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앙수즈, 대화

2018. 1. 30. 20:10 from Fantasy/Lattelan




 라테스란은 독립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얀 귀가 한 번 하늘을 향해 솟았다. 소년은 사실 제대로 된 목표가 있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믿을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정도의 목표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지만. 정확히는 누군가의 목표를 이어받은 것에 불구하지만 그럼에도 번듯한 목표가 있었다. 은발의 소년은 제 옆을 걷고 있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앙수즈는 말이 많고 다채로워서, 그와 대화하는 것은 즐거웠다.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그 역시도 앙수즈가 가진 호쾌함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유쾌하기까지 했다. 라테스란은 가볍게 눈을 깜박였다. 

 앙수즈는 돈을 원했다. 라테스란은 그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라테스란에게 있어서 돈이란, 가만히 있어도 굴러들어오는 '무언가'였다. 너는 금전운이 좋다는 말은 이곳에 오기 전 귀가 닳도록 들었다. 황금의 축복이라도 받았다며 어화둥둥 받은 적도 있었다. 라테스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은 타인에게 숨기는 게 좋다는 말을 얌전히 따랐다. 


 그런 라테스란이기에, 힘을 내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앙수즈의 말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부유해져 행복한 삶을 바라는 듯 보인다는 정도까지는 이해했다. 행복의 대부분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상식까지는 알았기에, 라테스란은 그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저가 앙수즈의 행복추구에 일정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년은 막연하게 생각했다. 라테스란은 이 세피로스의 아이들을 모두 좋아했고, 앙수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귀를 한 번 까딱했다. 제 방 문 앞에 서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라테스란이 처음 오르의 아이들이 되었을 때는 18살이었고, 그는 룸메이트 없이 이곳에 온 처음부터 독방을 썼다. 이 방은 라테스란이 온 이후로 내내 갈고닦아 온 공방이기도 했다. 방 한쪽 벽은 수조로 꽉 차 있었다. 수조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았다. 마을에서 보팔과 함께 사 온 새우 몇 마리와, 빼곡한 돌들이 그 안에 가득 있었다. 라테스란의 솜씨대로 모양 좋게 깎여 있는 돌이었다. 동물 모양인 것도 있었고, 보석처럼 커팅을 넣은 돌도 있었다. 물 속에 있는 그 돌들은 얼핏 보석처럼 보일 만큼 반짝거렸다. 

 진짜 보석은 거의 없고 대부분 평범한 돌이었다. 라테스란은 안쪽으로 들어서서 앙수즈에게 손짓했다. 눈을 반짝이고 있떤 앙수즈가 라테스란의 손길을 따라 가까이 다가왔다. 소년이 가장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 모두가 사용하는 가구와 크게 변함없는 모양새의 서랍 안은 번쩍거렸다. 라테스란은 무심한 손길로 서랍을 빼서 그 안 물건을 보여주었다. 목걸이며 귀걸이, 팔찌, 서클렛. 보석과 광물로 만든 장신구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예전부터 만든 것이라, 못 만든 것도 꽤 있습니다만."


 추억 삼아 남겨둔 것이 대부분입니다. 라테스란은 무난하게 눈을 깜박였다. 보석의 비율은 청록색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보석들은 레바나에게 받은 것이었다) 개중에는 푸른 색이나, 붉은 색도 있었다. 라테스란이 외출했다가 우연히 주운 보석들이었다. 소년은 몇 번 귀를 까딱이며 그 안을 뒤적였다. 장신구들이 부딪혀 짤랑이는 소리가 났다. 라테스란은 그 중 하나를 쥐어들었다. 앙수즈는 장신구로 몸을 꾸미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라테스란은 타인을 보석으로 꾸미는 일에 상당히 관심이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는 건 얼마다 보람있는 일인지. 라테스란은 어여쁜 것을 퍽 좋아했다. 그가 손에 쥔 장신구는 팔찌였다. 사파이어를 깎아 돌고래 모양으로 핵심 장식을 만들고 은실에 띄엄띄엄 크기 작은 사파이어를 연결하여 꾸민 팔찌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건 아이나르에게 주겠습니다."


