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새벽에 썰푼것
전장이었다. 네 명의 마기는 나란히 서서 새까맣게 물든 적들을 물끄머리 응시했다. 그들은 개미때처럼 빽빽했고, 오염된 기름처럼 징그러웠다. 멀찍이서도 악취가 풍겼으며 어렴풋하게 비명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라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허나 군집이 되어 조금씩 접근하는 그들을 보며 위기감을 갖는 마법사는 하나도 없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뜨고 있었다. 노바는 안경을 깨끗하게 닦으며 혀를 끌끌 찼다.
"많기는 진짜 많네. 야근 확정이야, 확정."
"아니다, 형!! 이제야 해가 뜨고 있지 않은가!!"
에센티아가 항변했다. 몬스터들의 군집을 보고 있던 몬테가 문득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마치 웃는 마냥 반짝거리는 건 분명 디안시였다. 몬테의 입가에 느긋한 곡선이 그려졌다.
"디안시도 있는데. 분명 야근이야."
"자, 자. 모두들......"
밤이 되기 전에 다 끝내버리면 야근도 없겠다. 그치? 라테스란이 느긋하게 웃었다. 세 명의 마기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태양이 떴고 신의 전령이 그들의 곁에 있는 이상 그들은 지상 최강의 전사. 두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장 먼저 분위기가 돌변한 것은 에센티아와 몬테, 두 사람이었다. 본디 황금색이었던 눈에 기묘한 광채가 깃들었다. 잠깐의 정적, 눈 한 번 깜박일 찰나의 순간 몸을 긴장시키고 바람보다 빠르게 뛰쳐나간 두 드래곤은 각자 몬스터의 머리를 하나씩 부여잡고 바닥에 쳐박았다. 대지가 쩍 갈라졌다.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단박에 절명한 몬스터를 뒤로하고 두 마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각자 하나씩 폭풍의 핵이 되어 몬스터들을 휩쓰는 모습이 멀찍이서 확실하게도 보였다.
안경에 피 튀는 거 별로인데. 노바는 그 모습을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피에 흙먼지가 섞여 자욱하게 전장을 가리는 모양새를 보며 그는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가, 라테스란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럼 라테라테, 기도 적당히 하고 와."
"금방 갈게."
산책 약속이라도 하는 양 드워프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고 노바가 몸을 돌렸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새파란 청안은 화려한 금빛으로 반짝였다. 검은 이너 차림의 드래곤은 그대로 가볍게 뛰어올라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그대로 몬스터 한 마리를 찍어내렸다. 끼이이이──! 높은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몬스터의 피가 잔뜩 튄 얼굴을 불쾌하다는 듯 닦아낸 노바가 온통 얼룩진 안경을 벗었다. 노바는 다시 쓰기 곤란할 정도로 얼룩진 그것을 그대로 짓밟아 박살냈다. 황금빛 눈동자가 곧장 다음 적을 쏘아보았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선봉장들의 참전 직후 다음 마법사들도 준비에 나섰다. 미라가 자신이 만들어낸 소총을 크게 빙글 돌리고 제대로 적에게 조준했다. 행동에 패턴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싸우는 마기들을 제대로 서포트하려면 그에 걸맞는 집중력이 필요했다. 짙은 고동색 눈동자가 참잠하게 가라앉았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더. 에센티아─! 미라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오는 즉시 에센티아가 반 걸음 멈춰섰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오라클 미라의 마탄총에서 쏘아진 총알이 그대로 네 마리 몬스터의 머리를 박살냈다. 피를 뒤집어쓴 에센티아가 미라가 있는 방향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다음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숨을 길게 뱉은 미라가 총을 잡지 않은 쪽 손으로 깃펜을 꺼내들었다. 허공에 펜을 갈기는 손놀림은 노련했다.
가장 처음 마기, 그와 거의 동시에 워록. 오라클과 위치와 위저드가 서포트를 시작하고, 매지션과 소서러와 소서리스가 가장 후방에서 지원을 시작했다. 이사가 만들어낸 빛의 화살이 몬스터로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그 대지에 서 있던 모든 오염된 생명체를 정화하여 소멸시키는 모양새까지 확인한 뒤 라테스란이 두 손을 끌어모았다. 마기들은 강인한 전사였기에 그만큼 전투에 깊이 빠졌고, 라테스란은 제 이성을 마지막까지 잘 붙잡고 있을 수 있도록 전투상황을 상세히 확인한 뒤 참전하는 습관이 있었다.
"오늘도 승리를 바치겠나이다."
짧은 기도는 참전의 신호였다. 또한 제대로 된 조절을 위해 만들어 둔 스위치를 켜는 말이기도 했다.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득였다. 늘 부드럽고 온화하던 얼굴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미소였다. 송곳니가 번뜩이고 귀가 바짝 섰다. 다리에 힘을 주고 그대로 튀어나가 몬스터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대로 복부를 후려갈긴 마기가 그대로 절명한 몬스터를 방패처럼 후려갈겨 다른 한 마리를 쓰러트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청년이 그대로 다음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네 명의 마기가 전부 전장에 참여한 것을 확인한 빛의 정령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빛줄기가 한결 강해졌다. 신에게 사랑받는 지상 최강의 전사들이 울부짖었다. 거대한 그로울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