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사, 식사
라테스란은 조금, 아주 조금이었지만. 물론 조금이었지만! 조금 열이 받았다. 미라가 이걸 뭐라고 가르쳐줬었는데. 빡침?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라테스란은 제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싸웠다. 그의 높은 도덕심이 좋은 말들을 걸러주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라테스란은 순화된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거였다. 소년의 귀가 삐죽 섰다. 소년은 제 자신에 대해 조금 화가 났다. 수련 좀 하고 채집 좀 하느라 손을 잠깐 놓은 것이었는데. 이사가 채집 덕분에 얼마나 말라가는지도 잘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걸 눈치 못 채다니!
라테스란도 상식과 배려가 있었고, 싫다는 사람 억지로 꾸역꾸역 먹이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이틀의 첫 끼라는 말이 나오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졌다. 맙소사, 이틀이라니. 라테스란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다. 이사를 이글이글 익을 것 같은 시선으로 보다가 주방으로 뛰쳐간 건 순식간이었다.
밤은 늦었고, 이사는 오래 식사를 못했다. 라테스란은 주방 문을 벌컥 열고 저가 예비로 만들어둔 이런저런 음식들의 냄비 뚜껑을 열었다. 은은하게 끓이고 있던 냄비를 치우고 밥에 물을 섞어 죽을 끓이고 간을 치고 전복을 썰었다. 그리고 또 뭐가 좋지. 신선한 채소들을 꺼내들어 잘 잘라 샐러드를 만들고, 과일을 예쁘게 깎았다. 오래 안 먹은 속에 좋은 음식이 더 뭐가 있더라. 딱히 요리로 떠오르는 건 없고 양배추라던가 사과라던가 토마토라던가 띄엄띄엄 생각났다. 그것들을 합쳐서 요리로 만들면 자극적이 되었다. 라테스란은 좀 고민하다가 토끼 모양으로 사과를 깎고 죽을 그릇에 넣어 뚜껑을 덮었다. 사과에 샐러드에 죽, 고기라던가 넣으면 역시 부담일까. 그럼 소금 안 친 생선구이? 맛 없을텐데. 라테스란은 한참을 더 고민하다가 샐러드에 고구마를 으깨 넣었다. 고구마 샐러드는 그냥 샐러드보다야 씹는 맛이 있을 터였다. 식사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가벼운 영양식이었다. 라테스란은 바람처럼 그것들을 쟁반에 담아 부드럽게 뛰었다. 쟁반 안의 음식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이사는 자신도 못 지키고 있는 약속을 외치고 있었다. 잠은 꼭 8시간 이상! 하루 세 끼 꼭 챙겨먹기! 하루에 1시간 이상 햇빛 보기! 참고로 라테스란은 그걸 아주 잘 지키고 있었다. 매우 심란해진 소년이 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이사를 보자 이사는 금새 시무룩해졌다. 소녀가 시무룩해져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라테스란은 조금 엄격해지기로 했다. 아무리 식사를 못 해도 하루에 한 끼는 먹어야 했다. 소년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 저...... 말만 잘하는 저라도 사랑해주실건가요......?"
"그야 물론이죠."
소년이 상냥하게 웃으며 접시를 내밀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면 더 사랑해 줄 거에요."
소년은 이 세피로트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아이가 없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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