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2019. 2. 9. 23:57 from Fantasy/Harioti Lop







 분명히...... 그녀는 제 어린 동생의 손을 이끌고 문을 열었다. 하리, 하람. 좋은 아침. 다정하게 인사해주는 아버지의 인삿말을 받으며 그녀는 하람을 번쩍 들어올려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빠. 소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빈 자리로 향했다. 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소녀는 속으로 인사했다. 빈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흑마법사의 선전포고 이후 곧장 복직한 어머니와 원래부터 현직이던 두 언니오빠는 모두 신전기사였다. 본래 살던 마을은 그들이 동쪽의 대신전 바로 근처 마을로 이사한 직후 흑마법사에게 점령되었고, 그곳에서 산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대신전의 기사단과 흑마법사는 3일간의 전면전을 치뤘다. 하리오티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연약한 아버지와 이웃들을 보호하며,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그저 기도하는 것밖에는. 누스 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기다림 끝에 날아온 건 세 장의 전사 통지서였다. 


 그 때보다 더 비참했던 때도 없지...... 그녀는 턱을 괴고 아버지가 동생에게 이것저것 먹이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따뜻한것이 날씨도 좋은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하리오티도 저 곁에 앉아서 호들갑을 떨며 하람을 귀여워해주었겠지만, 날씨에 비해 묘하게 생각이 축축 가라앉았다. 하람에게는 악몽 아니라고 했지만, 악몽에 가까운 건가? 루케루카 시절의 꿈이면 좋긴 하지만...... 그녀는 머리카락을 불어 쓸어넘기고는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을 잃은 소녀가 뭘 할 수 있을까. 한참을 힘겨워하던 가족은 서로를 의지하여 집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떠난 가족들이 남긴 흔적을 보는 게 힘들었다.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서쪽을 지나 북쪽으로. 다시 돌아 동쪽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이었다. 아버지와 둘이서 시작한 여행이었으나,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동생이라는 새 가족까지 생겼다.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괴로워하며...... 소녀는 성인이 되었고 조금 더 자랐다. 그렇기에 꿈에서 던져졌던 과거의 질문에 똑같이 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건 두렵지 않아.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지는 것도 두렵지 않아. 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모든 긍지를 짊어졌겠지만, 분명 집에 있을 나랑 아빠를 사랑해서 지키기 위해 싸워주었어.


"하람."

"응, 누나!"


 팔을 뻗자 아이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그녀의 신호를 보자마자 그대로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막내를 벗어난 그녀는 품에 안긴 하람을 한참을 더 보듬었다. 잃었어도 그 때의 행복이 나를 지탱해주고, 나를 또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줘...... 소녀가 동생에게 뺨을 부볐다. 꺄르륵 웃는 하람의 웃음소리에 하리오티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러니 새롭게 소중한 것을 만드는 것도 무섭지 않아. 어인 동생의 뺨에 입을 맞추며 하리오티가 사랑스럽게 웃었다. 다음엔 내가 사랑해주고, 또 내가 지킬 차례니까.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며, 하리오티가 아버지에게 스푼을 건내받아 하람의 입에 음식을 넘겨주었다. 잘 먹네, 우리 하람. 아이를 귀여워하는 애정 넘치는 목소리가 소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꼭 어린 시절 보았던 언니오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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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