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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필요성

2018. 10. 9. 02:01 from others/Otohara Ruka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내가 뭔가 건드렸나 봐. 오토하라 루카는 어렵잖게 이상을 눈치챘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비할 바 없이 눈치가 빨랐다. 또한 영리했다. 이상을 깨달은 순간 느껴진 당황과 어색함과 미안함, 약간의 멋쩍음을 아래로 내려버리고 소년은 침착한 이성을 가장 앞으로 꺼내와 당장의 순간을 채웠다. 차분하게 구는 요령은 소년의 특기였다. 어떤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일까. 루카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을 벗어난 뒤에는 다시 이것을 꺼내와 천천히 곱씹으며 다른 감정을 느낄 지 모르겠지만 당장 소년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소녀에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돌 던져지지 않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저 깜박깜박, 눈만 여러 번 깜박일 뿐이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가만히 상대를 응시했다. 동그란 눈동자와 작은 체구, 추위로 조금 얼어있는 동그란 뺨은 소년보다는 아이라는 묘사가 어울리는 어린 소년임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작은 머리통 속에는 꽤 많은 생각이 복작복작 제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과하는 게 제일 좋을까? 그치만 루카는 뭘 잘못했지? 잘 모르겠어. 모오카 누나한테 질문한 게 실수였을까?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 사과할 수 없는걸. 그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고 큰 누나가 그랬잖아. 그치만 모오카 누나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사과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음... 글쎄. 그걸 사과받는 상대는 납득해 줄까? 그야 모르지. 루카는 그다지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근데 그건 루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별 수 없는 거지. 노력이나 해 보는 거지, 뭐. 역시 그런 걸까? 많이 화나면 혹시 싸우게 될까? 모오카 누나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응,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루카 싸우는 거 싫어. 맞아, 싫어.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도 싫고. 애초에 누군가가 화내는 것도 무섭고, 번거롭고, 불편하고...... 

 알아, 알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제대로 잘 말해야지. 


 루카의 머리가 침묵을 깨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벼운 고개짓. 수긍이었다. 


"응. 맞아. 남을 전부 알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다 알 수도 없는걸."


 루카랑 히오리 누나랑 아즈사 누나... 둘 다 루카의 친누나들인데. 둘을 정말로 좋아하고 정말로 사이도 좋지만, 루카는 누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는 몰라. 누나들이 어떤 맛 케이크를 좋아하고 고민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지만, 뭘 고민하는지는 모르니까. 

 소년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변성기가 오기에 턱없이 먼 중성적인 목소리는 조근조근하게 제 의견을 피력했다. 모오카에게 떨어지지 않은 눈은 고스란히 상대를 담고 있었다. 루카는 대화하는 내내 상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모오카 누나를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어. 잘못했어."


 소년은 순순히 사과했다. 본디도 둥글었던 눈매가 조금 더 아래로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그것이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정말로 소녀에게 미안했다. 안 그래도 그들이 처한 환경은 가혹했다. 이 이상 누군가에게 감정적인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정확하게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어도, 소년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누나는 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사는 거야? 싫은 게 생기는 게 싫어서?


 저가 뱉었던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루카는 조금 웃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옅고 조금은 다정한 색의 미소였다. 소년은 머리가 좋았고, 참을성 역시도 좋았다. 의문을 가지면 반드시 풀고 싶어하는 집념 역시 존재했다. 소년의 천성이 선하지 않았다면 꽤 많은 갈등을 빚어냈으리라. 의문의 해소를 위해 상대를 굳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는 껄끄러움이 더 무거웠다. 또한 루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여행이 곧 끝이 나든, 혹은 조금 더 길어지든......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장갑 속의 손을 꼬물거리다가 입가를 살짝 가렸다. 소년은 말을 덧붙일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내뱉었다. 하지만, 모오카 누나.


"우리는 우리끼리 모험... 조난에 가까운 모험을 하고 있잖아."


