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미쳐버린 오따꾸... 저를 견뎌주세요 저랑 놀아주신다는 건 그런 뜻입니다 (롸롸님 : 이분 뭐하시는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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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 11년, 봉산에서 공과가 깨어나 쿄우린이라 칭하다.
보백 18년, 각 사당에 황기가 올라 온국에서 승산자 오르다.
보백 19년, 쿄우린이 하주에서 주를 맞아 서약하니, 그 주 신적에 올라 고왕에 즉위하다.
"쿄우린!"
저를 부르는 여선의 목소리에, 작은 체구가 파드득 몸을 떨었다. 어깨에 겨우 닿는 짧은 갈기는 금을 녹여 실을 뽑은마냥 선연한 금빛이었고, 동그라여 차마 여선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시선은 고운 비단색. 이제 겨우 여선의 허리에나 닿을 정도로 자그마한 어린 기린을 보며 여선은 턱끝까지 차오르는 한숨을 애써 내리눌렀다. 여선의 짧은 부름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 절절매는 쿄우린이었으나, 앙다문 입술에는 단단한 고집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기야 귀하디 귀한 기린의 말은 어찌 보면 극히 정론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쿄우린이 어리다는 결정적인 문제만 제하고서.
"쿄우린. 아직 사당에 황기가 올라 승산자가 오른지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이 봉산에서 기다리시지요. 머지않아 쿄우린의 왕이 쿄우린을 모시러 올 것입니다. 이 봉산 아래가 얼마나 쿄우린에게 위험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여선이 몸을 숙여 쿄우린과 시선을 맞추고 조곤히 말했다. 다정하게 속삭이는 말의 온점 하나까지도 자신을 향한 애정임을 알기에, 쿄우린은 얌전히 눈만 껌벅였다. 기린은 인애의 생물. 하늘의 짐승. 피와 부정적인 감정은 연약하고 상냥한 기린에게는 지나친 독이었다. 사취조차 견디지 못하는 기린에게 왕이 없어 고통받은 땅은 죽음의 길과 거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명석한 기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쿄우린은 소매로 제 입가를 가리고는 시선을 땅으로 떨궜다.
"하지만 한쿄우...... 지금 공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는 한쿄우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조곤조곤 이어지는 목소리는 여렸다. 응시하는 시선은 순박한 만큼 강직했으나, 여선은 도리어 불안하기만 했다. 이 새하얀 기린이 마주할 세상이 얼마나 거칠지, 그리하여 기린이 얼마나 상처받을지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한 여선을 앞에 두고, 바람에라도 흩어질 마냥 가냘픈 목소리가 조근조근 정론을 담았다.
"옥좌에 왕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삼백만의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거늘 어찌 저 혼자 몸 편하자고 봉산에 몸을 뉘이겠습니까. 최대한 몸을 조심하며 봉산 근처의 나라만이라도 오가겠습니다. 혹여 그곳에 주상이 계시다면 그 역시도 하늘의 뜻이겠지요."
고사리같은 작은 손가락이 제 봇짐의 매듭을 고쳐쥐었다. 천으로 화사한 금발을 가린 기린은 누가 봐도 살짝 가출한, 그러나 너무도 곱게 자란 부잣집 따님처럼만 보여 여선은 이제 도저히 걱정을 안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절복시킨 사령이 한둘이 아니고, 기나긴 십이국의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히게 재능있는 영리한 기린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와 별개로 세상이 험하거늘. 허나 이리 통보라도 하고 떠나는 게 어디일까. 가지 말라 옷자락을 부여잡으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멈춰주겠지만, 야밤에 몰래 사령들과 함께 떠날 것이 눈에 선해 여선은 속으로 다시 한 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도무지 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한 여선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기린은 잠시 서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 아래 숨은 녹빛 눈동자는 막연한 운명을 직감하듯 별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누군가가 부르는 느낌이. 기린은 이어지는 문장을 삼켰다. 기대로 가득 찬 작은 체구가 곧장 몸을 돌렸다. 목표는 봉산 아래. 자신이 찾아내고 왕이 다스릴 땅이었다.
* * *
이 쪽이다. 이 쪽이야. 여기 있어. 쿄우린은 막연한 확신 아래 끊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갈수록 조급해지는 발걸음 사이로 군데군데 감정이 묻어났다. 기대, 기대, 들뜸과 어쩔 수 없는 걱정, 불안함. 그림자 아래에서 저가 절복시킨 사령들이 간언했다. 조심하십시오, 쿄우린. 인간들의 감정이 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평소라면 다정하게 사령들의 말에 대답해주었을 쿄우린이었으나, 본능에 굴복한 하늘의 짐승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기린을 이끌고 있는 것은 빛 끝에 존재할 존귀한 왕일지어니 왕에게 달려가는 기린의 발치에는 돌멩이 하나조차 그 걸음을 방해하지 않았다.
