리면 얼른 일어나고요~. 달의 수호자한테 의식 삼켜지면 곤란해요~. 파에노아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짧게 호흡을 골랐다. 다음은 또 카드를 써야 하려나요. 어스랑 싸우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가 지팡이를 짚었다. (공미포 280)
잊지 말라는 말은 귀에 박히도록 들어서, 이제는 잊는게 더 힘들 정도였지만...... 파에노아는 제 가문의 가훈을 떠올리며 숨을 삼켰다. 후보는 내내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었고, 그 중 마음이 끌리는 후보를 몇 명 선별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선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제 앞길을 결정할 선택이었으니, 선뜻 고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파에노아는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먼지가 묻은 뺨을 닦았다. 저를 향해 공격해오는 그림자 빛 물방울들을 피해내는 데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은 또 부탁할까요~? 상대에게 혼란을 선물하는 거에요, 메이즈~. 로텐이라면 틀림없이 조금 어설프니까, 메이즈가 아주 잘 통할 거랍니다! 파에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드가 빛나기 시작했다. (공미포 295)
공격 말고 방어에만 전념하니까, 어제보다는 조금 더 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마력이 그새 조금 더 늘었으려나요? 체력적으로 상승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단기간인데...... 파에노아는 제 몸을 적당히 바위 틈새에 숨기며 로텐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살폈다. 이곳의 행동은 온전한 방어전. 상대에게서 날아오는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원래 공격이 미덕이기는 하지만...... 황금색 눈동자가 제 클래스메이트들을 한 번, 세 명의 수호자를 한 번 보고는 가볍게 휘어졌다. 뭐어, 어쩌면 이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쪽 아니겠어요~? 친구랑 싸우는 건데 거칠게 상처입히는 것도 웃기고요...... 교수님을 상처입히면 더군다나 하극상~. 파에노아가 다시 한 번 지팡이로 대지를 찍어내렸다. 거대하게 갈라진 돌덩이가 튀어나와 물방울을 막아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미포 350)
다음은 당신한테 부탁할게요, 루프~. 파에노아는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어제도 사용했던 대지 카드 중 한 장. 루프였다. 이 쪽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을 루프로 상쇄시켜주겠어요? 계속계속 빙글빙글이에요~. 파에노아의 말에 카드가 옅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빛을 내기 시작했다. 대지 카드는 공격에 그다지 소질있는 카드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응용 범위가 넓었다. 아니 뭐어, 어떤 카드들인지 사용자의 재량에 달려있지만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꼭 써 보고 싶은 카드도 한 장 있기는 했지만~. 파에노아는 옅게 웃으면서 발현하기 시작하는 루프의 마법과, 일정 거리를 두고 보이는 로텐의 모습을 응시했다. (공미포 263자)
(이거 쓰기 전에 레이드 끝나버렸다~! 이럴수가~! 어스도 쓰고 싶었는데~!)
왜 만들었는가? 를 묻느냐면, 사실 별 이유 없이 만들어 둔 공간이었다. 어린 아이는 본래 비밀스러운, 자기만의 공간에 매력을 갖기 마련이었으니까. 어린 파에노아 역시도 똑같은 이유로 이러한 비밀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특기 마법은 대지 마법이었기에, 공간을 마련하기는 어렵지도 않았다. 바위 틈새에 공간을 내고 그 안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채워넣었다. 아직 남자아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던, 철저하게 여자아이 차림을 해야만 했던 시절에는 이곳에 들어와서 잠시 쉬는 게 위안이기도 했다. 그만큼 타인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파에노아는 첫 번째 손님으로 웬디를 이곳에 초대했다. 의외의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잠깐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잔뜩 가라앉은 기색인 웬디를 보면 제 선택에 크게 후회는 없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웬디는 파에노아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고, 안쪽은 꽤 천장이 낮고 어두웠지만 그럭저럭 포근했다. 그야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웬디는 아닐 것이 뻔했기에, 파에노아는 퍽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둥글게 파진 공간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폭신폭신하고 포근한 담요들이 바닥을 잔뜩 덮고 있었고, 둥글둥글 귀여운 인형이 두어 개, 한구석에 대지 마법에 대한 책들이 온통 쌓여있었고, 노트나 필기구가 이리저리 너부러져있었다. 공간 안쪽은 꽤 생활감이 넘쳤다. 이크크. 파에노아는 은근슬쩍 그것들을 한구석으로 치웠다. 혼자 놀고 뒹구는 공간이다보니 청소에 대한 개념이 흐릿했었다. 아닌 척 그 위에 담요를 덮어버리며 파에노아는 능청스럽게 배시시 웃었다. 웬디는 공간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전기가 들어오는 천장을 보고 있었기에 그 하는 모양새는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황금색 눈동자를 도록 굴렸다가 금방 미소지었다.
그는 구석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여기에 전기를 넣기 위해서 어린 시절 온갖 쇼를 했던 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여기서 전자기기를 충전하고 작은 냉장고도 넣을 수 있었지만. 파에노아는 냉장고 속에 얌전히 들어있던 마카롱이며 슈크림 따위를 꺼냈다. 종종 생각날때마다 꺼내먹기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는 꼬박꼬박 채워뒀는데, 과거의 자신을 잠깐 칭찬하며 파에노아는 웬디를 돌아보았다.
"웬디, 거기 있는 담요랑 쿠션 위에 앉아요~. 자아, 그리고 이거 먹어요. 이 슈크림, 맛있답니다~."
"고마워......?"
"맛있는 걸 먹는 것만큼 기분이 나아지는 일도 없다고 알고 있어요~."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먹어도 괜찮으니까, 같이 먹어요~. 파에노아가 그리 말하며 슈크림을 크게 한 입 먹었다. 그 하는 모양새를 말끄러미 보고 있던 웬디가 조심스럽게 제 몫의 슈크림을 한 입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