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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27 풍등
  2. 2018.10.26 감사
  3. 2018.10.25 축제 전야
  4. 2018.10.23 호기심
  5. 2018.10.18 잃어버리는 건 싫어
  6. 2018.10.14 디지털 월드의 바다
  7. 2018.10.13 하얀몬의 마을
  8. 2018.10.11 돌핀몬

풍등

2018. 10. 27. 01:27 from others/Otohara Ruka




 루카, 루카. 풍등에 소원을 써서 날리는 거야! 응! 파트너의 말에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이는 제 옷에 사실 반쯤 파묻힌 상태였다. 반이라기에는 조금 덜, 삼분지 일 정도. 아이는 또래에 비해서도 한 뼘은 작을 정도로 작고 마른 아이였고, 제일 작은 옷도 사실 루카한테는 품이 좀 넉넉했다. 원래 강시 옷이 소매가 길쭉하다는 점까지 덧붙여져 루카는 손을 가리고도 한 뼘도 더 넘게 길게 늘어지는 옷을 입고 나풀나풀 잘도 돌아다녔다. 바짓자락은 끈을 묶어서 단단히 고정한 탓에 흘러내리지 않았으니 소맷자락이 좀 긴 정도는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는 걷고 뛰는 데에는 무한한 재능이 있었으니 걸을 수 있다면 손이야 뭐, 잠시 불편해도 괜찮았다. 

 

 소매를 어깨까지 걷은 아이는 펜을 잡고 풍등을 한참 응시했다. 슬렁슬렁 다시 내려온 옷은 어느 새 팔꿈치 언저리를 덮고 있었다. 뭐라고 쓰지. 아이는 고민했다. 기본적으로 뭐든지 제 손으로 해내는 데에 보람을 찾는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은 많았으나 그걸 딱히 소원까지 빌 정도는 아니었다. 참으로 챙겨주기 까다로운 아이였다. 크랩몬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는 루카가 할 일이니까 소원이 아니고. 잘 뛰게 해주세요, 이것도 루카가 노력하면 되는 거니까 소원 아니고. 음... 음...... 루카도 고민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아이가 착한 아이였던 보상으로 받는 선물이었으니 기쁘게 받을 수 있었으나 이는 다른 문제였으니까. 

 뭐라고 쓸까, 크랩몬? 내일 아침으로는 따끈따끈한 국물을 먹고 싶어요, 라고 쓸까? 아이가 바라는 것이야 퍽 사소했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 근데 나는 고기가 먹고 싶은데! 어, 정말? 그러면...... 고기가 들어간 국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쓰면 되겠다. 그러면 될 것 같아, 루카! 


 쏙 빼닮은 두 파트너는 풍등에 내일 아침 메뉴를 부탁하는 글을 쓰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이제 날리러 가자. 그러자! 한창 불을 붙여 풍등을 띄우고 있는 디지몬들에게 달려가는 발걸음은 명쾌했다. 어느 새 다 흘러내려 손등을 덮고 길게 늘어진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루카가 활짝 웃었다. 저기, 거기 디지몬 친구야~! 우리 풍등도 같이 날려주라! 불 붙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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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2018. 10. 26. 17:49 from others/Otohara Ruka





 할 수 있는 건 얼마나 많은데. 루카가 그대로 말을 쏟아내었다. 디지몬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는 건 꾸준히 할 거지만, 그거랑 별개로 일단 디지털 월드라고 했으니까, 컴퓨터에 대해서도 공부해봐야 할 것 같고, 그거랑 별개로 디지몬은 뭐에 제일 가까울까 생각해봤었는데, 디지털 속의 생명체... 인공지능에 흡사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어. 그리고 전에 모오카 누나랑 이야기 해 봤었잖아, 요괴랑 디지몬의 연관성...... 그걸 생각하면 세계 각지의 요괴나 괴수들에 대한 전설도 공부해보고 싶고. 디지몬에 대해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게 너무너무 많은걸. 


...그리고 이 모든 게 어쩌면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힘들고 지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도움이 될 테니까. 같이, 열심히 하자 누나. 