기린이 미소지었다. 찾았다. 찬란한 자. 하늘에게 선택받은 자. 웃음 한 줌에 기린을 행복하게 만들고 눈물 한 자락에 기린을 우울하게 만들 유일무이한 존재.
"......주상!"
작고 하얀 손이 거친 옷자락을 답삭 움켜쥐었다. 손은 작으나 그 안에 들어간 간절함은 무시못할 정도로 강인한지라, 붙잡힌 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저를 잡은 자를 응시했다. 감히 상상도 못할 무엄한 단어를 들은 것도 같았다만, 목소리의 주인이 지나치게 앳된지라 그 무거움은 어느 새 깃털처럼 가녀려진 뒤였다. 보이는 것은 제 허리에나 겨우 닿을 정도로 조그마한 꼬마아이 하나 뿐이었다.
"길 잃은...... 꼬마?"
의아한 듯 묻는 물음은 퍽 다정했다. 거칠어진 삶에 날카로워진 백성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어찌 상냥한 물음인지. 부모님이라도 잃어버렸니, 그리 묻는 물음에 기린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당신을 찾으러 왔어요. 당신을 모시러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리고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곁에 있음을 허락받기 위해 봉산에서 왔어요. 이 모든 문장이 동시에 떠올라서 도리어 목구멍은 꽉 막혀버렸다. 처음 마주하는 왕기에 날 세워져 예리한 본능에 눈물 흐를 듯한 기쁨에 감격하여 기린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 있니? 음...... 고구마라도 먹으면서 기다릴래?"
청년은 잠시 몸을 물리더니, 소쿠리를 뒤져 그 안에 있는 작고 미지근한 고구마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기린은 멀뚱히 고구마를 내려다보았다가, 제 왕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구마를 내려다보았다. 아이 손에 쥐여질 정도의, 작지만 조금 따뜻하고. 그리고, 그리고...... 왕이 낯선 이에게 건낸 다정을, 보았다. 눈물이 터져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고개를 크게 젖힌 아이가 와앙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춘 천이 팔랑 바닥으로 떨어지고 짧은 금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아아앙. 무어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아이의 눈부신 금발에 주변의 시선과 경악성이 소리없이 집중되었다. 이 세상에 꼭 열 두 명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색. 왕을 선택하는 기린만의. 주변의 백성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을 선택하는 기린과 하늘에게 선택받은 왕은 둘만의 세상에서 당황스러움에 빠져 있었다.
"우, 울지 마. 미안해? 왜 울어. 고구마 싫어해?"
"흐, 히끅. 주, 주상. 흑, 흡, 흐아앙. 주상. 주상."
"주상? 그, 내 이름은 노아인데."
"주사앙."
"으으응. 그 주상이 임금님 부르는 건 아니지?"
"주상, 주상."
금빛 머리카락의 기린이 부르는 주상이라는 호칭에 주변인들은 이미 심상치않음을 깨닫고 머리를 조아려 숙이고 있건만, 둘만큼은 여전히 만담이라도 하듯 다른 세상이었다. 기린이 단단히 왕의 옷깃을 쥐었다. 눈물에 젖어 훌쩍훌쩍 콧물을 삼키면서도 그 눈만큼은 별보다 찬란히 제 왕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니.
"주상. 히끅. 저는 쿄우린입니다."
"으응...... 기린, 님이시죠."
황금을 눈에 담는 순간 누군들 못 눈치챘을까. 곤란한 표정으로 웃는 왕을 올려다보며 기린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제게 존대하지 마세요. 저는 주상 앞에 무릎꿇고 주상께 충성의 서약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 사람 잘못 보신 게 아닐까요......"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로요. 절대. 세 번이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어린 기린을 앞에 두고 노아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를 어쩌나.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제 앞에는 손이라도 뿌리쳤다가는 하늘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저를 올려다보는 기린이 있었으니.
왕이라니, 그럴 리 없는데...... 정말로 이를 어째. 입 밖으로 내기만 해도 또 기린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속으로만 곤란해하며 노아는 우선 제 소매를 조금 털어냈다. 흙 묻은 소매를 조금이라도 말끔하게 만들어 기린의 눈물 젖은 뺨을 닦아주며, 그는 어찌 할까를 고민했다.
보백 19년. 신왕 등극 한 달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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