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Otohara Ruka

축제 전야

별빛_ 2018. 10. 25. 02:23




 루카는 제 몸의 절반보다 더 큰 곰인형과, 그와 비슷한 크기의 토끼 인형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깜박, 그리고 또 깜박. 내일부터는 축제고, 축제가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어쩐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얼떨떨하다고 해야 할까. 갑작스럽게 쏟아진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쪽이 정확했다. 루카는 어른스럽고 똑똑했으나 아직 8살 먹은 한참 어린 꼬마였고, 꼬마는 이런 일이 힘겨웠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거. 루카는 고개를 돌려 멀찍하게 떨어져서 제 눈치를 보는 크랩몬을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는 모양새가 귀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크랩몬, 뭐 해? 이리 와."

"......가까이 가도 괜찮아? 루카는 화 안 났어?"

"내가 크랩몬한테 화를 왜 내?"


 잘못한 것도 없고, 화나게 될 만한 것도 없고. 마린엔젤몬조차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해서 용서했으니 루카는 정말로 화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소년의 말간 눈동자를 확인한 크랩몬은 기꺼이 루카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강철의 껍질이었지만, 루카는 익숙하다는 듯 다정하게 집게에 뺨을 댔다. 크랩몬은 제 파트너의 그런 친근한 행동에 마냥 행복한 듯 방긋방긋 웃음을 그렸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분위기는 확실히 어수선했다. 루카도 심정이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돌아간다는 기쁨, 묘한 허탈감, 디지털 월드와 이별한다는 아쉬움, 크랩몬과 헤어진다는 슬픔. 

 헤어진다는...... 루카는 발뒤꿈치로 바닥을 살살 긁었다. 어린 아이의 몸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지만, 아이는 다정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을 수 있었다. 한 달 겨우 채울까 말까 한 짧은 여행이었지만, 본디 아이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법. 어린 루카는 영리했고, 그만큼 상냥하게 자라 있었으니까. 


"루카, 슬퍼?"
"응? 그럼, 슬프지. 크랩몬이랑 다시 못 만나는 것도, 되게 슬퍼."

"나도. 루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응. 나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치만 크랩몬이 죽는 건 더 더 더 싫어. 그러니까 여기서 안녕이야. 루카는 딱 잘라 말했다. 크랩몬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지만 루카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루카는 인형을 내려놓았다. 대신 풀죽은 제 파트너의 집게를 품에 안은 아이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는 영리했고, 그 영리함이란 지식의 문장의 주인 중 하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루카는 다 알아. 지금 헤어지면 우리는 아주아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응......"
"시간대가 다르다며? 여기서 한 달이나 있었는데 우리 세계에서 얼마 안 걸렸다는 건, 우리 세계에서 한 달이면 여기서는 몇 년, 몇 십 년, 어쩌면 그 이상일 정도로 오래 흘러가버린다는 거지?"
"아마도......"

 아이가 샐쭉 웃었다. 크랩몬은 미안한 듯 시선을 피했다. 루카는 그런 파트너를 탓하지 않고, 그 집게에 입을 맞췄다. 상냥한 움직임이었다. 괜찮아, 크랩몬. 루카는 위로에 가깝게 속삭였다. 


"루카는 머리가 좋아."

"응."

"할 수 있는 것도 잔뜩 있구."

"응, 맞아."

"아직 어린 애니까."

"뭐든 할 수 있지."

"응. 그러니까 루카는 커서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수 있게 할 거야."


 컴퓨터도, 과학도, 디지털 월드도, 디지몬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공부 열심히 해서 루카는 크랩몬이랑 다시 만날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닌걸. 루카랑 크랩몬은 파트너니까."

"응."

"이 디지털 월드에 있는 쌍둥이인걸. 크랩몬은, 루카를 오래 기다렸다고 했지?"

"응, 그랬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다시 한 번 크랩몬을 만나러 올 테니까."


 응, 기다릴게. 얼마든지, 아주아주 오래라도 좋으니까, 기다릴게 루카. 응, 기다려줘. 루카 정말로 힘내서 꼭 다시 만나러 올 테니까......

 아이와 디지몬이 서로에게 기댔다. 내일은 축제니까, 재미있게 놀자.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응, 많이. 잔뜩 놀자. 속삭이는 답 역시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