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우와 꽃밭
소녀는 사뿐사뿐 걸었다. 본디 소녀의 움직임은 제 가족들을 닮아 퍽 절도있는 구석이 있어서, 어쩐지 직진으로 그 발걸음 끝에 있는 사람은 묘한 위압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는 마을에서 하리오티를 곤란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번 그리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난감한 듯 미소짓는 그리트를 보며 하리오티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옆 자리에 털썩 앉아 웨더폭스와 같은 풍경을 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음..."
"하리오티."
"하리오티."
저는 그리트에요. 알고 있어요, 그리트. 하리오티의 반응은 썩 새침하다 못해 날카로웠다. 사실, 구 중앙 신전인 이 루케루카에서 만나 친구가 된 학당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검증되어있는, 어떤 식으로든 안전한 사람이라는 일차적인 경계를 처음부터 넘고 시작했지만 그리트는 아니었으니까. 하리오티는, 눈 앞에서 그리트가 곤란을 겪는 걸 견디지 못할 정도로 상냥했지만 그리트를 선뜻 제 친구로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경계심이 높았다. 드라이어드의 특징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하리오티 본인의 특징이기도 했다. 소녀는 낯선 이에게 제 마음의 벽을 손쉽게 내려주지 않을 만큼 단호했다.
허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할 수 있기에, 소녀는 기꺼이 그리트에게 자신의 선물을 건냈다.
"이거 받아요."
"이건......"
흰 목화에 나비의 푸른 가루를 뿌려 장식하고 벨베티로 단단하게 묶은 것. 푹신하고 희끗한 화관이었다. 소녀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트의 귀가 몇 번 쫑긋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소녀는 덤덤히 말했다. 선물이에요. 이 꽃밭을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물론 난 아직까지도 온전하게 당신을 믿지는 않지만.... 말끝을 늘이는 소녀의 눈동자가 일순 날카로운 금빛으로 번쩍였다. 그래도 당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서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해진다면,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소녀는 가벼이 제 희망사항을 읊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까딱였다.
(공미포 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