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AU 2
"괜찮으셔요, 왕자님?"
"그래, 심려치 않아도 괜찮다."
어린 용은 엷게 웃었다. 마냥 상냥한 모양새였으나, 용의 주변을 맴돌던 시종들의 낯은 그 모양새를 볼수록 가라앉았다. 발갛게 열이 올라 앓아 누운 상태로 괜찮다 말해봐야 걱정만 살 뿐이었다. 그 역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왕자는 손짓으로 시종들을 모조리 물려버렸다. 곁에 앉아서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어 봐야 속만 상할 뿐이었다. 소리없이 바깥으로 헤엄쳐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곧 방에는 그 홀로 남았다. 용왕의 아들, 작고 어린 용은 비단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머리가 뜨거웠고,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팠다.
다른 자들은 어린 용이 호기심으로 뭍에 나갔다가 돌아와 그대로 앓아 침상에 누워버린 탓에, 땅의 병을 옮아 온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다른 이유를 병의 이유로 짚고 있었다. 한 번 몸을 뒤척이며 어린 용은 길게 한 번 숨을 뱉었다.
여의주로 세상을 돌려보던 중 첫눈에 반한 자를 찾아 바다의 용은 땅을 밟았다. 잠시 땅의 지리를 몰라 헤매기는 했지만, 다행히 마음씨 좋은─정확히는 어린 용이 땅에 내려앉아 생기는 온갖 사건사고를 질색하는─강한 무녀가 용을 주워 그 자에게까지 안내해주었다. 인간 나이로 고작 다섯, 많이 봐야 여덟 살 먹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 아이였기에 용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저 속절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무녀의 옷자락 뒤에 숨어 발갛게 뺨을 붉히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만나서, 대화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말을 나누고 어린 용은 그대로 바다로 돌아왔다. 땅에서 더 할 일도 없었을 뿐더러 만나는 것 하나만 원하고 땅에 와서 바라는 바를 이루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무녀와 그리 약속하기도 하였으니까. 그리고 용궁에 되돌아온 용은 그대로 쓰러져 열이 올랐다. 흰 뺨에 얼룩덜룩한 열점이 생기고 체온이 들끓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 몸이 아팠다. 어린 왕자가 돌아와 짧게 안심한 용궁은 그대로 뒤집어졌다.
바다에서 가장 솜씨 좋은 의원을 모시겠다며 주변인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영특한 어린 용은 사실 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첫사랑에 빠져 버렸다. 만나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겠으나, 찰나의 가슴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육지에 나와 사랑을 마주한 용은 그대로 마음을 빼앗겼다.
어째서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가치가 없었다. 왜 사랑에 빠졌느냐는 물음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 있을까. 어린 용은 상대를 마주한 순간 자신이 세상에 발을 딛고 태어나 숨을 뱉는 이유가 상대임을 확신했거늘. 그로 인해 늘 물빛이던 세상이 화려하게 색을 입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를 울렸다. 사랑이 용의 몸에 가득 차올라 그를 새롭게 만들었다. 수많은 생명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용을 조금 더 자비롭게 만들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곁에 있고 싶고, 조금 더 닿고 싶었다. 그의 옆에 서기에 걸맞은 모습이 되고 싶었다.
그 작은 바람. 상대가 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사랑해준다면 가슴 저미게 기쁘겠지만 어찌 사랑이 상대에게 제 욕심을 강요하는 감정이 될까. 사랑이라는 작은 불씨는 용의 안에 피어올라 그를 온통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저 눈길 한 줌, 시선 한 뼘 더 받고 싶다는 욕심만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상대를 존중하여 오롯하게 상대의 행복을 바라게 만들었다. 저를 사랑하게 만들고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가 행복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랑에 앓아 누운 용은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용은 본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며 아주 느리게 성장하지만,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급격하게 자라는 경우가 있었다. 어린 용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온몸을 찢어놓는 듯한 통증과 열이 소년의 이성을 얼룩지게 만들었음에도 그 감정 한 점 퇴색되지 않고 빛나서 소년의 시야를 열어 주었다. 소년은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고, 깨어날 때마다 그의 곁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어느 때에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의원이었고, 어느 때에는 걱정 어린 얼굴로 제 손을 붙잡은 누이였고, 또 어느 때에는...... 그렇게 몇 번이고 통증과 열에 혼절하였다가 깨어난 어느 날. 용은 제 몸의 통증이 날씨 개이듯 깨끗하게 가신 것을 깨달았다. 뜨인 눈이 명쾌하고 호흡이 달았다.
뻗은 손은 이전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희고 번듯한 성체의 손이 용의 시야에 들어찼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눈높이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어느 틈에 갈아입혀진 옷의 품조차 큼지막했다. 제 얼굴을 두어 번 짚어보다가 여의주로 제 모습을 보고 청년은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둥그스름한 얼굴과 커다란 눈. 자그마한 손발을 가지고 있던 어린 소년은 오간데 없고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에 길쭉하고 잘 생긴 청년만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의태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다시 용의 현현으로 돌아가도 크기가 엄청나게 자라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조차 어렵지 않았다.
사랑의 곁에 있기에 가장 걸맞다 생각되는 모습으로 자라 버린 용은 가만 눈을 깜박이며 저를 응시했다. 어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으나 결국 마음이 이끄는 곳은 하나였기에 결론 역시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용은 옷차림을 갖추고 방문을 열었다. 아직 성인식도 치루지 않았으나 급격히 자라버린 젊은 용이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였으니까.
*
이 뒤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명언을 실천하고 다시 뭍으로 올라가 바라네 신사에서 신세지며 가끔 날씨도 조종하고 하토라 곁에 기웃거리면서 열심히 먹을 것도 가져다 나르고 아무튼 열심히 짝사랑하지 않을까요 ><)9 저는... 동양풍 사랑하는 사람... 요괴AU... 너무 맛있지 않나요?(;;)