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방이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천박하지 않을 만큼 화려한 방. 황금과 보석이 가득하고, 푹신한 인형과 온갖 장난감이 넘쳐나는 장소. 아이는 그 안에서 자랐다. 어깨까지 닿는 머리카락은 은실처럼 반짝였고 조그마한 귀는 부드럽고 폭신했으며 피부는 잘 물든 초콜릿 색에 눈동자는 황금마냥 찬란했지만 그 모든 것에 생기라고는 전혀 없어서 잘 빚은 조각상 같았다. 얇은 팔다리는 몸 하나 간수 못할 정도로 허약했고 수시로 기침을 했다. 고작 대여섯살로 보이는 아이에게 어린 생명체 특유의 생동감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요구하기에 아이는 지나치게 약했다. 기침에서는 툭하면 피가 섞여 나왔고 자주 혼절했다. 아프다는 말은 헛소리처럼 자주 튀어나왔다. 아파, 아파. 자면서도 아이는 끙끙 앓았다. 지나친 통증에 악몽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는 일도 잦았고, 기침하며 피가래를 뱉다가 그대로 살점 섞인 피를 한참 토한 적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통증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애써 잠을 청한 적도 수십 일이었다. 어지간한 어른도 얼마 안 되어 죽어버린다는 불치병은 아이에게 지독하게 치명적이었다. 


 수많은 약과 의사들이 아이를 거쳐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에도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위해 별 수 없이 아이는 약에 절여져야 했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쓰디쓴 진통제와 수면제에 취해 몽롱한 눈으로 소년은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약을 먹다보니 입맛도 없어서, 소년은 먹은 것도 그다지 없었다. 토해도 피와 위액만 나왔다. 침대 위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가 굳이 고집을 부려 창문에 의자를 댈 수 있었다. 바깥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화려한 음악 소리는 창에 막혀 흐릿했고 바람 한 줌도 위험하니 창을 열 수도 없었다. 초점과 시야 둘 다 불투명하여 앞도 잘 안 보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화려한 색들과 반짝반짝한 무언가. 어렴풋이 멀리서 들리는 즐거운 소리. 노랫소리, 음악소리. 예쁘고, 반짝반짝한...... 

 부럽다. 나도 안 아프고 싶어. 


  꾸벅꾸벅 잠이 찾아왔다. 강력한 수면제의 효과였다. 약을 먹지 않으면 또 아프다는 말을 내뱉다가 제 몸 쥐어뜯고 엉엉 울음을 터트릴 것을 알아 아이도 얌전히 약을 먹었다. 몽롱한 의식 사이에서도 아이는 끈질기게 생각했다. 나도 축제. 나도, 나도. 언젠가는, 언젠가 건강해지면. 나도 꼭......




 소년, 라테스란은 깜박 정신을 차렸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제 손에 들린 꼬치구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소년이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눈을 깜박였다. 절박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도 미련처럼 건강해진다는 말을 되내였지만 사실 언제 죽을까 내내 겁에 질려 있었다. 이토록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기적같은 일이었다. 라테스란의 귀가 한 번 부드럽게 까딱였다. 


 라테스란은 내내 꿈꾸던 축제를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에크웨시 님께 용돈도 받고, 로제타 님께 어마어마한 충동구매를 했다. 이제껏 저가 돈을 모으던 이유는 어차피 쓰기 위해서인데 뭘 참으랴. 소년은 이것저것 되는대로 구매했다. 로제타 님은 돈을 뿌리는 라테스란을 그럭저럭 환영해주었다. 이 조각칼 네가 원했었지? 네. 이 비단도 갖고 싶어 했지? 네! 이 반짝거리는 것들도 다 다 다 원했었겠다! 네! 다 주세요 로제타 님! 라테스란은 만족해서 돌아왔다. 로제타도 만족해서 웃었다. 소년은 반짝거리는 것들을 품에 안고 행복하게 반짝거리는 축제를 구경했다. 


 하얀 귀가 하늘로 솟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은 온통 화려하고 행복하기만 했다. 노래를 하고 장사를 하고 호객소리에 웃음소리에 사랑이 가득했다. 소년은 어린 시절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아이를 떠올렸다. 멀리서만 보던, 행복의 상징인 것 같았던 축제의 한가운데에 지금 저가 있었다. 그 사실이 저미게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가볍게 발을 통통 구른 소년이 그대로 무희들의 무대에 뛰쳐올라갔다. 

 갑작스러운 손님의 습격을 그들은 웃으며 반겨줬다. 한 두번 있는 일도 아니었다. 축제의 흥에 취해 다 함께 노래하는 편이 즐거웠다. 무희들 사이에서 라테스란이 한쪽 발을 축으로 중심을 잡아 빙글 돌았다. 몇 번 목을 가다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 섞인 소년이 노래가 공기에 섞여들었다. 발자국 하나, 기척 하나 남기지 않고 사뿐사뿐 춤추며 소년이 기쁘게 노래했다.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수줍은 미소가 앳된 흔적이 남은 얼굴에 한가득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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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