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Harioti Lop

사파이어와 오팔과 숯과 약초

별빛_ 2019. 2. 16. 04:27



"그렇게 말해버리면 주는 입장인 내가 김이 새버리는데."

"엩."


 첸의 말은 분명히 알 수 있는 농조였지만, 소녀는 순간 굳어 눈을 데굴 굴렸다. 그런가? 하지만 진짜였는데. 첸이 그럴 리 없겠지만 길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할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그럴 터이고. 애초에 선물의 만족도는 사실 물건보다는 주는 사람이 중요한 법 아니던가. 소녀가 남동생인 하람이 못나게 만든 쿠키로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그릴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이치였다. 살짝 곤란한 빛을 띈 개나리같은 눈이 잠시 허공 어딘가를 애매하게 응시했다. 하리오티의 고민을 적당히 읽어낸 첸이 금방 말을 이어 다른 대화로 이끌었기에 둘의 주제는 금새 변했다. 말을 이을 때마다 소녀의 표정은 솜사탕처럼 금새 변했다. 붉어졌다가 다시 희어졌다가, 삐죽거리기도 하고 새침한 듯 하다가 웃기도 하였다. 참으로 즉각적인 변화였다. 


".......숨기느라 버럭하는 건, 조금 아까우니까. 첸이 나한테 충분히 소중한 것도... 사실이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서 다행이야. 음......"


 첸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어 물었다. 


"난 너한테 해준 것도 얼마 없는데?"
"응?"


 그 말에 하리오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하리오티는 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봄꽃의 색을 한가득 담은 눈동자에 푸르스름한 바다의 소년이 가만 담겼다. 소녀는 도리어 그러한 말을 들은 게 어색하는 표정이었다. 해 준 게 없다니? 6년 전 학당에서 친구(가 되었다고, 소녀 혼자 생각하는 것일지라도)가 된 이후로 좋으나 싫으나 첸은 6년이나 하리오티와 연락을 주고받아주었다. 중간에 연락이 끊기거나 채 편지 한 통 주고받지 못한 친구들도 한둘이 아닌 입장인 소녀에게 첸의 존재는 저가 학당에서 보낸 1년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소녀의 고개가 기우뚱하게 기울어졌다. 긴 머리카락과 가지에 매달린 꽃이 소녀의 움직임에 맞춰 살짝 고개를 틀었다. 더군다나 어인 아이와 가족이 된 이후로 더더욱 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폐쇄적인 어인들의 생활방식이나 그에 맞는 약재나 음식 따위를 인간 가족과 함께 살았던 어른 인간과 갓 어른이 된 드라이어드가 알 리 없었다. 하람이 아프지 않고, 아프더라도 금방 털고 일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건 첸 덕분이었다. 하리오티는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받은 게 너무 많은데? 하리오티는 진심으로 의아해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또 기웃했다. 소녀의 표정이 묘하게 새치름해졌다. 6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전제부터가 조금 잘못되지 않았는가. 


"해 준 거랑 소중한 거랑은 관계 없잖아?"


 그래, 이것. 소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는 첸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도대체 뭘 해준 게 없다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실제로 해 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해도 사람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에 그건 크게 관계 없어."


 소녀는 도리어 기쁘게 웃었다. 6년을 성장하여 솔직하게 미소지을 수 있게 된 소녀는 망설임없이 소년의 앞에서 웃어보았다. 꼭 제 종족처럼 꽃이라도 피어나는 듯 한 미소였다. 준 사람은 자신이 준 것의 가치를 잘 모를 수 있지만 받은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큰 것일 수 있었다. 소녀에게 있어서 학당의 친구들의 존재는 모두 그러했고, 그 중 유독 특별한 몇몇 중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 준 것이 없노라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즐겁기도 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 기사가 된 소녀가 아니던가. 물론 네 존재가 저에게 이토록 무게 있노라 말하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워서, 많이 성장했으나 여전히 수줍음타는 소녀는 그 말까지는 삼켰다. 더군다나 이것까지는 꽤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상대에게 있어서 자신이 같은 무게로 중요한지, 소중한지, 가치 있는지...... 하리오티에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저가 소중히 여기면 되었으니까. 자기 자신도, 상대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는건지, 지나치게 겸손한건지. 사실 첸은 자기 얘기를 잘 안 해서 나는 정확한 건 잘 모르지만......"


 몇 걸음 더 가까이 걸어온 소녀가 한숨 비슷한 것을 뱉으며 손을 뻗었다. 소녀의 자세는 누가 봐도 알아차릴 정도로 제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입가에 장난스러운 기색이 문득 스쳤다. 견습 기사가 된 이후로 몇 십 번, 몇 백 번이고 연습했던 동작이었다. 상대의 손을 들어올리고 허리를 우아하게 숙여서 손등에 입맞추는 가벼운 인사. 상대에게 바치는 존경과 헌신. 물론 장난도 과하면 안 될 터이니 그저 손등에 대는 시늉만 했다가 허리를 펴며 하리오티가 씩 눈을 휘었다. 


"첸은 충분히 특별하니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의미로 이거 받아! 곧장 가볍게 몇 걸음 떨어진 소녀가 냉큼 그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선물의 이야기가 나온 뒤로 이런저런 고민을 해 보았지만, 역시 제일 주는 게 좋겠다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파이어와 오팔의 보석결정으로 기반으로 만들어져 에르바와 숯의 마력을 사용하여 만든 둥그스름한 거울. 빛의 거울이었다. 

 소년의 손에 거울을 넘겨준 소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걸 받은 소년이 어찌 반응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으나....... 소녀는 소년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별개로, 유감스럽지만, 소년에 대해 정확히 잘 몰랐고. 하지만 호문클루스를 만들어낸다거나 업보가 쌓여 신관 님께 안 좋은 말을 듣거나 하는 것은 알았다. 가끔은 어쩐지 조급하거나 절박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자신의 보잘것없는 넘겨짚기라고 생각하며, 하리오티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중한 만큼 걱정이었고 그만큼 믿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저 보잘것없는 염려였다.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보고, 현재가 조금이나마 더 즐거워진다면 좋겠네."


 알고 있겠지만, 행복한 시점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언제든지 써도 좋지만, 특히 나중에 힘들 때가 온다면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소녀가 그리 덧붙이며 느긋하게 소년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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