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이사, 가족
울고 있는 소녀를 앞에 두고 라테스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년은 제대로 된 결과를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소년은 어린 벗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고, 이미 친구와 싸운 이사를 너무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녀는 지금 꽤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고, 라테스란은 괜한 말로 그 상처를 후벼파고 싶지 않았다. 절대 용납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라테스란의 귀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쳐졌다.
"어떻게 그래요. 제가 어떻게 그래요. 제가 어떻게 그렇게 감히."
이사가 소리치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사무치게 아팠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붙잡으라는 말이 소녀에게는 그렇게나 고통이던가? 소년은 이사의 반응이 화가 난다기 보다는 안타까웠다. 빌려 준 손수건이 온통 젖을 정도로 소녀는 울고 있었다. 하얀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었다.
"잡아봤자 잡히지도 않을 걸 제가 무슨 수로 잡아요."
그 목소리는 어쩐지 제 경험을 일부 소리치는 것 같기도 했다. 잡아보았으나 잡히지 않았던 과거. 한 번 손을 뻗었다가 뿌리쳐지고 기운을 잃어버린 손. 다시 손을 내미는 게 두려워서 잔뜩 몸을 웅크린 어린아이.
"다 떠나갈 거에요. 원래 그랬어요. 처음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허어엉.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섧게 우는 이사의 모습을 라테스란은 착잡하게 응시했다. 무슨 말을 해 줘야할지, 이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전혀 몰랐다. 다만 떠오르는 모습은 있었다. 소년은 손을 뻗어 이사의 머리 위에 얹었다. 천천히 쓸어내리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사람을 달래는 법 따위 잘 몰랐지만, 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면 고작 이 정도가 아닐까. 라테스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사람들은 정말 예상치 못하게 떠나버려요."
오르 님께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몸을 얻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소년은 거동이 가능해지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떠나려 했다. 세피로트에 은혜를 받아 고마웠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 세피로트의 아이들과 친해질 마음도 없었고 애초에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랐다. 관심이 아예 없었다. 오르에게 치료받은 소년은 감사의 사례를 한 뒤 돌아갈 생각이었다. 부모님의 부고가 날아오기 직전까지.
짐을 가득 싣고, 거기에 부모님까지 타고 있던 배는 폭풍우에 직격. 난파. 침몰. 전원 사망. 생존자 제로. 미성년인 동생들은 세피로트 어딘가의 신전으로 뿔뿔히 흩어졌고, 라테스란은 갈 곳을 잃었다. 부모님을 잃었다는 충격과 황망함에 넋을 잃은 소년을 오르가 거둬주었다. 사랑하는 부모님, 나를 사랑해주신 부모님. 라테스란의 세계를 만들어주고 삶을 선물해주고 이어주신 존경스럽고 사랑하는 내 가족. 그들의 행복을 위해 꾸역꾸역 고집을 부려 죽을 각오를 하고 이별했는데. 마지막에 본 얼굴이 그토록 슬픈 얼굴이었는데. 죽으려 했던 저는 기적적으로 살았고 두 분은 죽었다. 동생들은 어디로 갔는지도 몰랐다. 라테스란은 그 때의 비참함을 똑똑히 기억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사."
그래도 일어섰다. 헤어지기 직전 부모님이 걸어주신 황금열쇠는 라테스란의 목에 있었다. 두 분이 이어주신 생명이었고, 사랑으로 키워 준 삶이다. 라테스란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파서 누워있었을 때 바라던 모든 것을 하고 싶었고, 끊엄없이 걸으며 전진하고 싶었다. 동생들도 찾아야 했다. 라테스란은 슬픔과 비참함을 깨끗하게 닦아 제대로 품에 안았다. 일어섰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세피로트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라테스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주방에 서서 요리를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고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교류를 시작한 것도 그 떄부터였다. 마음을 내주고 정을 붙이고 친해졌다. 소중해졌다.
"쓸려간 만큼 밀려오더라구요."
애정을 줬다. 지금 세피로트의 아이들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들과 있으면 웃음이 나고 즐거웠다. 어른이 되어 떠나더라도 그들과 쌓은 추억은 행복일 터이고 우연히 만나면 하루 종일 행복해지겠지. 라테스란은 조금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가 울고 있는 이사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고작 이것뿐이었지만. 눈물 젖은 흰 뺨에 새 눈물 젖지 않기를 바랬다.
"소망을 바라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면 들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또 마음을 나눌 걸 생각하면 기대되고요.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가는 게 좋아요. 만났다가 헤어지더라도 한 명 쯤은 분명 이 하늘 어딘가에 내게 소중한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아니까."
이사에게 쥐어준 손수건을 다시 건내받아 이사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라테스란은 조심스럽게 이사를 응시했다.
"슬퍼하지 말아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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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사 행복하자....ㅁㅁㄴㅇㄻㄴㄹ 답장은 멘션으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