 소년이 활짝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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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축제 전야

2018. 10. 25. 02:23 from others/Otohara Ruka




 루카는 제 몸의 절반보다 더 큰 곰인형과, 그와 비슷한 크기의 토끼 인형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깜박, 그리고 또 깜박. 내일부터는 축제고, 축제가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어쩐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얼떨떨하다고 해야 할까. 갑작스럽게 쏟아진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쪽이 정확했다. 루카는 어른스럽고 똑똑했으나 아직 8살 먹은 한참 어린 꼬마였고, 꼬마는 이런 일이 힘겨웠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거. 루카는 고개를 돌려 멀찍하게 떨어져서 제 눈치를 보는 크랩몬을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는 모양새가 귀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크랩몬, 뭐 해? 이리 와."

"......가까이 가도 괜찮아? 루카는 화 안 났어?"

"내가 크랩몬한테 화를 왜 내?"


 잘못한 것도 없고, 화나게 될 만한 것도 없고. 마린엔젤몬조차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해서 용서했으니 루카는 정말로 화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소년의 말간 눈동자를 확인한 크랩몬은 기꺼이 루카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강철의 껍질이었지만, 루카는 익숙하다는 듯 다정하게 집게에 뺨을 댔다. 크랩몬은 제 파트너의 그런 친근한 행동에 마냥 행복한 듯 방긋방긋 웃음을 그렸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분위기는 확실히 어수선했다. 루카도 심정이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돌아간다는 기쁨, 묘한 허탈감, 디지털 월드와 이별한다는 아쉬움, 크랩몬과 헤어진다는 슬픔. 

 헤어진다는...... 루카는 발뒤꿈치로 바닥을 살살 긁었다. 어린 아이의 몸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지만, 아이는 다정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을 수 있었다. 한 달 겨우 채울까 말까 한 짧은 여행이었지만, 본디 아이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법. 어린 루카는 영리했고, 그만큼 상냥하게 자라 있었으니까. 


"루카, 슬퍼?"
"응? 그럼, 슬프지. 크랩몬이랑 다시 못 만나는 것도, 되게 슬퍼."

"나도. 루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응. 나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치만 크랩몬이 죽는 건 더 더 더 싫어. 그러니까 여기서 안녕이야. 루카는 딱 잘라 말했다. 크랩몬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지만 루카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루카는 인형을 내려놓았다. 대신 풀죽은 제 파트너의 집게를 품에 안은 아이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는 영리했고, 그 영리함이란 지식의 문장의 주인 중 하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루카는 다 알아. 지금 헤어지면 우리는 아주아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응......"
"시간대가 다르다며? 여기서 한 달이나 있었는데 우리 세계에서 얼마 안 걸렸다는 건, 우리 세계에서 한 달이면 여기서는 몇 년, 몇 십 년, 어쩌면 그 이상일 정도로 오래 흘러가버린다는 거지?"
"아마도......"

 아이가 샐쭉 웃었다. 크랩몬은 미안한 듯 시선을 피했다. 루카는 그런 파트너를 탓하지 않고, 그 집게에 입을 맞췄다. 상냥한 움직임이었다. 괜찮아, 크랩몬. 루카는 위로에 가깝게 속삭였다. 


"루카는 머리가 좋아."

"응."

"할 수 있는 것도 잔뜩 있구."

"응, 맞아."

"아직 어린 애니까."

"뭐든 할 수 있지."

"응. 그러니까 루카는 커서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수 있게 할 거야."


 컴퓨터도, 과학도, 디지털 월드도, 디지몬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공부 열심히 해서 루카는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닌걸. 루카랑 크랩몬은 파트너니까."

"응."

"이 디지털 월드에 있는 쌍둥이인걸. 크랩몬은, 루카를 오래 기다렸다고 했지?"

"응, 그랬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다시 한 번 크랩몬을 만나러 올 테니까."


 응, 기다릴게. 얼마든지, 아주아주 오래라도 좋으니까, 기다릴게 루카. 응, 기다려줘. 루카 정말로 힘내서 꼭 다시 만나러 올 테니까......

 아이와 디지몬이 서로에게 기댔다. 내일은 축제니까, 재미있게 놀자.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응, 많이. 잔뜩 놀자. 속삭이는 답 역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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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몬의 마을

2018. 10. 13. 01:14 from others/Otohara Ruka



"어울려?"
"응!"
"잘 어울려?"