 라테스란이 그것을 앙수즈에게 내밀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글쎄. 방에 찾아온 손님이니까. 혹은 같은 오르의 아이들이라서. 친구니까? 나중에 계약할 사이라고 해야 순순히 받을까. 라테스란은 꼬리를 살살 흔들며 내심 고민했다. 눈앞의 앙수즈가 물끄러미 장신구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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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테스란은 손가락을 몇 개 꼽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되도록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박깜박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는 어딘가에 머리를 쿵 박고 싶어졌다.) 여하튼 타인과 한 약속은 지키는 게 미덕이었다. 라테스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살짝 냄새를 맡았다. 타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넓지 않은 이 오르의 공간 안쪽이라면 더더욱. 라테스란이 소년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는 가볍게 발걸음을 디뎠다. 발걸음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음걸이가 사뿐사뿐하게 길을 내딛었다. 라테스란은 문득 타인의 냄새를 맡았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라테스란의 귀가 살짝 위로 솟았다가 잠잠해졌다. 라테스란이 찾던 사람, 이오는 오르와 함께 있었다. 손에 쿠키를 든 채로. 


 라테스란은 부드럽게 오르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꼬리가 한 번 흔들렸다가 얌전해진것을 보아 라테스란의 접근을 눈치챈 게 분명했다. 이오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드워프의 귀가 한 번 쫑긋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멀리서도 어느 정도 들렸다. 

 

 사랑스러운 얼굴로 오르에게 쿠키를 건내는 이오를 보며, 라테스란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말을 걸까, 말까 따위의 그런 고민. 하지만 이오의 말을 듣자니 오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라테스란은 결국 몸을 숙이고 오르의 귀에 작게 한 마디를 속삭였다. 


"오르 님, 이오가 정말로 열심히 만들었답니다. 이오가 거의 다 만들었어요."

"라테스란."


 오르와 이오가 동시에 소년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한몸에 받은 라테스란이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엷게 웃었다. 그는 어제 열심히 쿠키의 모양을 만들던 이오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드는 일이니 당연히 서툴렀지만, 둥글게 만들기 위해서 손을 움직이던 모양새라던가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며 조금 풀이 죽은 모습도. 엉성한 모습이어도 맛은 뛰어났다. 라테스란은 열심히 노력하던 이오의 태도를 높게 쳤다. 애초에 연하의 어린아이에게 지나치게 무른 성정이기도 했지만, 이오는 충분히 귀여운 소년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쿠키 반죽은 미리 만들어두었지만 애초에 만들기 간편한 쿠키 만들기에는 모양을 잡는 쪽이 전부였다. (라테스란은 그리 생각했다.) 이오가 다 만들었다는 말도 맞았다. 라테스란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온화한 시선으로,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대화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오르 님. 이오. 이 말은 하고 싶어서요."


 이오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쿠키를 만들면서, 다음에는 반죽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던 터라. 라테스란은 얌전히 말했다. 오르와 이오가 잠깐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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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바다를 무서워하게 된 지는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라테스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문 너머로 다녀오는 산책은 그럭저럭 즐거웠지만, 라테스란에게는 제 할 일이 있었으니까. 오우거에 다칠 위험도 있었고, 그는 안전제일과 신체무사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써 걸음을 조심하고 있었다. 잎사귀보다는 물거품이 더 안전해보입니다만. 로제타 님이 오우거를 그곳에만 풀어놓으셨나? 물에 오우거를 풀면 오우거도 죽어서? 라테스란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별 대단치 않은 생각을 하며 그는 보팔과 함께 당근을 다듬고 음식을 만들었다. 달팽이를 이용해서 제대로 만찬을 차릴 때에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달팽이 요리는 처음 만들어보는 터였는데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큼의 맛이 나와서, 신이 난 나머지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지만, 다들 잘 먹어줄 터이니 걱정은 없었다. 만찬에 이어서 달팽이 살을 발라 미라에게 배워 만든 김치라는 것을 잘게 썰어 볶음밥을 만들기까지 했다. 맛은 적당히 맵고 담백했다. 달팽이살은 쫄깃했고. 돼지고기살을 넣거나 아예 김치와 밥, 계란 정도만 사용한다고 미라가 그랬습니다만...... 라테스란은 곰곰히 생각했다. 달팽이살까지 추가한다 해서 미라가 못 만들었다 폄하할 리는 없지만 조금 걱정되기는 했다. 맛은 좋은 것 같은데. 소년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그래도 야생에서 주울 수 있는 달팽이들을 포획해 좀 더 통통하게 살을 찌워서 달팽이 요리를 만드는 일은 괜찮겠다고 소년은 덧붙여 생각했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갔다. 라테스란은 그럼에도 종종 고개를 돌려 물거품의 문 방향을 응시했다. 문 가까이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르고 뽀송뽀송한 수건을 그 앞에 두고 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사용하고 젖은 수건을 수거해서 빨고 건조시켜 잘 접어 넣어두기도 했다. 다만 선뜻 그 문을 넘기는 부담스러웠다. 산양의 귀와 꼬리를 가진 드워프는 저도 모르는 사이 귀와 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바다는 정말 좋아했다. 꿈과 로망이 가득하다며 동화책에서 읽었을 때부터 그 너머를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런 바다를 이토록이나 두려워하게 된 건 1년 고작 되었다. 소년은 껄끄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끄러미 문을 응시했다. 턱을 괴고 눈을 내리깔았다. 새하얀 속눈썹이 가만히 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에도 잎사귀의 문만 서성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라테스란은 적당히 마음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그나마 물거품의 문 너머는 안전하다는 것을 아니까. 안전...... 하겠지? 수영 따위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드워프는 조금 더 걱정스러워졌다. 


