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Lattelan

20일, 앙수즈, 각오

별빛_ 2018. 2. 20. 23:09




"......실망시키면 각오해야 할 거에요?"


 뺨을 기대며 슬쩍 웃어버리는 앙수즈의 말에 라테스란이 작게 어깨를 움츠렸다. 앙수즈에게 뻗었던 손을 거둬 제 입가를 살짝 가렸다. 진짜로 겁을 먹었다기보다는, 능청을 부리며 모르는 척하는 쪽에 가까웠다. 봄볕처럼 다정하던 얼굴에 살짝 고민하는 기색이 어렸다. 하얀 귀가 허공에 가볍게 까딱거리고, 황금빛 뿔에 장식한 꽃들이 이리저리 찰랑거렸다. 라테스란의 눈이 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가 대각선을 그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으음. 라테스란은 최근 자신의 행동범위를 곰곰이 떠올렸다. 위험천만한 짓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재앙의 꽃줄기에 혼자 덤빈다거나. 하지만 모두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오염도도 나름 조심했고. 저주는 안 걸렸고...... 일상생활도 그럭저럭 영위했고. 앙수즈의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던 청년은 곧 다시 시선을 맞추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심할게."


 앙수즈를 실망시켜서 어떤 후환이 돌아올지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껄끄럼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늘 웃고 있어 주었으면 했다. 세피로트의 아이들은 모두 그랬다. 재앙의 꽃이 피어난 뒤로 다들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더더욱. 한 번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두 번 잃을까 겁을 먹었다. 라테스란도 그랬다. 부모님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세 번은 싫었다. 청년은 내심 한 번 더 각오를 다졌다. 오래 살기로 여러 번 약속했으니 정말로 그래야 했다.

 그의 여동생인 에센티아는 천년일족의 드래곤. 라테스란은 고작 그 반 토막을 사는 드워프지만 인간인 앙수즈보다는 훨씬 오래 살겠지. 이번 일이 끝나면, 그는 또 자유롭게 흘러다니다가 늘 그렇듯 가끔 제 마음 내킬때만 종종 찾아와주겠지만, 청년은 이제까지처럼 그에 만족하고 있었다. 잠시 여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라테스란은 있어야 하는 곳에서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렇기에 꽃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쳤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테스란은 자신의 위치에서 늘 제 일을 하다가, 그가 찾아왔을 때 다녀왔느냐고 말해줄 테니까. 혹시 오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그가 또 다른, 맘 편히 안주할 장소를 찾았다면 그 역시도 분명 좋은 일일 터이니. 


 하얀 귀가 다시 하늘을 향해 까딱였다. 어쩐지 조금 유쾌한 기분이 된 청년은 조금 웃어버리며 그대로 한 손을 앙수즈의 머리 위에 올리고 잔뜩 그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뭐에요?! 상대에게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라테스란은 그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웃었다. 마냥 즐거운 미소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상이 무뚝뚝하고 날카로웠지만, 웃을 때만은 놀라우리만치 인상이 순해졌다. 눈꼬리가 잔뜩 휘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서 귀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짙은 피부 위에 생기 있는 혈색이 퍼졌다. 머리가 엉망이 된 앙수즈를 한 번 응시한 청년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세피로트에 꽃이 피겠네. 그러고 보니 파란 꽃에 관해 얘기했었지? 내 문 근처에도 피워줄 수 있는지 용담이나 블루벨을 담당한 친구들한테 물어볼게."


 문 앞에서 씨앗을 피워야 하는데, 네 몫의 문은 다 만들었어? 청년이 물었다. 









(* 오너님 멘답... 멘답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