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같은 조의, 부적
라테스란은 기도의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노려보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스승님들은 이 문을 괜히 연 게 아니었을까? 다치거나 오염된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는 몹시도 착잡해졌다. 그들의 현명함이야 잘 알고 있었으나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얀 귀가 바닥을 향해 추욱 쳐졌다. 그나마 모래의 문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일까. 하지만 모험으로 그곳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있는데..... 빙글빙글 주변을 돌며 고민하던 소년은 곧 제 방으로 돌아왔다. 꺼내 온 것은 이제껏 하나 둘 모아 왔던 옷감이며 헝겊, 비단 따위였다.
소년은 손이 크고 단단했지만 보기보다 손으로 하는 것은 다 잘했다. 요리나 조각을 특기이자 취미로 들고 있었지만 원예며 자수, 재봉, 수리, 온갖 잡다한 손질은 뭐든지 할 줄 알았다. 닥치는 대로 배웠던 탓도 있지만...... 소년의 지금 옷차림의 장신구는 제 손으로 전부 만든 것이었다. 이마를 장식하는 에메랄드라던가, 손가락을 장식하는 황금의 장신구, 몸에 두른 붉은 비단.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선물로 받았던 황금 열쇠만을 제외하고.
라테스란은 이제껏 열심히 모아두었던 옷감 중 일단 품질이 좋은 것을 골라낸 뒤,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을 띄는 것들을 전부 골라냈다. 실과 바늘, 가위를 꺼내고 옷감을 한참 노려보는 시선이 지긋했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가위질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만드는 것은, 예전에 미라가 한 번 보고 '복주머니'와 비슷하다고 말했던 주머니였다. 라테스란은 미라에게 이것저것 수많은 저쪽 세계 문화를 듣고 있었고, 복을 넣어준다는 주머니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꽤 멋지지 않은가. 지금 필요한 것은 행운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발길이 닿을 곳은 잎사귀의 문과 물거품의 문. 위험도는 다른 문들에 비해 한없이 낮았지만 본디 위험이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럭도 꽃 한 송이 땄다가 위험해졌고 앙수즈나 스페노돈도 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을 뿐이지 몬스터랑 싸울 생각은 없었다. 라테스란은 유비무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주머니를 네 개 쯤 만들어낸 라테스란은 그대로 서랍의 마지막 칸을 열었다. 이제껏 만들어 놓은 온갖 귀금속들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뭐가 좋을까. 손을 넣어 몇 번이고 보석들을 헤집던 라테스란은 그 중 딱히 장신구로 만들지 않고 커팅만 해 놓은 에메랄드를 네 개 꺼냈다. 네모나게 잘린 에메랄드는 엄지손톱만했다. 소년은 그것을 마른 헝겊으로 살살 닦은 뒤 주머니에 각자 하나씩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가 볼품없이 않게 이런저런 자수가 새겨진 손수건 하나도 넣었다. 부적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면 신들께서도 그럭저럭 못나지는 않게 보아 줄 터였다.
주머니 입구를 실로 잘 묶어서 예쁘게 매듭짓고 난 소년이 주머니들을 소중히 챙겼다. 오늘 함께 모험을 나가는 친구들에게 달려가는 발걸음이 조금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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