 켄터스몬의 만남으로 한결 분위기가 가벼워졌지만, 집에 돌아가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모르는 세계에 끌려왔다는 기본 전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함께하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동지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겪더라도 감정적으로 완전한 남이 될 수는 없는 사이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루카의 주관이었지만. 


"타인을 전부 알 필요는 분명 없지만... 그리고 전부 알 수도 없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부를 알아가면서 살아가는걸. 매일매일... 우리는 하루의 전부를 함께 보내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게 있어. 사람은... 어디를 알게 되는가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거 아닐까? 


 소년이 천천히 말했다. 저가 말하면서도 약간 어려운 듯, 미간을 좁히고는 있었지만 차분한 의견 제시였다. 소년은 어쩌면 조금 풀이 죽은 것처럼, 혹은 약간 겁을 먹은 것 같거나 무언가 시무룩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말하는 데에는 망설임 한 조각 없었다. 


"내가 모오카 누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건,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는데. 그게 싫었다면 미안해. 루카가 궁금했던 부분이 모오카 누나는 알려주기 싫은 부분인거지?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할게."


 소년은 그리 말하고 잠시 고민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한참을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다가 천천히 마지막 끝맺음을 찍었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까 앞으로 더 조심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우는 거 아닐까? 그래서 알고 싶어 하는 거야. 전부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지만... 그래도. 모오카 누나에 대한 것도 그래. 그제야 소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돌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모오카를 보는 시선이 처음과 변한 바 없이 말갛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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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디지바이스

2018. 10. 8. 12:12 from others/Otohara Ruka


크랩몬. 데이터종. 성장기. 넷의 바다 속에 녹아 있는 금속 데이터를 몸에 붙여 비약적으로 전투 능력을 향상시킨 갑각류형 디지몬. 필살기는 날카로운 왼쪽 집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시저스 엑스큐전].


 루카는 막 디지바이스에 떠오른 크랩몬의 설명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넷의 바다. 이건 뭘까? 금속 데이터. 이건 또 뭘까. 그렇다면 크랩몬의 몸은 껍질이라기보다는 강철에 가까운 걸까? 물론 단단하기는 했지만... 잘 깨지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렇지만 정말로 강철일까? 넷의 바다란 건 뭘까. 크랩몬은 바다에는 가 보지도 못했는데. 둥실몬이 진화하면서 크랩몬이 되는 그 사이에 대체 뭐가 있었길래 이런 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 걸까? 루카는 차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갑각류형 디지몬. 이러한 분류가 디지몬 사이에서도 있는 거구나. 필살기의 경우에는 이미 크랩몬의 설명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었으니 넘어가도 좋았다. 루카는 네모반듯한 제 디지바이스를 잠시 매만졌다. 


"루카, 무슨 생각해?"

"그냥."


 크랩몬이 저에게 살짝 몸을 기대는 것을 루카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천천히 크랩몬을 토닥이며 루카는 제 디지바이스를 눈에 담았다. 디지바이스. 하늘에서 떨어진 그 별. 소년은 그 위에 덤덤하게 적혀진 디지몬에 대한 설명을 두어 번 더 읽었다. 다른 디지몬들의 설명을 읽어도 의아한 점이 생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월드는 여전히 의문이 많은 세계였다. 

 이런 걸 알고 싶어 하니까 이 문장이 온 걸까. 그치만 누구나 궁금해 할 텐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문장을 목에 걸고 소년은 크랩몬의 단단한 집게발 한 쪽에 머리를 기댔다. 크랩몬은 루카가 이리 기대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차마 쓰다듬어주지 못해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크랩몬을 저가 대신 토닥여주며, 루카는 디지바이스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오늘은 다시 떠나야 하니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밥 먹으러 가자, 크랩몬. 루카가 작게 속삭이자 크랩몬이 활짝 웃었다. 응, 루카! 마냥 좋다는 목소리였다. 




(공미포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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