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Lattelan

29일, 레바나, 보답

별빛_ 2018. 1. 29. 16:17




 라테스란은 노래를 감상하는 레바나를 썩 흔흔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레바나는, (아니 이 세피로스에서 생활하는 절대다수의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존재들이었다. 아름다운 존재가 행복해하는 모습만큼 보기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라테스란은 제 마음의 만족까지도 얻고 있었다. 오르골을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레바나를 보며 라테스란은 별 말 없이 목례했다.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 중 이 소녀와는 유독 접점이 잦았다. 취미생활이 같은 탓이었다. 세공이라던가, 요리라던가. 라테스란은 그녀에게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주면서 서로 만족하는 합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세공이라면 특히 그랬다. 라테스란은 반짝이는 물건이라면 종류 가리지 않고 깎았다. 산이나 강에서 주운 것들은 보석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돌멩이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라테스란은 그게 예쁜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버리지 않고 그걸 깎았다. 나무며 돌이며 금속 할 것 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깎아내며 라테스란은 실력을 쌓았다. 지금 숙련된 솜씨를 가지고 있는 건 어렸을 적부터 그런 것들을 만지고 깨트리고 부수고 깎아내고 잘 만들어진 완성품을 구경한 덕분이었다. 덕분에 그는 제일 무르고 잘 깎이는 나무를 제일 잘 깎았다. 돌이나 보석도 서투르지는 않았으나, 보석은 수가 적은 만큼 쉽게 만지고 깎을 수 없었다. 


 그런 라테스란에게 레바나의 존재는 꽤 감사한 존재였다. 그녀는 보석룡이었고, 그만큼 보석손질에 능숙했다. 라테스란은 그녀에게 꽤 많은 요령을 배웠다. 지식을 나누고 함께할 사람이 생기니 실력은 금방 늘었다. 그는 저와 동갑내기 드래곤 소녀에게 담백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오르의 아이들로서 당연하게 베푼 배려일수도 있지만, 받은 사람이 감사하고 있다면 그 역시도 특별해지기 마련이었다. 


 라테스란은 이번 오르골의 답례로 받은 아쿠아마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보석은 청록색 보석뿐인 줄 알았는데. 이번의 아쿠아마린은 맑고 청명한 푸른색이었다. 넓은 대하를 닮은 빛. 소년은 소리없이 감탄했다. 그녀의 보석들은 다들 질이 좋았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석을 눈에 담은 라테스란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깊은 만족과 감사가 양 입꼬리에 아롱거리고 있었다. 


 라테스란은 그다지 보석이나 금전에 욕심이 없는 드워프였다. 타고나기를 드워프로 태어나 보석 찾기에 능한 체질이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면, 음. 여하튼 저 스스로 가지는 것보다야 아름다운 타인이 가져서 더 반짝이는 게 좋았다. 아쿠아마린은 색상이 고우니 장신구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금보다는 반짝거리는 은으로 방식해서, 하나뿐이니 귀걸이보다는 목걸이나 팔찌가 더 나을까. 손보다는 작아도 크기가 큼지막하니 잘 자르면 두 개도 그 이상도 거뜬히 나올 터인데. 라테스란은 손안에 아쿠아마린을 굴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를 받았으니 아쿠아마린으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받는 이도 당연히 레바나를 상정하여 머리를 썼다. 


 방으로 돌아온 라테스란은 제 방 수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수조에는 물 속에서만 반짝이는 투박한 돌들이 제각각 모양을 가지고 멋을 뽐내고 있었다. 동물 모양인 것도 있었고, 건물 같은 것도 있었다. 다들 물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라테스란은 그 수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쿠아마린을 그에 겹쳐보았다. 수조보다 반짝거리는 보석은 말없이 우아했다. 이번 아쿠아마린은 역시 팔찌가 좋겠다. 라테스란은 내심 마음을 정하고 종이를 꺼냈다. 황금빛 드래곤의 얇은 손에 어떻게 맞춰야 그럭저럭 쓸 만 한 아름다운 팔찌가 나올까. 드워프 소년은 고심했다. 

 얇은 두 겹으로 만들어서 아쿠아마린과 진주를 이어 만들까. 그도 아니면 은을 사용해서 깔끔하게 장식할까. 장식의 테마는, 흠. 아쿠아마린이지만 그녀는 하늘을 나는 용이니 하늘을 테마로 만드는 게 나을까요. 황금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제 책상 위, 보잘것없는 공방을 쓸어내렸다. 만들어 선물했을 때 어여쁘면 좋겠다. 라테스란의 욕구는 단순했다.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