 소년은 방으로 돌아와 마을에서 사 온 새우를 수조에 넣었다. 라테스란이 돌아오자 보팔과 함께 문 너머에서 주워 온 독수리가 부드덕거리며 소년을 반겼다. 다친 날개를 괜히 혹사시키지 말라며 소년은 작게 핀잔했지만. 알록달록한 돌들이 잔뜩 들어있는 수조에 들어온 새우가 재빠르게 그 틈새로 몸을 숨겼다. 라테스란은 끔벅끔벅 눈을 깜박이며 저가 만들어둔 아주 아담한 물 속 세상을 응시했다. 이제는 물거품의 문을 넘어봐야겠지요. 소년이 손으로 수조 표면을 살짝 쓸어보았다. 그는 이 1년동안 인어들의 수로 근처에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비 오는 날도 아주 질색이었다. 만약 비가 거센 바람과 천둥번개를 동반한다면 그는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운 채로 부끄러움을 감수한 채 베개를 끌어안고 오르 님의 방문을 두드릴 용의도 충분히 있었다. 


 지금은 잔잔한 바다일테니까 도전해보아야겠지요. 오르 님과 다른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고. 폭풍우가 치려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여기로 도망칠테니까. 수많은 안전장치를 머리 속에 걸어두고, 라테스란은 몇 번 더 심호흡했다. 물거품의 문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응시하는 시선은 여전히 껄끄럼했다. 시간이 넉넉하고 관계가 편한 인어 친구가 있었다면 거리낌없이 함께 가 달라 부탁했겠지만 지금은 없었다. 라테스란의 꼬리가 바닥을 탁탁 쳤다. 수영 못 하고 숨도 못 쉴 텐데 어떻게 들어가지. 아니면 줄이라도 묶어둬야하나. 별별 고민들로 라테스란의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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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스란은 주방에 들어와 하르데이네에게 가벼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하르데이네가 살짝 주방 안쪽으로 걸음을 디뎠다. 일각수 소녀는 살풋 눈을 깜박였다. 가늘고 고운 속눈썹이 몇 번 팔랑이며 주방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 라테스란은 익숙하게 밑준비를 했다.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타르트지는 오늘 오전부터 내내 사용했던 몫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고 (많이 만들어둬서 다행이었다) 레몬필링은 어제 레몬주스를 만들면서 같이 만들어뒀으니까. 

 라테스란은 하르데이네에게도 포크질을 준비했다. 타르트지에 포크로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하르데이네는 고개를 몇 번 기울였다가 얌전히 포크를 들었다. 타르트지를 콕콕 찍는 소녀의 시선이 반짝거렸다. 


 라테스란은 혹 손을 잘못 찍지는 않을까 걱정하여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레몬필링을 꺼내고 머랭을 치기 시작했다. 머랭을 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소년은 요즈음들어 제 체력이 썩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근력이 늘어난 기분이라고 할까. 좋은 게 좋은 일이었으니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라테스란은 손쉽게 쳐진 머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레몬필링이 들어있는 볼을 들었다. 


