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 이름은 선혈의 왈츠. 가니메데 세 송이에 인간의 살점과 스승님의 피를 넣어 만든 술. 정말 우연찮게 엘로힘이 손에 넣은 그 술의 재료를 보고 모두가 경악했다. 가장 놀란 것은 만들어 낸 엘로힘이겠지만, 라테스란도 귀와 꼬리가 모두 삐죽 서 버릴 만큼 놀랐다. 엘로힘을 탓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오르를 걱정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인간의 살점이라는 단어도 어마어마하게 신경 쓰였지만, 스승님의 피라는 말도 그만큼 신경쓰였다. 술은 와인병을 한 잔 가득 채울 정도. 기나메데 세 송이로 나오는 꽃즙이나 인간의 살점따위로는 나올 수 없는 양이었다. 라테스란은 오르의 몸이 걱정이었다.

 물론 스승님은 마법사에 뛰어난 소서리스. 라테스란의 걱정을 받을 필요도 없을만치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본디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걱정하는 일은 다른 법이었다. 라테스란은 막 잡아 온 생선들을 진지한 눈으로 응시했다. 연어가 마흔 세 마리, 꽁치가 세 마리. 뭘 만들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라테스란은 회칼을 쥐었다. 오르 님은 아무래도 연어회를 즐기셨던 것 같다는 기억이 언뜻 떠올랐다. 


 횟감을 다듬고 가시를 발라내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라테스란은 예쁜 접시에 가지런히 연어와 꽁치로 만든 회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그 주변에 이런저런 플레이팅을 했다. 찍어 먹을 (미라가 회에는 이게 최고라면서 맛을 열심히 가르쳐줬다.) 초고추장과 간장도 준비하고. 흠, 회만으로는 부족하려나. 밥이 없으니까...... 라테스란은 고민스럽게 미간을 좁혔다가 곧 연어로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고 짙은 손에서 작고 하얗고 분홍빛의 먹음직스러운 초밥이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초밥도 한줄로 줄세워서 접시에 놓은 뒤에야 라테스란은 만족했다. 

 

 완성된 접시들을 쟁반에 담고 라테스란은 주방 바깥으로 나왔다. 오르 님이 어디 계실지 잠시 생각하던 소년은 곧 가장 오르 님이 있을 것 같은 위치로 걸음을 옮겼다. 냄새로 판별해도 괜찮았고. 발걸음 소리 하나 없이 사뿐한 걸음으로 걷던 라테스란은 오르의 뒷모습을 보고 한걸음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조금의 이상 하나 없이 온전해보였지만, 소년의 귀는 여전히 축 쳐져있었다. 라테스란이 오르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저어, 오르 님......"


 오르가 눈을 깜박 떴다. 저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냐 묻는 스승을 보며 소년이 쟁반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 선혈의 왈츠 때문에요. 맛있는 것이라도 드시면 기분이 더 나아지실까 싶어서......"


 라테스란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 눈에 걱정과 염려, 기대가 뒤섞여 아롱거리고 있었다. 제 스승에게 쟁반에 담긴 요리들을 내미는 드워프의 귀가 바닥을 향해 좌우로 파닥이고 있었다. 



(1017)

'Fantasy > Lattel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일, 라테스란, 목표  (0) 2018.02.01
31일, 엘로힘, 호박파이  (0) 2018.01.31
31일, 미라, 탕수육  (0) 2018.01.31
30일, 디코, 머핀과 쿠키  (0) 2018.01.30
30일, 앙수즈, 대화  (0) 2018.01.30
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