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에게 어떻게 남고 싶어요?
영리한 사촌이 남긴 말은 강산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말이었다. 어떻게 남고 싶냐니? 그게 무슨 뜻일까. 애초에 어떻게 남고 싶은지 본인이 정할 수 있는 문제이기라도 한 건가? 유채가 저를 남이라 생각하면 남이고 가족이라 생각하면 가족이고 스승이라 생각하면 스승이고 후원자라 여기면 후원자겠지. 그걸 정하는 건 유채이지 강산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난새는 그런 말을 했을까? 강산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난새는 저보다 훨씬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 질문을 던진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강산은 바보라서 잘 모르겠지만.
내 의사가 중요한가? 내 표현에 의미가 있는가? 해봤자 크게 변하는 일도 없는데 굳이? 강산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삼켰다. 본인은 잘 모르겠고, 사실 유채에게 어떻게 남고 싶은지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애정이 일방통행이어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나 혼자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데에 타인의 감정은 상관 없지 않은가. 그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인간이었으나, 우선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해야 한다는 다른 종류의 성실함으로 답을 찾았다. 자기 자신에게보다는 좀 더 의미가 있는 소녀의 답을.
"유채야."
"네, 아저씨!"
막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소녀에게 손짓한 강산이 다가오는 소녀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였다. 무뚝뚝하게 굳은 얼굴과 달리 이런 배려가 묻어나는 행동을 소녀는 좋아했다. 이 다정함이 미련이 되어 소녀를 자꾸 고민하게 만들었다. 무쇠 같은 아저씨가 과연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기대와 걱정을 담아 소녀는 동그란 눈을 사랑스럽게 깜박였다. 그리고 그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강산은 과연 대단한 말을 했다.
"유채는 내가 어땠으면 좋겠어?"
"네?"
"아빠나 오빠면 좋겠어? 아니면 그냥 후원자나 스승님 정도가 편해?"
갑작스럽게 던져진 예민한 질문에 소녀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바라보던 바라철록은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주인아. 그걸 그렇게 직구로 물어보면..... 아니, 아니다. 주인의 최선이다. 힘냈다. 바라철록은 포기하고 조용히 유채를 응원했다. 좋은 답을 돌려줄 수 있도록.
공미포 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