 시트지를 구워 꺼내고 라테스란은 볼을 하르데이네에게 넘겨주었다. 볼을 두 손으로 받은 하르데이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레몬필링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고개를 젖혀 라테스란을 보았다. 


"이 타르트지 위에 이 레몬필링을 부어 주시면 됩니다."

"전, 부?"

"전부는 아마 좀 많을 테고, 잘 폈을 때 반듯하게 보일 정도로요."


 하르데이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레몬필링을 붓기 시작했다. 라테스란이 그 옆에서 주걱으로 윗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양이 적당하게 될 정도로 필링을 부은 뒤 하르데이네가 곧장 라테스란을 보았다. 다음은? 눈으로 묻는 소녀를 보며 라테스란이 고민하다가 짤주머니에 머랭을 한가득 넣었다. 그를 하르데이네에게 건내주며 라테스란이 말했다. 


"이걸로 모양이 나게 파이 위에 짜 주십시오."

"무슨, 모양?"
"하르데이네가 좋아하는 모양이라던가."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소년이 말했다. 자유롭게. 소녀가 중얼거렸다. 라테스란은 느긋하게 말하며 오븐의 온도를 확인했다. 하르데이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짤주머니를 쥐었다. 라테스란은 오븐을 예열시킨 뒤 사과를 잘 씻어 잘게 썰었다. 착즙기가 생긴 이후로 생과일 주스를 만들기 아주 쉬워졌다. 사과는 다른 것 넣지 않고 즙만 짜도 충분히 달았다. 투명한 유리컵에 주스를 담고 라테스란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하르데이네는 짤주머니를 쥐고 파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가 장식을 끝내고 오븐에 넣어 노릇하게 구우면 맛있는 레몬파이가 나올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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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와의 티타임은 즐거웠다. 밝고 명랑한 드래곤 소녀는 천성이 화사했고, 드워프 소년은 그를 받아주며 즐거움을 얻었다. 그들이 만든 딸기 타르트며 케이크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딸기는 끝맛이 깔끔하고 당도가 높아서 맛있었다. 그녀에게 준 코코아도 농도가 적당했고, 자신의 몫으로 준비한 민트 티는 깔끔했다. 만족스러운 티타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티타임이 끝나고 소녀와 헤어진 소년은 깨끗하게 뒷정리를 했다. 테이블을 닦고 재료 정리와 설거지며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끝낸 뒤에야 라테스란에게도 가벼운 휴식이 찾아왔다. 곧 또 저녁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는 그제야 남은 딸기를 입에 넣는 호사를 즐겼다. 에센티아가 저에게 준 것들이었다. 남은 딸기를 선물로 주며 늘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 답례노라 말하는 소녀는 참 말갛게도 웃었다. 라테스란은 입안에 들어온 딸기를 한참 씹었다. 되새김질처럼 오래오래 우물우물. 소년은 딸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딸기는 조금 단단했지만 씹는 순간 부드럽게 잘려 과즙을 잔뜩 냈다. 딸기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당도가 높고 크기가 큰 좋은 딸기들이었다. 에센티아가 어디서 얻어 온 것인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다음에 또 부탁해도 좋을 듯 싶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만들까. 라테스란은 여유로운 고민을 했다. 다음에도 에센티아와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간단한 것을 만들어볼까요. 라테스란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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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레바나, 보답

2018. 1. 29. 16:17 from Fantasy/Lattelan




 라테스란은 노래를 감상하는 레바나를 썩 흔흔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레바나는, (아니 이 세피로스에서 생활하는 절대다수의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존재들이었다. 아름다운 존재가 행복해하는 모습만큼 보기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라테스란은 제 마음의 만족까지도 얻고 있었다. 오르골을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레바나를 보며 라테스란은 별 말 없이 목례했다.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 중 이 소녀와는 유독 접점이 잦았다. 취미생활이 같은 탓이었다. 세공이라던가, 요리라던가. 라테스란은 그녀에게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주면서 서로 만족하는 합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세공이라면 특히 그랬다. 라테스란은 반짝이는 물건이라면 종류 가리지 않고 깎았다. 산이나 강에서 주운 것들은 보석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돌멩이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라테스란은 그게 예쁜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버리지 않고 그걸 깎았다. 나무며 돌이며 금속 할 것 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깎아내며 라테스란은 실력을 쌓았다. 지금 숙련된 솜씨를 가지고 있는 건 어렸을 적부터 그런 것들을 만지고 깨트리고 부수고 깎아내고 잘 만들어진 완성품을 구경한 덕분이었다. 덕분에 그는 제일 무르고 잘 깎이는 나무를 제일 잘 깎았다. 돌이나 보석도 서투르지는 않았으나, 보석은 수가 적은 만큼 쉽게 만지고 깎을 수 없었다. 


