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AU 2
모든 존귀한 빛 위에서 태어난 자는 그 모든 경외를 마땅하게 만들 정도로 세상의 모든 것의 꼭대기에서 완전하였으나...... 하늘의 공평함을 말하듯 무정했으며, 그보다 더욱 삶에 무관심했다. 그나마 그 자색 눈동자가 비교적 온기를 띠는 경우는 자신이 변덕으로 주워다 이름 붙여 키워 놓은 제 것들을 응시할 경우가 고작이었으니 어지간하랴. 그런 그가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다. 제 혈육이라 구분지어진 거대한 선 안쪽에 발 들인 자들을 볼 때. 우연 운명 천명 그 어떤 대단한 단어를 갈갈 긁어모아 치장해도 부족함이 없을 귀하디 귀한 아이들. 그 중에서도 유독 귀여운 손가락이라면, 다른 태를 타고 태어나 저와 동등한 수준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바로 아래의 남동생이었다.
그래, 라도에게 옥좌를 줘야겠다.
참으로 불현듯 떠오른 말은 참으로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가을 날의 저녁이었다. 그다지 대단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년에 태어난 동생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뭐가 제 귀여운 형제에게 어울릴까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것이 옥좌였을 뿐이었다. 옥좌만큼 가지고 놀만 한 것이 없었다. 타국 놈들도 자국 놈들도 귀찮게 구는 것들은 귀찮았다만 다 죽이면 덜 귀찮을테니 재미있는 것만 먹을 수 있겠지. 하얀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규칙적으로 까딱거렸다. 황금으로 만든 저울의 한쪽에 온 세계를 두고 다른 한 쪽에 생각도 못한 선물을 받아 깜짝 놀랄 아우의 사랑스러움과, 미래에 얻을 제 아우의 즐거움과, 그걸 보는 자신의 만족이라는 가치를 올려놓으니 후자가 비교할수도 없이 무거웠다. 그래, 그러자. 모든 대륙을 통일한 가혹하나 위대한 황제의 탄생은 이토록이나 간단한 다짐 하나에서 이루어졌다.
폐하께서도 슬슬 머리끝을 다듬으실 때가 되었나. 꽤 길어지시기도 했고 너무 피가 잘 묻으니. 하늘을 닮아 고운 빛이다만 피가 푸른 색이 아니라는 건 참 유감이란 말이지. 제 앞에서 칼을 들고 편전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황제를 보며 황형이 떠오른 생각은 참으로 다정한 종류였다. 어전에서 무례하게 목소리를 높인 죄. 감히 폐하의 신발코를 더럽힌 죄. 그 외에도 이것저것. 그들의 목이 썩둑썩둑 떨어져나가는 이유가 너무도 합당하여 굳이 소리높여 황제를 말릴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한 황형은 무심하게 목간으로 시선을 내렸다. 감히 황제와 황형의 그림자 끝 하나 밟을까 숨소리조차도 크게 못 내는 쥐들은 천지에 널렸으나 황녀들만큼은 달랐다. 하기야 아직 겨우 걸음마 떼고 오라비들을 부르는 호칭이나 서투르게 입밖에 내는 어린 황녀들이 뭐가 무서울까. 황녀들은 제 고사리같은 손바닥에 얼마나 많은 천하와 생명이 쥐여졌는지도 아직 모를 나이였다. .
그 아무것도 모르는 황녀들의 곳간에서 자그마한 것 몇 가지 주워 와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저토록 너무도 많은 곳에서 겨우 먼지 한 줌 정도. 별 것 아니니까. 황녀님들이 자라면 그 때 그만두더라도 그 전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 자그마한 머리통에서 굴러가는 내용들이 하도 뻔하여 황형은 이미 그 생각 굴러가는 방향까지도 외운 뒤였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황녀의 공간에서 아무리 작은 것을 주워가도, 심지어 발치에 떨어진 아기주먹만한 돌멩이 하나라도 모두 황녀들의 것이었으니 그것을 욕심내었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 너무도 많았다.
끌끌 혀를 차며 황형은 또 신하 하나의 목을 치는 황제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음, 오늘 탕에서 나온 주상에게는 따뜻하게 데워 꿀을 넣은 우유를 대령하라 말해둘까. 황제에게 옥좌를 주자 정했던 순간처럼 너무도 평이하고 다정한 사고였다.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