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부
파에노아는 발길 닿는 대로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부스에서 파는 먹거리는 전부 하나씩 사먹어보고 있었고 (물론, 다 먹은 것은 손에 꼽았다.) 체험도 온갖 것을 해 보고 있었다. (금방 질리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구분없이 돌아다니던 파에노아가 곧 멈춘 곳은 고등부 연구 발표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헤에. 가벼이 눈을 깜박인 그는 곧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갖 마법 연구들이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샘플 전시물.
그러고보면 이번 진급시험이 끝난 뒤엔 고등부네요~. 파에노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고등부라고 해봐야 지금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다 싶으면서도 결정적인 점이 달라져 있을 게 뻔했다. 가문의 율법으로 제한되는 시기는 이미 끝났지만 전통은 끈질기게 남아 파에노아의 현재를 붙잡고 있었다. 그 모든 것에서 겨우 발을 뺄 수 있는 시기가 고등부였다. 늘 화사하게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가 묘하게 어두워졌다.
고등부라...... 하얀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파에노아는 지금의 클래스메이트들이 마음에 들었고, 지금의 적당히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친분관계도 싫지 않았다. 물론 내년에 이 관계가 얼마나 뒤바뀔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운이 좋다면 크게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파에노아는 손가락으로 제 옆머리를 살살 꼬았다. 고등부에서는 그도 연구를 시작해야만 했다.
플라네타 가문의 특기 마법은 교란, 전투. 파에노아의 특기마법은 대지 마법이었다. 다른 마법들을 아무리 노력해보았자 대지 마법의 재능과 실력을 따라가기에는 요원해보였다. (파에노아 스스로도 대지 마법만큼 다른 마법들을 열심히 할 생각이 없었고.) 그렇다면 대지 마법을 중심으로 봐야 할 텐데...... 교란은 빛, 전투는 불. 그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나는 분명......
잠시 생각하던 파에노아는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파란 머리카락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복잡한 생각은 너무 많이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축제이니 더더욱,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즐기는 게 훨씬 이익이었다. 머리 싸매는 생각은 다른 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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