 그런 라테스란에게 레바나의 존재는 꽤 감사한 존재였다. 그녀는 보석룡이었고, 그만큼 보석손질에 능숙했다. 라테스란은 그녀에게 꽤 많은 요령을 배웠다. 지식을 나누고 함께할 사람이 생기니 실력은 금방 늘었다. 그는 저와 동갑내기 드래곤 소녀에게 담백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오르의 아이들로서 당연하게 베푼 배려일수도 있지만, 받은 사람이 감사하고 있다면 그 역시도 특별해지기 마련이었다. 


 라테스란은 이번 오르골의 답례로 받은 아쿠아마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보석은 청록색 보석뿐인 줄 알았는데. 이번의 아쿠아마린은 맑고 청명한 푸른색이었다. 넓은 대하를 닮은 빛. 소년은 소리없이 감탄했다. 그녀의 보석들은 다들 질이 좋았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석을 눈에 담은 라테스란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깊은 만족과 감사가 양 입꼬리에 아롱거리고 있었다. 


 라테스란은 그다지 보석이나 금전에 욕심이 없는 드워프였다. 타고나기를 드워프로 태어나 보석 찾기에 능한 체질이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면, 음. 여하튼 저 스스로 가지는 것보다야 아름다운 타인이 가져서 더 반짝이는 게 좋았다. 아쿠아마린은 색상이 고우니 장신구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금보다는 반짝거리는 은으로 방식해서, 하나뿐이니 귀걸이보다는 목걸이나 팔찌가 더 나을까. 손보다는 작아도 크기가 큼지막하니 잘 자르면 두 개도 그 이상도 거뜬히 나올 터인데. 라테스란은 손안에 아쿠아마린을 굴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를 받았으니 아쿠아마린으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받는 이도 당연히 레바나를 상정하여 머리를 썼다. 


 방으로 돌아온 라테스란은 제 방 수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수조에는 물 속에서만 반짝이는 투박한 돌들이 제각각 모양을 가지고 멋을 뽐내고 있었다. 동물 모양인 것도 있었고, 건물 같은 것도 있었다. 다들 물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라테스란은 그 수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쿠아마린을 그에 겹쳐보았다. 수조보다 반짝거리는 보석은 말없이 우아했다. 이번 아쿠아마린은 역시 팔찌가 좋겠다. 라테스란은 내심 마음을 정하고 종이를 꺼냈다. 황금빛 드래곤의 얇은 손에 어떻게 맞춰야 그럭저럭 쓸 만 한 아름다운 팔찌가 나올까. 드워프 소년은 고심했다. 

 얇은 두 겹으로 만들어서 아쿠아마린과 진주를 이어 만들까. 그도 아니면 은을 사용해서 깔끔하게 장식할까. 장식의 테마는, 흠. 아쿠아마린이지만 그녀는 하늘을 나는 용이니 하늘을 테마로 만드는 게 나을까요. 황금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제 책상 위, 보잘것없는 공방을 쓸어내렸다. 만들어 선물했을 때 어여쁘면 좋겠다. 라테스란의 욕구는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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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메르, 레시피

2018. 1. 29. 15:42 from Fantasy/Lattelan




 라테스란은 제 방 책장을 조금 뒤졌다. 약간 손때가 탄 노트가 몇 권이나 나왔다. 라테는 그 노트 중 한 권을 쥐어 가볍게 팔락거렸다. 이제껏 보았던 요리책에서 정리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알아내 만든 레시피들이 한 장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라테스란의 보물 중 하나였다. 몸이 건강해진 뒤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고, 닥치는대로 손대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골랐다. 요리는 라테스란의 특기 중 하나였다. 이것저것 만들어내고 이곳 사람들의 입맛에 하나하나 맞추는 건 재미있기까지 했다. 각자의 몫으로 나눠놓은 카테고리도 있었다. 


