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몬의 마을
"어울려?"
"응!"
"잘 어울려?"
"응!! 굉장히 잘 어울려, 루카!"
"정말?"
"응! 엄청!"
크랩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제 뒷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토라가 묶어 준 머리며 핀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거울도 없었다. 물론 루카도 거울이라고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결국 작품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입을 통한 방법 뿐이었다. 루카는 몇 번이고 크랩몬에게 되물었고, 크랩몬은 불편한 기색도 하나 없이 웃으며 루카의 말에 하나하나 답했다. 루카 멋져! 크랩몬의 순진무구한 평가에 루카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희고 말랑한 뺨에 부드러운 혈색이 돌았다. 조금 긴 머리카락을 타인이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의 두 누나들이) 빗어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슈슈로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핀으로 장식해본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루카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예쁘장하니 곱게 생긴 루카가 쉬이 여자아이로 오해받았으니까. 한 쪽 옆 머리를 땋아내리는 것도 루카가 제멋대로 마음에 들어하여 간단하게 장식을 넣은 정도였다. 소년은 제 외형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못난 것보다는 예쁜 게 더 좋았다.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토라 형, 고마워. 루카는 제 등 뒤에 앉아 머리를 장식해 준 소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토라는 저가 만들어낸 작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응, 귀여워! 머리를 만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어! 방긋 웃어주며 말하는 하토라를 보며 루카는 다시 한 번 묶인 머리를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매만졌다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매일매일 힘든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마음이 풀어졌다. 아직 어린 소년은 말랑말랑한 얼굴로 크랩몬의 날카롭지 않은 쪽 집게를 꼬옥 끌어안았다.
하루의 강행군. 하얀몬의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모양을 바꾸지 않은 건 소년의 호의 표시였다. 추위를 버티기 위해 별 수 없이 모자를 꾸욱 눌러쓸때까지도 머리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려 애썼다. 결국 모자를 벗었을 때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잔뜩 울상이 되어 풀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빗도 없지만 손가락으로라도 머리를 빗어내린 뒤 오른쪽 머리카락을 땋아내려 깔끔하게 묶은 루카는 품에 한가득 하얀몬들을 끌어안았다. 품에 한가득이라고 해봐야 아직 작은 루카의 품에는 두세마리 정도가 겨우 들어차는 게 고작이었다. 루카는 품에 하얀몬을 안고, 크랩몬은 제 머리 위에 먹을 것을 담은 그릇을 요령 좋게 올려놓았다. 루카가 도도도 다가간 사람은 당연하게도 하토라였다.
하토라 형은 귀여운 걸 좋아하고, 하얀몬은 귀엽고, 또 그래서 하토라 형은 하얀몬을 엄청 좋아했으니까. 루카의 사고방식은 단순했지만 꽤 논리적이었다. 그러면 하얀몬이 많을수록 좋아하겠지? 그러한 이유로 하얀몬들을 끌어안고 하토라의 앞까지 다가온 루카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토라를 올려다보았다. 하얀몬이 잔뜩 있으니까 좋아해주겠지? 마냥 그런 표정이었다. 우선 품에 안은 하얀몬들을 내려놓은 루카는 하토라에게 머리핀과 슈슈를 반납했다. 하토라 형, 빌려줘서 고마웠어. 다음에도 루카 머리 묶어줄 수 있어? 소년이 조근조근 말을 붙였다.
땅에 내려 준 하얀몬 한 마리가 폴짝 뛰어 루카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또 한 마리가 폴짝 뛰어 품에 파고드는 것을 받아 안으며 루카가 크랩몬을 돌아보았다. 머리 위에 그릇을 얹은 크랩몬은 굉장히 질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루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랩몬, 많이 착해. 루카가 크랩몬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준 뒤 그릇을 들고 하토라를 돌아보았다.
"이거 같이 먹자, 하토라 형."
하얀몬들이 준 쌀밥에 물을 넣고 켄터스몬에게 받았던 마른 육포를 잘게 잘라 넣은 묽은 죽이었지만 추운 날 따뜻한 음식이었기에 그럭저럭 넘어갈 정도의 맛은 되었다. 하토라의 몫을 그에게 건내주며 루카가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하얀몬들도 한 입 줄까? 주변에 어느 새 옹기종기 모인 하얀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며 조근조근 말을 붙이던 루카가 하토라를 올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마냥 호의 가득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