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왓... 진짜 뜨거워요... 첸의 옆에 앉은 소녀는 손을 온천 표면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허연 김이 펄펄 올라오는 물은 질 좋은 상급 온천수였지만, 그만큼 평소 목욕물보다도 훨씬 뜨거웠다. 애초에 하리오티는 찬 물을 훨씬 선호해서, 적당히 미지근한 물 정도만 쓰고는 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사방팔방에서 삽으로 온천수를 파느라 그럭저럭 단련은 됬다고 생각했는데, 온천에 직접 들어가는 건 느낌이 또 확연히 달랐다. 소녀는 뜨끈뜨끈한 온천물이 발을 데우는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볍게 온천에 발을 찰박거리던 하리오티는 몸에 힘을 빼고 조금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막 터진 온천답게 주변의 습기는 어마어마했고, 열기와 습기까지 더해져 산채로 삶은 드라이어드가 되는 기분이었지만 어쩐지 피로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원래는 온천을 지금 쓰면 안되는 것 같지만...... 몰라요, 괜찮겠지...... 오늘 정말 열심히 노동했던 소녀는 배 째라 정신을 예리하게 세우며 얌전히 온천을 즐겼다. 몽몽 역시도 상태는 비슷했다. 어쩐지 가지가 쳐지고 꽃이 늘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알 바랴. 시들면 다시 피우죠 뭐...... 오늘 하루 종일 땅을 팠던 소녀는 뻔뻔해져 있었다. 몽몽 역시도 녹은 찹쌀떡처럼 소녀의 머리 위에 쭈욱 늘어져 있었다. 삡삡뺩 삐삐쨔쀼. 그래그래, 쉬는 게 제일 좋아... 재잘재잘 울어대는 몽몽의 깃털을 살살 쓰다듬어주던 하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 맞아. 첸, 이거 같이 먹을래요?"

"?"

"아까 신전기사님께 받았는데......"



 쨘. 소녀가 꺼낸 건 온천 달걀이었다. 한창 땅을 파고 있던 하리를 보고 있던 한 기사가 소녀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세시 님의 만쥬를 얻고 싶어서 계속 헤매느라 이것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이제 얻을 것도 다 얻고 나니 소녀의 마음은 몹시도, 아주, 정말 너그러워져있었기에 이제는 달걀이 충분히 눈에 들어왔다. 꽤 두둑하게 들어있는 온천달걀을 주섬주섬 꺼내며 하리가 절반을 첸에게 넘겨줬다. 



"오, 고마워."

"천만에요!"

"어디서 났어, 이건?"

"지나가는 기사님이 주셨어요."



 레니스 교수님께 귀뜸이라도 들었던 걸까요? 글쎄. 교수님이 막내라고 하지 않았나. 아, 맞다. 음...... 그럼 막내의 제자들을 고생시키는게... 미안해서? 그건 좀 설득력 있네. 달걀껍질을 까며 두 사람은 잠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몽몽은 내려와서 먹어. 당연히 줄 거지? 하는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제 머리 위의 새에게 말하자, 몽몽은 얌전히 내려와 하리의 무릎 위에 챡 하고 자리잡았다. 소녀는 달걀을 조금 부스러트려 노른자를 조금 나눠주었다. 근데 몽몽이 달걀 먹어도 괜찮아? 잠시 멈칫하기는 했지만, 기분 좋게 념념 잘도 먹는 몽몽을 보며 괜찮다보다 넘기는 일도 있었다. 어인과 드라이어드와 새 한 마리가 달걀을 입에 넣기 시작하자 주변은 잠시 조용해졌다. 소녀의 표정은 점점 평화로워졌다. 물은 따뜻하고, 몽몽도 있고, 입에 간식까지 들어가니 이쯤되면 마냥 행복한 수준이었다. 


 소녀의 변화는 꽤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제 몫의 달걀을 깨끗하게 먹어치운 첸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온천 특유의 냄새밖에 나지 않던 주변에 슬금슬금 다른 향이 섞이고 있었다. 



"꽃 향기."

"헉."



 흰자를 오물오물 먹던 소녀가 순간 덜그럭 멈췄다. 또 너무 기분 좋았던 모양이었다. 설마 가지까지 튀어나오진 않았겠죠? 더듬더듬 손을 뻗어 가지를 만져본 하리오티는 살짝 올록볼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끈한 가지에 안심했다. 늘 조심하려 노력했는데 어렸을때는 조절이고 뭐고 도리어 펑펑 풍기고 다녔던 게 향이었기에 조절이 영 힘들었다. 급히 손을 휘저어 향을 날리려는 하리를 보며 몽몽이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제 몫의 노른자를 다 먹어치운 몽몽은 핍핍 울며 다시 하리의 머리 위에 챡 앉았다. 



"으으... 미안해요, 첸. 일하다 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만."

"아니, 별로."



 영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절절매는 하리오티를 보며 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최소한 하리오티가 겉으로 보기에는) 첸을 보며 소녀는 매우 안심했다. 좋은 사람! 소녀 안에서 소년의 이미지가 조금 더 좋아지며, 소녀가 종알종알 옆에서 다른 화제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수영 말이에요. 온천에서는 역시 하기 힘들겠죠? 여기서 숨을 참는 연습을 했다가는 완전히 얼굴이 익어버릴거에요...... 




공미포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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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