 단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디저트 레시피가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메르는 온도가 찬 것이나 단 것을 좋아해서,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레시피가 빼곡하게 적힌 페이지에 라테스란이 종이를 끼워 두었다. 몇 장 더 페이지를 넘기니 망고를 갈아서 차갑게 만든 주스 레시피가 있었다. 이것도 맛있었지요. 라테스란은 그 페이지에도 표시를 했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표시가 화려해졌다. 라테스란은 다른 노트를 쥐었다. 이번 것은 조금 독특한 레시피였다. 친구인 미라에게 물어봤던 한식 레시피가 그 안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곳의 재료를 사용한 터라 약간 어레인지는 필요했지만, 맛이 비슷하다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줬었다. 라테스란은 그 중 몇 개의 레시피를 골라냈다. 달짝지근한 양념이 들어갔던 불고기라던가, 조금 맵지만 평가가 괜찮았던 떡볶이나, 식혜 같은 것들. 독특한 것들이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니 메르도 신기하게 보아 줄 터였다. 한 번 이상 만들어 먹인 적은 있었지만 레시피로 배우는 일은 또 느낌이 다를 터이니. 그는 모든 일에 호기심 넘치게 반응하니 레시피도 호기심 넘치게 공부해 줄 터였다. 


 라테스란은 표지가 덕지덕지 붙은 노트들을 한 번 쓰다듬었다. 자신이 써 놓은 레시피는 비교적 깔끔했지만 그럼에도 라테스란이 알아보기 쉽게만 적어놨기 때문에, 그는 다른 얇은 노트에 남에게 보여도 괜찮을 정도로 자신이 표시해 둔 레시피를 새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깃펜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라테스란은 저가 그럭저럭 글씨를 잘 쓴다는 사실을 조금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는 선물로 줄 생각이니 후줄근하게 써 둔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반듯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힌 깨끗한 노트를 만족스럽게 응시하며 라테스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르가 어디에 있을지 라테스란은 조금 고민했다. 평소 느긋하게 아래를 향하는 귀가 위를 향해 쫑긋하게 섰다. 몇 번 좌우로 살짝 쫑긋거린 귀가 소리에 집중했다. 이 쪽이려나요. 라테스란이 손에 노트를 들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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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라테스란은 보팔과 함께 마을로 놀러갔다가 오르골을 두 개 샀다. 왜냐고 묻는다면 지나가는 길에 음색이 좋아서, 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민스러운 얼굴로 몇 번이고 오르골의 겉외양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라테스란이 곧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라테스란의 취미생활이 가득 들어있었다. 조각칼과 온갖 반짝이는 것들. 그 안에는 진짜 보석도 있었고, 조금 반짝일 뿐 평범한 돌들도 있었고, 정체 모를 금속들도 있었다. 직접 줍거나 받은 라테스란의 보물들이었다. 라테스란은 개중에 보석 원석들과 자개들을 골라냈다. 오르골은 값싸게 살 수 있을 정도로 평범했고, 라테스란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소리는 좋았지만 겉도 예뻐야 더 매력이 있는 법이었다.  

 

라테스란은 능숙하게 자개를 깎아냈다. 오르골도 깎아냈다. 깎고, 붙이고, 장식하고. 어떤 모양이 좋을지 눈으로 어림해보며 소년은 조각칼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뿔이 멋드러진 숫사슴 모양을 만들 생각이었다. 나무로 만든 평범한 사각형 오르골의 뚜껑에 자개로 만든 섬세한 숫사슴이 채워졌다. 뿔은 에메랄드를 깎아서 채워넣자 오르골은 화려하고 그럴듯한 모양으로 변모했다. 라테스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르골은 두 개니까, 다른 하나는 암사슴으로 만들어서 짝을 맞출까. 라테는 다른 한 개의 오르골을 집어들고 한 번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수사슴이 뿔을 보석으로 채워넣어 더 예뻤다. 이번 것은 루비로 뿔을 채워넣어야지. 루비로 만든 것은 저가 가지고, 레바나에게는 에메랄드의 것을 선물할까요. 라테스란은 별 어려움 없이 가벼이 마음을 정했다. 완성한 오르골을 털어내고 잘 닦아내고 광을 입히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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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