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가 착하게 굴었으니 상을 주겠다고 했고, 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정찬이었다. 라테스란은 으리으리한 한 상을 보며 고민했다. 디저트 치고는 지나치게 양이 많았다. 전부 먹었다가는 저녁상을 못 먹을 것 같아서 언제 줄까 고민하다보니 생각보다 주는 시간이 늦어버렸다. 오후 간식시간에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거의 저녁 꼴이었다. 라테스란은 조금 곤란한 듯 머쓱하게 웃었다가 상을 번쩍 들었다. 섬세하고 신경써서 만든 사과 디저트들이 키 낮은 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있었다.
첫 번째로 바삭하게 구운 빵과 사과로 만든 잼. 사과와 설탕을 비율에 맞춘 뒤 잘 갈고 졸여 만들어낸 잼은 달콤했다. 건더기가 씹히지 않게 잘 갈려서 부드러웠다.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잘 구워져 온갖 고소한 빵 내음을 풍기는 빵들과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둘째로 사과를 갈아 만든 쥬스. 여기까지는 제일 간단한 방법들이었다. 순수한 사과를 이리저리 즙을 내어 만든 사과주스는 신선했다. 투명한 유리컵 안쪽에서 반짝거리는 액체를 얻기 위해 요리기구들을 이리저리 사용하며 고민했던 소년은 만족스러운 결과에 뿌듯해했다.
셋째로 애플파이.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사과를 잘게 썰어 버터와 함께 볶은 뒤 황설탕, 계핏가루, 레몬즙, 녹말가루, 럼을 사용해서 만든 사과필링을 꽉 채운 애플파이는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위에 살짝 올린 견과류들이 고소한 맛을 덧붙이고 있었다. 흔하게 종종 만들어주는 간식거리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공을 들였다. 홍차랑 같이 먹어도 우유랑 같이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서 라테스란은 함께 먹을 음료들도 잔뜩 챙긴 뒤였다.
넷째로 타르트. 만드는 과정이 파이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속에 필링을 가득 채우고 울타리처럼 네모난 장식을 얹어서 부풀린 파이와는 달리 타르트는 얇게 썬 사과를 위에 둥글게 얹어 꽃처럼 보였다. 파이는 도톰하고 타르트는 얄쌍했다. 둘 다 눈으로 먹기에 좋지만 라테스란의 시선에서는 사과 타르트 쪽이 더 모양새가 고왔다. 구웠을 때 예쁘장하게 보이려고 손이 많이 갔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타르트는 바삭하고 둥글게 구워진 사과가 구운 사과의 맛이 났다.
사과사탕은 축제에서 라테스란도 처음 먹어 본 음식이었다. 둥글고 자그마한 사과에 설탕을 졸이고 녹이고 굳혀서 단단하게 만든 것. 사실 지나치게 달아서 소년의 입에 딱 맞는 간식은 아니었지만 당도를 적당히 조절하니 그럭저럭 괜찮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몬테가 먹기 편하게 토끼모양으로 깎은 사과에 길고 얇은 꼬치를 연결해서 얇게 사탕을 입힌 사과사탕은 빛을 받을 때마다 코팅이 반짝거렸다.
다른 네 개의 디저트들은 라테스란도 처음 만들어보는 디저트들이었다. 축제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친해진 누님들에게 배우거나 근처 디저트를 파는 노점에서 이런저런 것을 묻다가 알게 된 방법이었다. 한 번 연습삼아 만들어서 먹을 때에는 달짝지근하고 맛있게 느껴졌는데 몬테의 입에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었다. 소년은 미약한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혹평을 받는다면 눈에 불을 켜고 새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고 맛있다고 해 준다면 신이 나겠지.
컴포트는 과일에 설탕을 넣고 졸여 만들지만, 잼과는 달리 푹 졸이는 것이 아니라 과일의 형태가 살아있는 간식이었다. 주로 팬케이크 위에 얹어 먹거나 하는 종류로 사용한다며 일러주신 말 그대로 소년은 팬케이크도 만들었다. 둥글게 만든 펜케이크를 몇 겹이나 층층히 쌓아올렸고 그 위에 사과 모양의 컴포트를 올렸다. 그냥 꿀을 바르는 것보다는 이게 더...... 라테스란은 새로이 배운 레시피가 마음에 들어 꼬리를 살랑였다.
그 다음은 그라탕. 사과 안을 모조리 파내고 그 안에 햄, 양파, 옥수수와 오이, 사과를 넣고 밥을 볶은 뒤 굴 소스와 소금, 후추를 추가하여 만든 볶음밥을 가득 넣었다. 다시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와 파슬리 가루를 살짝 뿌려서 오븐에 구운 그라탕에서는 숨막히게 짙은 사과 냄새가 났다.
사과무스케이크는 라테스란이 만들던 케이크 중에서 드물게 난이도가 높았다. 소년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레시피를 써 놓은 메모를 살펴야만 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만들어 둔 사과 컴포트에 새로 만든 사과 무스와 사과 젤리를 사용했다. 과일과 민트, 식용 꽃까지 장식하여 만들어낸 무스 케이크는 보라색과 노란색 팬지꽃잎으로 알록달록했다. 라테스란은 이 레시피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 좋아하지 않을 리 없었다. 몬테는 식물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풀을 머리에 꽂고 노바와 대화하는 걸 본 적 있었다. 영문 모르는 일이기는 했다만.) 먹을 수 있는 꽃들을 알려주면 더 좋지 않을까. 약초와 또 다른 느낌으로 좋은 지식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과 업사이드다운 케이크는 폭신한 파운드케이크와 유사한 맛이 났다. 사과와 건포도를 넣고 노릇노릇하게 구워 한 입 씹었을 때 깔끔하고 사과 씹히는 느낌이 있었다. 이름은 꽤 어려웠지만 만드는 법은 무스케이크에 비해 간단했다. 소년은 한 상 차린 사과 디저트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플레이팅하고 그에 맞춘 음료까지 제대로 준비해서 상에 차렸다. 이 선물을 받을 소년은 그것에 하나하나 크게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라테스란이 가진 나름의 프라이드 문제였다. 소년이 하얀 귀를 한 번 쫑긋거렸다. 다 만들어서 배달하는 과정에서도 향이 날아갈까 온기가 빠질까 신경써서 조심했으니까.
라테스란이 몬테를 불렀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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