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라테스란, 사냥
소년은 기도의 문을 열고 신전으로 들어섰다. 화요일 저녁 이곳에 왔을 때, 소년은 이곳의 일각수와 하나의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신전의 순찰에 대해 물었을 때 일각수는 이리 말했다. 전신에 붉은 불꽃을 태우는 인간형 몬스터, 이그니스 파투스를 신전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내달라고. 그 보답으로 오천 골드를 내밀었다. 라테스란은 그 제안을 할 법 하다고 생각했다. 이그니스 파투스가 불타는 좀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몬스터고, 위험한 생명체이며 신전을 어지럽히는 존재임은 분명했다. 싸울 가치는 있었다. 신전을 더럽히는 녀석을 라테스란은 좋아하지 않았고, 몬스터라면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고. 몬스터와 싸우는 경험은 많아서 나쁠 것 없었다.
싸울만한 무기는 없었다. 소년은 방을 좀 뒤져보았지만, 긴 나무곤봉은 맞아봤자 박살만 날 것 같았고 (애초에 불타고 있다고 했으니) 조각칼은 날만 나가고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귀한 조각칼을 그런 데에 쓸 수는 없었다. 축제에서 구입한 에메랄드 화살은 장식용으로 산 거였고. 몇 번이고 고민하며 이것저것 뒤적이던 소년은 결국 맨몸으로 나섰다. 하얀 귀가 가볍게 쫑긋거렸다. 신전의 가운데에서 서서 라테스란은 꼬리를 몇 번 살랑이며 얌전히 기다렸다. 자신은 이 문에 오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오게 되어 꽤 재미있기도 했다. 소년은 인내했고, 몬스터는 인내에 보답이라도 하는 양 자정 즈음에 등장했다. 일각수가 말했던 시점 그대로였다.
몬스터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라테스란은 그를 관찰했다. 이름은 이그니스 파투스.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입고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는 라테스란이라는 객체를 확인하고 나니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민첩했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경로가 단순했다. 소년은 몬스터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비명을 질러대는 몬스터를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하얀 귀가 위아래로 가볍게 까딱거렸다. 예민한 청각에 몬스터의 비명은 가히 끔찍했다.
통각은 남아있는 걸까? 라테스란은 제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팔을 몸을 낮춰 피한 뒤 그대로 그 복부를 걷어찼다. 몬스터가 쭉 뒤로 밀려났다. 걸어다니는 시체 같은데. 그런데도 통각이 남아서 비명을 지르나?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며 라테스란은 다시 몬스터에게 접근해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몬스터의 기동력을 망가뜨리고 그대로 신전 바깥으로 멀리 걷어찼다. 몬스터의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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