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Lattelan

29일, 하르데이네, 레몬 파이와 사과 주스

별빛_ 2018. 1. 29. 21:41




라테스란은 주방에 들어와 하르데이네에게 가벼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하르데이네가 살짝 주방 안쪽으로 걸음을 디뎠다. 일각수 소녀는 살풋 눈을 깜박였다. 가늘고 고운 속눈썹이 몇 번 팔랑이며 주방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 라테스란은 익숙하게 밑준비를 했다.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타르트지는 오늘 오전부터 내내 사용했던 몫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고 (많이 만들어둬서 다행이었다) 레몬필링은 어제 레몬주스를 만들면서 같이 만들어뒀으니까. 

 라테스란은 하르데이네에게도 포크질을 준비했다. 타르트지에 포크로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하르데이네는 고개를 몇 번 기울였다가 얌전히 포크를 들었다. 타르트지를 콕콕 찍는 소녀의 시선이 반짝거렸다. 


 라테스란은 혹 손을 잘못 찍지는 않을까 걱정하여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레몬필링을 꺼내고 머랭을 치기 시작했다. 머랭을 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소년은 요즈음들어 제 체력이 썩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근력이 늘어난 기분이라고 할까. 좋은 게 좋은 일이었으니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라테스란은 손쉽게 쳐진 머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레몬필링이 들어있는 볼을 들었다. 


 시트지를 구워 꺼내고 라테스란은 볼을 하르데이네에게 넘겨주었다. 볼을 두 손으로 받은 하르데이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레몬필링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고개를 젖혀 라테스란을 보았다. 


"이 타르트지 위에 이 레몬필링을 부어 주시면 됩니다."

"전, 부?"

"전부는 아마 좀 많을 테고, 잘 폈을 때 반듯하게 보일 정도로요."


 하르데이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레몬필링을 붓기 시작했다. 라테스란이 그 옆에서 주걱으로 윗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양이 적당하게 될 정도로 필링을 부은 뒤 하르데이네가 곧장 라테스란을 보았다. 다음은? 눈으로 묻는 소녀를 보며 라테스란이 고민하다가 짤주머니에 머랭을 한가득 넣었다. 그를 하르데이네에게 건내주며 라테스란이 말했다. 


"이걸로 모양이 나게 파이 위에 짜 주십시오."

"무슨, 모양?"
"하르데이네가 좋아하는 모양이라던가."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소년이 말했다. 자유롭게. 소녀가 중얼거렸다. 라테스란은 느긋하게 말하며 오븐의 온도를 확인했다. 하르데이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짤주머니를 쥐었다. 라테스란은 오븐을 예열시킨 뒤 사과를 잘 씻어 잘게 썰었다. 착즙기가 생긴 이후로 생과일 주스를 만들기 아주 쉬워졌다. 사과는 다른 것 넣지 않고 즙만 짜도 충분히 달았다. 투명한 유리컵에 주스를 담고 라테스란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하르데이네는 짤주머니를 쥐고 파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가 장식을 끝내고 오븐에 넣어 노릇하게 구우면 맛있는 레몬파이가 나올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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