"응!! 굉장히 잘 어울려, 루카!"

"정말?"
"응! 엄청!"


 크랩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제 뒷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토라가 묶어 준 머리며 핀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거울도 없었다. 물론 루카도 거울이라고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결국 작품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입을 통한 방법 뿐이었다. 루카는 몇 번이고 크랩몬에게 되물었고, 크랩몬은 불편한 기색도 하나 없이 웃으며 루카의 말에 하나하나 답했다. 루카 멋져! 크랩몬의 순진무구한 평가에 루카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희고 말랑한 뺨에 부드러운 혈색이 돌았다. 조금 긴 머리카락을 타인이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의 두 누나들이) 빗어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슈슈로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핀으로 장식해본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루카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예쁘장하니 곱게 생긴 루카가 쉬이 여자아이로 오해받았으니까. 한 쪽 옆 머리를 땋아내리는 것도 루카가 제멋대로 마음에 들어하여 간단하게 장식을 넣은 정도였다. 소년은 제 외형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못난 것보다는 예쁜 게 더 좋았다.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토라 형, 고마워. 루카는 제 등 뒤에 앉아 머리를 장식해 준 소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토라는 저가 만들어낸 작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응, 귀여워! 머리를 만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어! 방긋 웃어주며 말하는 하토라를 보며 루카는 다시 한 번 묶인 머리를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매만졌다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매일매일 힘든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마음이 풀어졌다. 아직 어린 소년은 말랑말랑한 얼굴로 크랩몬의 날카롭지 않은 쪽 집게를 꼬옥 끌어안았다. 


 하루의 강행군. 하얀몬의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모양을 바꾸지 않은 건 소년의 호의 표시였다. 추위를 버티기 위해 별 수 없이 모자를 꾸욱 눌러쓸때까지도 머리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려 애썼다. 결국 모자를 벗었을 때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잔뜩 울상이 되어 풀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빗도 없지만 손가락으로라도 머리를 빗어내린 뒤 오른쪽 머리카락을 땋아내려 깔끔하게 묶은 루카는 품에 한가득 하얀몬들을 끌어안았다. 품에 한가득이라고 해봐야 아직 작은 루카의 품에는 두세마리 정도가 겨우 들어차는 게 고작이었다. 루카는 품에 하얀몬을 안고, 크랩몬은 제 머리 위에 먹을 것을 담은 그릇을 요령 좋게 올려놓았다. 루카가 도도도 다가간 사람은 당연하게도 하토라였다. 


 하토라 형은 귀여운 걸 좋아하고, 하얀몬은 귀엽고, 또 그래서 하토라 형은 하얀몬을 엄청 좋아했으니까. 루카의 사고방식은 단순했지만 꽤 논리적이었다. 그러면 하얀몬이 많을수록 좋아하겠지? 그러한 이유로 하얀몬들을 끌어안고 하토라의 앞까지 다가온 루카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토라를 올려다보았다. 하얀몬이 잔뜩 있으니까 좋아해주겠지? 마냥 그런 표정이었다. 우선 품에 안은 하얀몬들을 내려놓은 루카는 하토라에게 머리핀과 슈슈를 반납했다. 하토라 형, 빌려줘서 고마웠어. 다음에도 루카 머리 묶어줄 수 있어? 소년이 조근조근 말을 붙였다. 

 땅에 내려 준 하얀몬 한 마리가 폴짝 뛰어 루카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또 한 마리가 폴짝 뛰어 품에 파고드는 것을 받아 안으며 루카가 크랩몬을 돌아보았다. 머리 위에 그릇을 얹은 크랩몬은 굉장히 질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루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랩몬, 많이 착해. 루카가 크랩몬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준 뒤 그릇을 들고 하토라를 돌아보았다. 


"이거 같이 먹자, 하토라 형."


 하얀몬들이 준 쌀밥에 물을 넣고 켄터스몬에게 받았던 마른 육포를 잘게 잘라 넣은 묽은 죽이었지만 추운 날 따뜻한 음식이었기에 그럭저럭 넘어갈 정도의 맛은 되었다. 하토라의 몫을 그에게 건내주며 루카가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하얀몬들도 한 입 줄까? 주변에 어느 새 옹기종기 모인 하얀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며 조근조근 말을 붙이던 루카가 하토라를 올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마냥 호의 가득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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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몬

2018. 10. 11. 01:20 from others/Otohara Ruka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가 퍽 고즈넉했다. 루카는 크랩몬에게 덮어 준 담요를 조금 더 꼼꼼히 고쳐주었다. 최초로 성숙기로 진화한데다가 이곳의 환경은 크랩몬이 견디기에 지나치게 가혹한 곳이어서, 크랩몬은 유독 힘들어하고 있었다. 루카 역시도 그런 제 파트너를 이해했다. 한 발 먼저 잠에 빠져든 디지몬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토닥이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켄터스몬이 이것을 활성시켜준 뒤로 디지바이스는 루카의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삑삑 작은 버튼음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부드럽게 화면이 떠올랐다. 


[돌핀몬. 성숙기. 백신종.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수생포유류형 디지몬. 무익한 전투를 좋아하지 않지만, 도전해오는 상대는 용서하지 않는다. 필살기는 입으로 최대 출력의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쉐이킹 펄스.]


 성숙기. 백신종. 백신종...... 소년이 버튼을 앞으로 넘겼다. 


[크랩몬. 성장기. 데이터종. 넷의 바다에 녹아있는 금속 데이터를 몸에 붙여 비약적으로 전투능력을 향상시킨 갑각류형 디지몬. 필살기는 왼쪽 집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시저즈 엑스큐션.]


 크랩몬은 데이터. 돌핀몬은 백신. 틀림없이 형이랑 누나들 디지몬 중에는 바이러스 종도 있었고, 또 프리종도 있었지. 루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왜 분류되는 걸까. 진화하면서 달라지는 것을 보아하면 크게 의미는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중요한 변화일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루카는 그저 느릿하게 크랩몬을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있지, 루카."

"어, 크랩몬... 미안. 깨웠어?"

"아니, 그냥 눈이 떠진 걸!"


 크랩몬이 방긋 웃었다. 루카도 마주 웃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둘은 이미 누구보다도 절친한 벗이었다. 수많은 대화를 함께하고도 침묵이 낯설지 않은 관계였으니. 


"루카. 내가 돌핀몬으로 진화해서 아쉬워?"
"응? 아니. 아주 예뻤는걸. 그건 왜?"

"루카는 문어를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건..."


 원한다기보다는...... 루카가 말끝을 흐렸다. 정확히는 차마 의식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둥실몬은 오징어를 (물론 루카의 눈으로 보기에) 닮았고, 크랩몬은 대게를 (이건 모두의 시선에 똑같았지만) 닮았으니까. 따지자면 돌고래도 물에서 사는 동물이니까 크게 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돌핀몬이라서 좋았어."


 아주 아름다운 디지몬이었다. 물론 루카의 디지몬이라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늘빛 몸체에 녹색 눈동자. 삐죽삐죽한 송곳니도 강인해 보여서 좋았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모습이었다. 크랩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내려놓았다. 아직 루카는 너무 작고, 크랩몬은 많이 자라서 루카가 끌어안을 수 있는 건 크랩몬의 날이 없는 오른 쪽 집게 정도였다. 꼬옥 끌어안은 집게를 소중하게 도닥도닥하며 루카가 속삭였다. 

 여긴 섬이니까, 분명 언젠가는 따뜻한 바다에도 갈 거야. 거기서 다시 한 번 돌핀몬으로 진화해 보자. 분명 즐거울 거야. 돌핀몬은 커다라니까 루카를 태우고도 헤엄칠 수 있겠지? 그럼, 물론이지. 나한테 맡겨, 루카! 바다 속까지 같이 보러 가자. 나를 잡고 있으면 되니까! 응, 그러자. 


"돌핀몬 다음으로는 뭐로 진화할까?"
"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막 공룡 같은 거로 진화한다거나?"
"어쩌면 그럴지도!"


 그래도 멋있으니까 괜찮아. 응, 괜찮아! 크랩몬이 깔깔 웃는 모양새에 루카도 즐거운 듯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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